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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Aug 04. 2016

황금의 꿈을 간직한 계곡

대만 여행 5일차: 행리탁운 중심, 예류, 진과스, 광부도시락

2014년의 마지막을 3일 남겨둔 12월 28일.

드디어 우리 부부 대만여행의 마지막 트랙, '예진지' 코스가 시작되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늘어선 기암괴석이 만들어 내는 초현실적인 풍경, 예류 지질공원.

일제의 탐욕과, 노다지를 찾아 헤메이던 광부들의 꿈이 뒤엉킨 광산마을 진과스.

그리고 밤에는 집마다 이국적인 홍등이 빛나고, 낮에는 탁 트인 바다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전망이 빛나는 지우펀.

- 이 세 곳의 앞글자만 따서 만든 것이 바로 '예진지' 코스다.


많은 대만 자유여행 관광객들이, 이 '예류 - 진과스 - 지우펀' 코스에 스펀을 들르는 일정을 집어넣은 후, 택시를 대절해서 하룻동안 이 네 곳을 차례로 들르는 '예스진지' 혹은 '예진지스' 코스를 선택한다.


우리 부부는 맨 처음엔 대만여행 까페에서 '예스진지'라는 단어를 접하고는, 대만에는 '진지'라는 마을이 있어서, 그 마을에서 관광산업 부흥을 위해 요즘 우리나라 지자체들이 하는 것마냥 "Yes ! 진지 !" 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만든 건줄 알았다. ㅡ_ㅡ;;


그러나 곧 폭풍검색질을 통해 '예스진지'가 '예류 - 스펀 - 진과스 - 지우펀'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줄임말의 뜻이 곧바로 연상되지 않는 것을 보니, 확실히 나는 나이가 먹은 것이 틀림없다. ㅡ_ㅡ;;


각설하고... 여행일정을 짜기 위해 지도 위에 네 곳의 위치를 찍어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밀물처럼 밀려드는 멘붕...



헐... 타이페이를 떠나 저렇게 산산이 흩어진 곳을 하루 종일 돌아다닌 후 다시 타이페이로 돌아와야 한다고 ?


엊그제 핑시와 스펀 두 곳만 도는데도 하루 왼종일 걸린 우리 부부. 이제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ㅡ_ㅡ;;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곳을 방문하면 금새 체력이 방전되면서 그냥 하지 붕괴로 주저앉음.


그리고 예전과는 달리, 관광지를 사냥하듯 찍으며 돌아다니기 보다는, 한 곳에 머무르면서 그곳을 최대한 즐기는 것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물론 가난뱅이 직장인 신세인 한 ㅡ_ㅡ;; 정말 만족할 때까지 여행지의 모든 것에 푹 젖어드는 그런 경험은 못해보겠지만, 그래도 여행의 지향점이 점점 그 쪽으로 움직여가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하여간 그래서 우리 부부는, 스펀과 핑시를 별도의 일정으로 뽑고, 나머지 예류, 진과스, 지우펀에 1박 2일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래서 튀어나온 우리 부부의 '예진지' 코스 되시겠다.


'예진지' 일정을 짜는데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바로 교통편. 아무리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스펀을 별도로 뽑았다고 할지라도, 거의 붙어있는 진과스와 지우펀에 비해 예류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폭풍 검색을 통해 구글의 위대함을 몸소 체험하며 아래와 같은 일정을 짰다.


1. 우선 대만여행의 친구 ㅡ_ㅡ;; '국광버스'를 타고 타이페이에서 예류로 건너간다.

2. 예류에서 지우펀/진과스는 직행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예류 지질공원을 둘러본 후 택시를 타고 진과스로 간다.

3. 진과스와 지우펀은 가까워서 버스가 있기 때문에, 진과스를 둘러보고 버스를 타고 지우펀으로 온다.

4. 지우펀에서 하루 묵는다.

5. 다음 날 오전 지우펀에서 가까운 루이팡으로 내려와, 루이팡 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타이페이로 돌아온다.


