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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Aug 07. 2016

보석 같은 순간, 보석 같은 기억,
타이완

대만 여행 5 ~ 6일 차: 지우펀, 홍등 거리, 지우펀 야경

우리 부부가 진과스 황금박물관을 나왔을 때, 이미 해는 산 저편으로 내려간 후였다. 

산속에 내리는 굵은 빗줄기와 함께 날씨는 빠르게 스산해졌고, 하루 종일 빗줄기에 시달렸던 우리 부부는 진작에 방전 상태.


진과스 황금박물관 입구 건너편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지우펀(Jiufen, 九份)을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15 NTD, 한화 550원) 지우펀을 가는 버스가 따로 있으니 벽에 붙어있는 노선도를 잘 보거나,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번호를 확인하자. 버스로 15분 정도면 지우펀의 중심 거리인 지산제(Jishan street, 基山街)에 닿을 수 있다.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니까, 버스에 탄 후에는 왼쪽 창 밖으로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나오는지 잘 살펴보자. 세븐일레븐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작은 골목이 왼쪽에 나타나는데 이 곳이 바로 지우펀의 입구, 지산제다.


지우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씬에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것으로 우리나라 여행자들에게 유명하다. 대략 아래의 씬인데... 붉은 홍등이 달린, 대륙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이 섞인 이 거리의 디자인을, 지우펀의 거리로부터 따왔다고 한다.



과연 지우펀은 치히로가 겪었던 그 신비한 여행을 우리 부부에게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을까 ? 

치히로가 빨려 들어가듯 발을 들여놓았던 그 거리에, 우리 부부도 발을 들인다. 대만에서의 마지막 모험, 그 소중한 순간을 위해.



제각기 독특한 아이템들만 파는 상점들로 첩첩이, 빼곡히 둘러싸인 지산제 거리. 

하지만 거리 양쪽으로 줄줄이 늘어선 상점을 일일이 구경하며 다닐 만큼 우리 부부는 한가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내린 비에 쫄딱 젖어, 덕장에 널어놓은 반건조 오징어 두 마리 ㅡ.ㅡ; 가 된 우리 부부는 지우펀 구경은 일단 뒤로 살짝 미루고 호텔부터 체크인하기로 했다.


다행히 호텔로 걸어가는 동안 비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고, 위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좁은 지우펀의 거리는 상가들의 차양막으로 촘촘히 덮여 있는 덕분에, 비가 웬만큼 내린다고 해도 돌아다니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



흠뻑 젖은 신발을 끌고 처부닥 처부닥 좁은 골목길을 광속 돌진하여 도착 ! 우리 부부가 오늘 밤 고단한 몸을 의탁하기로 한 '고-워크 지우펀(Go-walk Jiufen)' 호텔.


사실 지우펀 같은 시골 읍내급의 마을에서 호텔 찾기란 쉽지가 않은데, 그중에서 몇 안 되는 묵을만한 숙소 중의 하나라고 과감히 추천 때리는 호텔이다. 

험난한 인도 여행 다닐 때도 깨끗한 호텔에서만 자겠다고 돈X랄을 떨었던, 깔끔병이 오지는 ㅡ.ㅡ;; Strider가 추천하는 호텔이니까 믿어도 된다.



방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전망이 있는 방은 대략 10만 원 선이고, 나 같은 잠깐 묵는 여행자를 위한, 전망은커녕 창문조차 없는 '가난뱅이 직장인을 위한 스탠더드 더블룸'은 5~6만 원 정도에 숙박 가능하다. 여행을 다니면서 '스탠더드 - 기준'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ㅠㅠ 


하지만 뭐... 어차피 밤에 잠만 자고 나올 방이니 크게 개의치 않고 깔끔하지만 가장 저렴한 방으로 선택했다. 결제금액 6만 원인 스탠더드 더블룸엔 정말 딱 침대, 욕실, 그리고 끝. 참조하기 바란다.


감동적인 조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포스트 끝에서 다시 소개하겠음.

https://www.expedia.co.kr/Ruifang-Hotels-Go-Walk-Jiufen.h8076946.Hotel-Information?chkin=2016.03.31&chkout=2016.04.08&rm1=a2&hwrqCacheKey=4dfc10cb-eacf-4f67-86bc-8d57026095dfHWRQ1458347817889&c=2018fa8c-0ba2-4a08-9e20-259cb40eb9e2&


호텔 홈페이지가 따로 없어서 익스피디어 검색 URL을 첨부하였다.