모두 합쳐 두 시간을 넘지 않는 이동거리 덕분에, 우리 부부의 '예진지' 일정은 길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물론 이로써 예류, 진과스, 지우펀 세 곳의 즐거움을 최대한 즐길 수 있다며, 우리 부부는 닭살 넘치는 자뻑 엄지척을 맞교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랑과 존경으로 서로를 아끼는 우리 부부 ~ ㅡ_ㅡ;;


만약 굳이 지우펀에서 하루를 묵어야 되냐고 묻는 분이 계시다면...

"네. 시간이 허락하신다면 꼭 ~ !! 지우펀의 저녁과 아침을 모두 즐기시길 !!"

그 이유는 지우펀 포스팅에서 자세히.



이제 타이페이를 떠나 예류, 진과스를 거쳐 지우펀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한 대만여행 5일차의 아침.


짐을 챙겨서 4일간 묵었던 Mr.Lobster's secret den 호스텔을 나왔다. 여행이란 것이 항상 그렇겠지만은, 정겨운 동네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이 골목, 익숙해 질 때쯤 되니 다시 떠나게 되는구나. 랍스터 주인장님, 안녕히.


여행을 다닐 때 숙소를 옮긴다는 것은 분명 큰 스트레스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피곤한 어깨 위에, 여행 올 때 싸가지고 온 빵빵한 배낭을 다시 얹고, 몇 일 동안 내 집처럼 익숙해진 숙소를 떠나 또 새로운 집(?)을 찾아 돌아다녀야 한다니.


훗... 하지만 그런 고민에, 미친 친절함 ㅡ.ㅡ 의 블로거 Strider가 제안하는 꿀팁 허니팁 하나.

바로 '타이페이역 행리탁운중심'(台北站 行李託運中心, 타이페이쳐 싱리터운쭝신, Taipei Railway Station Carry-on Baggage Center). 즉, 타이페이역 수화물 탁송센터다.



수화물 탁송센터이니 짐을 보내고 받는 곳인가 싶겠지만, 그러시던가 말던가. ㅡ_ㅡ;

우리에게 이 곳의 존재의의는 바로 '짐 맡아 주는 곳'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의 물리적 등골 브레이커인 배낭이나 트렁크를, 지우펀에 1박 2일 다녀오는 동안 이 곳에 잠시 맡겨둘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커다란 등짐을 메고 하드코어한 배낭여행을 다니기엔 1/3백살을 훌쩍 넘긴 내 나이의 무게가 버겁다. ㅠㅠ


1박 2일 일정 동안만 딱 필요한 짐만 가볍게 챙겨들고 나머지 짐은 여기다가 맡겨놓자. 여기는 일일 요금 50 NTD, 한화 1,850원이면 짐 하나를 24시간 동안 안전하게 맡아준다. 맡길 때 언제 찾아갈 꺼라고 얘기하고 돈을 내면 번호표를 주는데, 내 짐이 이곳에 있다는 증거이니 소중히 챙겨두자.


안에 계신 아저씨도 10년 묵은 나의 중학영어 ㅡ.ㅡ; 가 통하는 분이시니 부담없이 이야기하면 된다.



여기 찾아가기가 의외로 쉽지 않은데, 정확한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첨부하니 참조 !

이 주변이 대부분 지하도로 연결되어 있어서 길 찾기가 쉽지 않고 횡단보도가 별로 없어서 자칫하다간 무단횡단각. 타이페이 메인 역과 버스터미널 위치를 잘 보고 본인 위치를 확인한 후 찾아가자.


행리탁운중심 건너편에 택시 주차장과 각종 구조물들이 많아 간판이 잘 안보인다. 지도 옆의 사진에 보면, 지하도가 있는 길이 나오는데 그 건너편에 빨간 화살표가 있는 곳이 행리탁운중심이다.



행리탁운중심에 짐을 맡기고 나면, 예류행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터미널인 Q스퀘어에 가야되나 싶을꺼다. 하지만 Q스퀘어에 가서 버스를 탄 후 여행의 피로를 잊기 위해 한 잠 자고나면, 아마 당신은 느즈막한 점심 때쯤 대만의 어느 남쪽 해변가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따뜻한 남쪽나라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Q스퀘어에 가서 버스를 타면 아니된다.


예류로 가는 버스는 금산(金山)행 1815번 국광버스이고, 이 버스는 타이페이 메인역에서 걸어가면 있는 '서부 버스 터미널 A'에서 출발한다. (요금 80 NTD, 한화 2,900원 가량) 서부 버스 터미널 A는 타이페이 메인 역에서 한참 걷다보면 발바닥이 살짝 너덜거릴 정도 ㅡ.ㅡ; 의 거리에 있다. (지하 아케이드의 Z3 출구를 찾아가자.)


버스 출발은 상시 이루어지고 있으니 아침 일찍 가서 줄 서는 대로 타자.

인생은 선착순이 진리라고 학창시절 빳따로 맞아가며 배웠습니다. ㅠㅠ



아침식사에 집착하는 우리 부부는, '그래도 입에 뭔가 집어넣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타이페이 메인 역 지하상가에 있는 'Sushi take-out'에 갔다. 어제 그렇게 지파이로 위장을 초토화 시켰으면서도 아직 정신을 못차린 거다.


튀김인 척 위징하고 있는 MSG 덩어리들 ㅡ_ㅡ;; 만 만났던 시먼딩 길거리 음식의 기억을 잊기 위해, 뭘 먹더라도 실패할 일이 없는, 공장에서 갓 태어난 초밥들이 깔끔떨고 있는 이 곳을 다분히 의도적으로 골랐다...

설마 스시계의 다이소 ㅡ.ㅡ; 같은 이 곳마저, 시먼딩의 길거리처럼 MSG를 극도로 애정하지는 않겠지.


가격은 청순한 설현의 몸매만큼이나 착해서 ^0^ (드립 무리수를 독자들께 사과하오) 개별 포장된 초밥 하나에 균일가 10 NTD (한화 370원), 김밥이나 유부초밥이 예닐곱개 들은 도시락이 50 NTD ~ 80 NTD (한화 1,850원 ~ 2,960원) 정도.


여기에 '급히 쳐드시면 체하시오니 이것도 같이 처묵대시옵소서' 하는 미역된장국이 20 NTD (한화 700원) 이니, 이것 저것 집어들어도 만 원이 채 안되는 가격에 푸짐한 아침상을 들고 버스에 탈 수 있다.


기차 안에서 음식 못먹게 하는 야박한 대만 지하철과는 달리, 우리 여행의 친구 국광버스는 버스 안에서 처묵대도 뭐라 하지 않으신다. 우리 부부도 유부초밥 도시락 하나에, 초밥 일곱 알을 골라 담은 팩 하나, 미역된장국 한 사발을 싸 들고 국광버스 1815번에 올라 예류를 향해 출발했다.



배가 부르니 찾아오는 것은 역시 레드썬 !

맛 따위는 나에겐 사치라며 스시와 유부초밥을 한 입에 넣고 함께 분쇄 ㅡ.ㅡ; 하다가 식곤증으로 기절한 Strider는, 버스가 예류에 도착하자 귀신같이 눈을 떴다. 이 능력 하나 만큼은 정말 세계의 어느 누구와 겨뤄도 부끄럽지 않다.


버스로 1시간 반 정도 가다보면 예류지질공원이 있는 '예류 풍경구'에 도착한다. 설명했다시피 국광버스는 버스 앞쪽에 전광판에 버스 정류장 이름이 한자와 영어로 번갈아 뜨니 잘 지켜보자.

버스에서 내리면 어디로 가야될지 약간 헷갈릴 수 있는데, 위의 사진에 있는 '예류 풍경구'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3거리에서 왼쪽 방향으로 나있는 길로 10분 정도 걸어내려가면 예류지질공원에 도착할 수 있다.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며 부산스럽게 버스에서 내렸더니, 아놔 이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비 내리는 것은 싫어라 하는데, 여행다닐 때는 정말 최악이다. 짐도 젖고 사진 찍기도 힘드니까.