URL 오라지게 기네 ㅠㅠ


고-워크 지우펀 호텔은 대부분의 호텔 예약 사이트(익스페디아, 트립어드바이저, 호텔스 닷컴 등등)에서 조회가 되니까, 해당 사이트들에서 예약을 하면 되고, 예약한 후 보증금을 내게 된다. 나중에 숙박비에서 보증금만큼 까고 내면 됨. 우리 부부는 싼 방에서 잤기 때문에, 예약 시점에 그냥 다 결제했었던 거 같은 기억이 난다..;;


이 호텔의 최대 단점은, 지산제 거리를 따라 한참 안쪽까지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짐이 많은 경우 이 호텔에 묵는 것은 조금 비추. 좁아터진 지우펀 거리를 짐을 메고 들어가는 것은 단단히 싸놓은 김밥 속에 햄 하나 더 욱여넣겠다는 ㅡ.ㅡ? (이건 무슨 비유냐 도대체...)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길로 가는 게 정말 맞나 싶을 때까지 ㅡ.ㅡ 초심을 지키며 계속 걸어가자. 중간에 나오는 갈림길 들은 다 무시하고 그냥 계속 직진만 하면 된다. 지우펀의 집들은 문 옆에 번지수가 붙어있고, 그 번호 순서대로 길을 따라 집들이 늘어서 있으니, 이 호텔의 번지수인 '219-4번지'만 찾아가면 된다.


그럼 호텔 소개는 이쯤에서 마치고...



그다음은 당연히 처묵이지 !!! ㅋㅋㅋㅋㅋㅋㅋ 잇힝 ! 


사실 빗 속을 헤매느라 영혼까지 탈탈 털린 우리 부부에게 남은 건, 오로지 허해진 배를 채우고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길 원하는 강렬한 식욕뿐.


식욕마 두 마리 ㅡ_ㅡ; 는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마치 지우펀의 가오나시가 된 듯한 몰골로 거리를 헤매다가, 지우펀의 유명한 식당인 '산해관(山海館, 샨하이구안, Shan Hai Guan)'으로 가오나시처럼 스스슥 들어갔다.


산해관은 날씨가 맑은 날 기가 막힌 전망을 선사하는 방으로 유명한 호텔이기도 하지만, 호텔 아래층에서는 맛있는 음식들을 팔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기가 막힌 전망의 방은 비쌀뿐더러 이미 예약이 꽉 차있다. ㅡ.ㅡ;;; 약간 오바질해서, 만약 대만 예약을 한 6개월 전에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산해관은 우리 부부처럼 밥을 먹으러 가자.



아 ~ 아 ~ 아 ~ (여기가 맛있는 밥을 준다는 그 산해관이 맞나요..)



실제로는 밥 먹는다니까 신나서 셀카질 중. ㅡ.ㅡ;;; 광부 도시락 하나로 점심을 때웠던 우리 부부의 위장에 더 이상 거칠 것은 없었다. 앉자마자 점원이 가져오는 메뉴판을 독수리가 먹이 낚아채듯 잽싸게 받아 들어 펼쳐 든 우리 부부.


이미 Strider의 머릿속은 푸드 리미터 해제 상태였고, 평소 음식을 너무 많이 시켰다가 남기는 것을 경계하여 '김밥의 천국'에서도 딱 김밥 두 줄만 시키는 마눌님조차도 부부는 일심동체라며 ㅡ.ㅡ;; (왜 이럴 때만...), 너의 배가 고프면 나의 배도 고프다며, "이것도 먹을까 ? 저것도 먹을까 ?" 하며 역사에 없던 천사 미소를 날리고 있었다.


결국 이루어진 주문...



그리고 잠시 후 오늘의 음식 등장 !!!


차가운 몸을 덥혀줄 따끈한 육수가 작은 화로 위에서 보글거리는 스끼야끼.

텅 빈 배를 채워줄 고슬고슬한 밥알들이 반짝이는 새우볶음밥과 공깃밥.

그리고 밥알의 부족한 식감을 쫀득하고 탱탱하게 채워줄 새우 한 마리가 곱게 들어앉은 보석 같은 샤오마이.


대만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장식해 줄 식탁이 착착 차려졌다.



쓰끼야끼 냄비 안에 들어있던 정육면체 어묵 한 입.

보통 우리나라 샤부샤부 집에서 나오는 어묵들은 지나치게 딱딱하거나, 혹은 살짝 퍼지거나 해서 딱히 먹고 싶은 생각까지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늘의 이 어묵은 다르다. 겉에 도는 황금빛의 쫄깃한 표면을 뚫고 들어가면, 탱탱한 속살이 터져 나와서 쿠션 맞고 당구대 위를 돌아다니는 당구공마냥 입 안 곳곳, 혓바닥 위를 헤매며 희롱한다.


... 어맛 ! 희... 희롱당했어... >_<


마치 어린 시절 조금씩 아껴서 베어 먹던 천하장사 소시지 ㅡ.ㅡ; 처럼 한꺼번에 다 먹어 치울까 봐 ㅠㅠ 할짝할짝 먹었다.