이 때만 해도 보슬비가 내렸기에 조만간 그치겠지 싶었다. 하지만 이 착각이 깨지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하자 즉시 등장한 개나리유치원 원생 2명. ㅡ.ㅡ;;


우비 파시는 아주머니는 한국과 대만을 가리지 않고 티켓팅하는 곳에 귀신같이 출현하시었다. 당연히 우리 부부는 각각 20 NTD에 얇은 비닐로 만든 우비라고 하기 민망한 거적떼기를 뒤집어 썼다. 다섯 살만 젊었어도 후까시 때문에 저런 거 절대 안 입었을텐데 이제 늙어서 옷 젖는거 절대 싫음...


드디어 도착한 예류 입장료는 일인당 80 NTD (한화 2,960원). 사실 안에서 볼 수 있는 거에 비하면 입장료가 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만약 기암괴석 같은 특이한 지형지물을 보는 데 큰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그냥 여기 올려드리는 사진 보시는 걸로 예류는 스킵하셔도 무방함.



예류지질공원의 전경 파노라마.

서울서 살다보면 아파트 숲에 가려진 하늘이 항상 답답한데, 사방이 탁 트인 바닷가의 풍경이 사이다 한 사발급.



예류의 독특한 지질구조인 버섯(?)돌. ㅡ.ㅡ;;

이런 형태의 지형이 해변가를 따라서 쭉 펼쳐져 있음.



예류에서 가장 유명한 '여왕 머리바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지만, 딱 이쪽 각도에서 보면 마치 머리를 틀어올린 여왕의 옆 얼굴의 형상.


문제는, 날이 갈수록 풍화에 깎여서 가늘어진 목 때문에 조만간 여왕님의 머리가 잔인하게도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과, 이 바위랑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는 거.


여왕님 얼굴 찍고 싶으면 굳이 여왕님이랑 인증샷 찍을 것 없이, 그냥 이렇게 멀리서 줌으로 땡겨서 사진을 찍으면 됨.



이 사진들로 예류는 대략 다 둘러본 거나 다름없음 !!


싸구려 노랑 비닐 우비는 빗방울은 막을 지언정 보온효과는 전혀 없었고, 사납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반 칠순인 ㅡ.ㅡ;; 우리 부부의 체력은 급격히 고갈되었다. 싸늘한 날씨에 입술이 파랗게 질리기 직전인 마눌님을 위해 빨리 예류를 떠나기로 했다.


다음 행선지는 황금의 기억이 남아있는 금광마을 진과스.

예류에서 진과스 사이에는 마땅히 탈 만한 대중교통이 없으니, 예류 공원 입구 쪽에 있는 주차장에서 택시를 타고 가자. 예류에서 진과스까지는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우리 부부는 1,000 NTD (한화 37,000원) 에 택시를 탔다. 주변의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진과스 ?' 하고 물어보면 요금을 알려줄껀데, 대략 1,000 NTD 근방이면 딱히 흥정할 필요 없이 타면 될 것이다.



100년 전 우연히 발견된 금광 때문에, 당시 대만을 병탄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탐욕스런 수탈을 당했던 진과스 마을.


당시 엄청났던 금과 은의 채광량은 이 곳을 아시아 최대의 광산도시로 만들었다. 일제는 더욱 많은 금을 캐내기 위해 광부들이 채굴해 낸 금의 양에 따라 인센티브 개념의 약간의 금을 내주었다고 한다.


그 약간의 금에 목숨을 걸고 깊은 탄광 속으로 들어갔던 수많은 광부들의 노다지의 꿈이 얽힌 이 곳 진과스.



진과스가 번화했을 때의 야경 사진.

한 때 이렇게나 번성했던 황금의 마을 진과스는, 사실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금광 때문에 번화한 마을이 되었던 것이지, 본래부터 사람이 북적이며 모여 사는 곳은 아니었다. 결국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금 채굴량이 급격히 줄어들자, 당연한 수순을 밟듯 진과스는 점점 한산한 폐광촌이 되어갔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금광이라는 신비로운 이야깃거리에 주목한 대만 정부는 1990년대에 이르러 이 곳을 관광단지로 재개발하였고, 그래서 탄생한 곳이 바로 이 곳, 진과스 황금박물관이다. 여러 번 왔더라면 지나쳐 갔겠지만, 첫 대만 여행이니 관공명소라면 빼놓지 말고 들러봐야지.


오늘 우리 부부의 관광지 헌팅에 낚일 이 곳 진과스 황금박물관의 명물은 바로 220kg짜리 초대형 금괴와, 50년전 광부들이 땅 속으로 들어갈 때 들고 갔던 도시락 꾸러미를 재현한 '광부의 도시락'.


결론적으로 우리 부부는 배금주의와 식탐의 노예가 되어 오늘 이 곳에 온 셈. ㅡ.ㅡ;;



택시를 타고 왔으니 헤멜 것도 없이 바로 진과스 황금박물관 입구에 내린 우리 부부는, 억수같이 내리는 비와 꽤나 쌀쌀하게 불어치는 바람에 냉큼 박물관 안으로 돌입.


비가 이렇게 많이 올 줄 모르고 쪼그만 접는 우산만 챙겨왔던 우리 부부는 아까 20원 주고 산 비닐 우비를 행여 찢어질세라 소중히 입고 댕겼다. ㅡ.ㅡ; 막상 샀을 때는 대륙 퀄리티의 너덜대는 노란 거적떼기가, 지금은 없으면 눈물나는 잇템.


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안내소가 있는데, 여기서 한국어로 된 안내문을 비롯하여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니 꼭 들러보자. 물론 우리 부부는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잠시 피하기 위해 ㅡ.ㅜ 강제로 들름 당했다.



우리 부부는 박물관 지도를 득템한 후 안내소를 나섰다. 지금은 오후 3시 반. 장대비는 절대 그칠 일 없다 하시고, 우리 부부는 스산한 기온과 우중충한 날씨에 영혼이 반쯤 털린 상태.


이럴 땐 그냥 밥이 갑일세.

으슬으슬 추울 땐 뱃속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은 저절로 광부도시락을 파는 '광부식당'으로 향했다.


광부식당은 안내소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한참 가면 있는데, 안내표지판에 신경쓰면서 가자. 실제 길 자체는 복잡하지 않지만 길이 좁고 여기저기 계단이 많아 길 헤메기 좋으니 유의. 평소에 한국에서도 네이버 지도에 의탁하여 방향무식자로 살아왔다면, 여기서도 틀림없이 당신은 방향무식자.


자신 없으면 안내소에서 겟츄한 지도를 반드시 참조할 것.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식당 앞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

허기가 질 때 Strider는 종종 괴수화하곤 하지만, 오늘은 귀요미 광부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줄을 서서 기다리자.



30여분을 기다리자, 우리 부부도 드디어 한 자리 차지하고 도시락을 주문할 수 있었다. 바글대는 사람들로 인해 테이블에 앉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꾸고, 그냥 창가 자리에 앉아서 광부도시락을 주문.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광부도시락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 호갱님을 위한 '광부도시락 패키지' 버전: 양철 도시락에 귀여운 보자기와 젓가락을 함께 포장해서 주는 290NTD 짜리. (물론 도시락과 보자기, 젓가락은 호갱님의 것)

- 단호박 고객을 위한 '그냥 처묵을께' 버전: 짜기로는 천일염 수준인 고객들을 위한, 그냥 그릇에 처묵으라고 내놓는 180 NTD 짜리. 내용물은 똑같음.


우리 부부는 여행 말미라 그런지 초반의 짠돌이 감성 ㅡ_ㅡ;; 을 벗어 던지고 과감히 호갱님이 되기로 하였다. 잠시 후 우리 앞에는 보자기로 꽁꽁 싼 광부 도시락과, 차갑게 식은 몸을 덥혀 줄 홍차 두 잔과, 후식 쿠키가 대령.


물론 한국인의 영혼의 맛, 달찬들 태양초 볶음 고추장은 상비약으로 찬조출연.



드디어 도시락 개봉 !


저 간장간장해 보이는 기름진 통돼지갈비의 짭쪼름st 비주얼이 식욕부자 ㅡ.ㅡ; Strider의 침샘을 자극한다 !! 거기에 돼지갈비만 먹으면 텁텁할까봐 살뜰히 함께 챙겨준 야채절임, 그리고 대만의 마스코트 초두부.


비쥬얼은 허전한 듯 하지만 속을 파보면 의외의 탄탄한 구성을 자랑하는 광부도시락 (feat. 호갱용 양철도시락). 귀여운 광부 캐릭터가 그려진 보자기까지 덤으로 주니, 축 늘어진 덕력을 한껏 끌어 올려주는 살뜰한 패키지 !!


자, 그럼 감상은 여기까지. 이제 한 입 먹어볼까.


... 오홋. 이것은...


고슬고슬한 밥알에 짭쪼름하게 잘 익은 쫄깃한 돼지갈비가 어우러진, 소박하지만 탄탄한 맛 !! 거기에 새콤아삭한 야채절임, 그리고 냄새를 저버린 ㅡ_ㅡ;; 아이덴티티 상실한 다진 초두부도, 도시락 전체의 맛을 끌어올려주는 감초처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놀라운 한 끼다 !!


가격(한화 11,000원)으로 치면 약간은 비싼 감이 있지만, 기대 이상의 맛에 더하여 기념으로 주는 양철 도시락과 보자기를 생각하면 괜찮은 값이다. 도시락과 보자기가 필요없는 사람은 7,000원 정도 하는 일반 버전을 사드시면 되겠다.



[ 진과스 황금박물관 광부도시락 ]

맛: ★★★★★

가격: ★★★★☆

양: ★★★☆☆


- 한 명이 먹기엔 양이 충분하지만, 둘이 나눠 먹기는 양이 약간 부족하다. 둘이서 먹는다면 도시락 패키지 하나, 일반 버전 하나를 시켜 먹자.

- 한국인이 원하는 매콤한 맛이 약간은 부족하니, 휴대용 고추장을 참전시키면 ㅡ.ㅡ;; 광부 도시락에는 승리의 브이.



배를 채웠으니 이제 배금주의를 쫓아 황금박물관으로 ! 220kg짜리 초대형 금괴가 모셔진 황금박물관은 광부식당에서 윗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있다.


사진의 곰돌이는 박물관 입구에서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전시된 녀석으로, 왼손에는 옛날 중국에서 쓰던 금괴를 들고 있고, 불룩 나온 배에는 한자로 '금'자를 금색으로 써 붙였다.


금괴를 향해 있는 저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보라. 거의 황금좀비각. ㅡ_ㅡ;;

불룩하게 솟아오른 배때지까지 포함해서, 220kg 금괴를 찾아 나선 Strirder의 완벽한 도플갱어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 윗층으로 올라가면, 멋진 세밀한 세공을 자랑하는 장식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내 손에 넣을 수 없는 금붙이 따위, 그림의 떡일 뿐.


몇 번 기웃거리다가 사진 몇 장 찍고 바로 외면. ㅡ_ㅡ;;;


엄청 작은 악세서리의 경우, 세공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현미경을 갖다 놓았는데, 그 세공 수준이 으리으리하다. 요즘은 '대륙 클라스'라고 하면 허접한 퀄리티를 이야기하지만, 예전 대륙 클라스는 넘사벽일세. 예전 백제나 신라, 가야의 귀금속 세공기술이 굉장했다고 하지만, 여기 있는 이 세공품들도 절대 꿀리지 않는 레벨.


동북아 삼국은 유전적으로 손재주가 좋은갑네.



그렇게 헤메이다가 박물관 맨 꼭대기 층에서 드... 드디어 발견 !! 220kg 짜리 초대형 금괴 !!

말이 좋아 금괴지, 저 어마무시한 사이즈를 보라. 인디아나 존스나 라라 크로포트가 와도 너무 무거워서 도굴 못할 ㅡ_ㅡ; 심쿵한 비현실적인 크기다.


유리상자에는 누가 훔쳐갈세라 팔만 겨우 넣어볼 수 있을 사이즈의 구멍을 뽕 뚫어놨고, 상자 아랫쪽에는 이 금괴가 오늘의 금 시세로 얼마인지 알려주는 전광판이 있다.


Strider의 방문 당일 금 시세로, 이 220kg 금괴는 2억 7천 NTD !! (한화 100억 4천만원)

아련한 눈빛(에 탐욕을 가득 담아), 떨리는 손으로 팔을 넣어 금괴를 잡아 보았다.


아... 금의 기운이 온 몸으로 스멀스멀 퍼져나간다. ㅡ.ㅡ;; 세상은 배금주의로 반짝반짝 아름답구나...

금괴를 짚은 손가락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이... 이... 이 금괴를 기필코 손에 넣어... 후후후... 흐흐흐하하하하... 골룸 !! 골룸 !!'


... 헉 !!! 이... 이런... 평정심을 찾자...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골룸이 된 느낌이었다. ㅡ.ㅡ;;

흑... 이 금괴는 드래곤볼을 모으지 않는 이상 내 평생 손에 넣어볼 수 없는 금덩어리... Strider의 돌 같은 도덕심이 잠시 흔들렸다... 황금 보기를 황금 같이 할 수 밖에 없는 비루한 정신력...



우리 부부는 금괴에 대한 미련을 쿨하게 버리고 박물관을 나와서, 박물관 옆에 있는 금광 체험코스인 '본산오갱 (本山五坑)'으로 향했다.


본산오갱은 과거 실제 금광으로 쓰였던 갱도를 탐방해 볼 수 있도록 복원해 놓은 곳. 진과스 황금박물관의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본산오갱은 1인당 50 NTD (한화 1,850원)의 개별 입장료를 받는다.


카운터에 입장료를 내면, 나의 멍청하지만 소중한 머리통을 지켜줄 하이바 (표준어로는 헬멧 ㅡ.ㅡ;;) 한 개와,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두피냄새가 전염되는 것을 막아 줄 ㅡ_ㅡ;; 헤어캡 하나를 준다.


헬멧을 쓰긴 하지만 머리 위에서 갑자기 돌이 떨어지거나 하진 않는다. 단지 금광 높이가 너무 낮을 뿐. 똑바로 선 마눌님 머리가 금광에 거의 닿을 정도이니, 마눌님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Strider는 당연히 거북목으로 걸어다녔다.


본산오갱의 매표시간은 평일 09:30 ~ 16:30, 주말 09:30 ~ 17:30. 참조하자.



Strider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혹시나 금가루라도 떨어져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동공에 격한 지진이 왔지만 ㅡ.ㅡ;; Strider의 허술한 스캔에 걸리는 멍청한 금 부스러기 따위는 한 조각도 없었다...


금광 안에는 금을 채굴하던 당시의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휴게소에서 진짜 광부도시락을 먹는 모습도 레알하게 재현.

통나무로 괴어놓은 천정이 무너질세라, 걱정하는 눈빛으로 다이나마이트를 터트리는 광부와, 휴게소에서 땀을 닦으며 싸온 도시락을 먹는 광부들. 우리는 맛있게 먹었던 그 도시락을, 광부들은 뽀얀 흙먼지 속에서 먹었겠거니 생각하니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위로부터 비치는 빛 대신, 황금의 빛을 찾아 내려온 깊은 땅 속.

여기서 일하던 모두가 노다지를 캐내진 못했을테지. 대부분을 일제가 가지고 간 후 남은 약간의 황금 부스러기가 이 광부들에게는 일생의 꿈이었겠거니.



본산오갱을 나와서 진과스 마을을 배경으로 마눌님 인증샷 !!


계속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때문에 마을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오래 전 언젠가 황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서 살았을 저 계곡에, 그 황금처럼 노란색 불빛이 망울망울 아롱져 있었다.

물론 맛있었던 도시락과 탐스러운 금괴를 만난 진과스는 우리 부부에게도 비오는 우울한 날씨 속에서 만난 황금 같은 멋진 곳이었고.


이제 대만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지우펀을 향해 움직여야 할 때.

우리 부부는 지우펀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진과스 황금박물관을 나섰다.



 

13편 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모티브로 삼았다던, 지우펀의 밤.

우리 부부의 발걸음은 그 화려한 환상의 거리 속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마법처럼 푸르게 변한 지우펀의 거리.

어젯밤 화려했던 그 불빛들은, 애니메이션에서처럼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 지난 1주일 간의 대만 여행처럼,

손에 넣으려던 순간 눈 앞에서 사라진 보석처럼.


대만여행의 마지막 날 발견한 보석 같은 순간의 기록. 대만여행의 마지막 6일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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