그리고 이런 어묵 한 알만 맛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탱글탱글 새우살이 씹히는 샤오마이도 딘타이펑에서 먹던 그것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았고, 야채와 고기 육수가 우러나온 스끼야끼 국물은 헛헛하게 빈 우리 부부의 속을 뜨뜻하게 덥혀주었다. '후아 ~ 시원하다 ~'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국물 맛! 


사이다 마신 것도 아닌데 왜케 시원하냐 ㅡ.ㅡ;; 뜨거운 게 시원한 걸 보니 늙었나 보오... 하여간 시킨 메뉴 모두 평균 이상은 가는 괜찮은 레벨 !


우리 부부는 배부르게 속을 채우고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헤헤거렸다. 이런 단순이들. ㅡ.ㅡ;;



[ 지우펀 산해관 레스토랑 ]

맛: ★★★★★

가격: ★★★☆☆

양: ★★★☆☆


- 아쉽게도 ㅡ.ㅡ;; 영수증이 남아있지 않아, 우리 부부가 먹은 저 음식들이 얼마인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대략 900 NTD (한화 33,000원) 정도 먹었던 것 같다.

- 산해관의 위치는, 지산졔 입구에서 계속 계속 계속 올라오다 보면 왼쪽으로 길이 꺾이는데, 그 꺾이는 지점에 있는 집이 바로 산해관.



배부르게 먹은 가오나시 두 마리 ㅡ_ㅡ;; 는 '후식은 ?'이라는 본능의 질문에 답하여, 산해관 바로 오른쪽 옆에 있는 '한림차관' (翰林茶館, Hanlin Tea House) 로 또 스스슥 가오나시처럼 움직였다.


이 곳 한림차관은 1986년 오픈한, 무려 30년 된 찻집인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만에서 햄볶하다며 입에 달고 사는 버블티가 바로 이 집에서 개발한 것이라고. (이 집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ㅡ.ㅡ;;)

사실관계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하니 믿는 수밖에. 

같은 논리라면, Strider는 8등신에 초콜릿 복근이 일품인 미남자라고 합니다. (라고 본인이 주장하면 여러분은 믿으시는 건가요.)


사진을 보면 남들보다 월등히 큰 뒤통수를 수줍게 노출하고 있는 것이 바로 본인 Strider 되시겠다. ㅠㅠ 신비주의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등장하여 큰일이다...


80 NTD (한화 3,000원) 짜리 자칭 원조집의 버블티 맛은... 뭐 그냥 버블티였습니다. 대만 버블티야 어디서 뽑아먹든 그냥 싸고 맛있는 진리 입죠.

자, 이제 배도 채우고 입안도 버블티로 헹궈 ㅡ.ㅡ;; 냈으니 이제 지우펀 명물 야경 '홍등거리'가 있는 '수취루' (豎崎路) 로 가보자.



지우펀의 명물 '수취루', 많은 여행객들에게 '홍등 거리'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지산졔 입구에서 길을 따라 걸어 올라오다가, 오른쪽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좁은 골목길이 나타나는데, 이 골목길이 바로 지우펀의 명물 홍등 거리 '수취루'이다.


지산제 거리보다 더 좁은, 사람 두 명이 어깨를 맞닿아야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그런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여러 찻집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는 지우펀의 홍등 거리 '수취루'. 

경사가 꽤 급한 계단으로 이루어진 골목길, 그 길 좌우로 늘어진 전깃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붉은 등이 이국적인 느낌을 한껏 자아낸다.


홍등이 걸린 길이야 세계 어디에라도 없겠냐만은, 좁은 골목길의 촘촘한 공간감, 그리고 가파른 내리막길이라는 다이내믹한 높이감은 수취루 만의 것.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홍등의 붉은 기운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좁은 이 거리 어딘가에 비밀 한 두 개 정도 숨겨 주었을 것 같은, 70년대 어디쯤에서 발견할 법한 홍등 거리의 이 느낌은 다른 어디에서도 발견하기 쉽지 않다.



간만에 맘에 드는 사진들을 건졌다. 


한참 동안 비가 내려서일까, 공기가 맑아졌는지 사진이 쨍하게 잘 찍힌다. 빗물이 살짝 아롱진 카메라 렌즈로 찍으니 동글동글 물방울 효과까지 더해져서, 비 오는 날의 맑은 대기까지 그대로 잘 표현된 사진이 되었다.


지우펀 주변은 불빛이 많지 않아 밤하늘도 잡티 없는 깨끗한 검은빛.

마치 보석을 부드럽게 감싸는 검은 벨벳처럼, 붉은 루비가 되어 빛나는 홍등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이 내밀하면서도 신비로운 야경을 사진기에 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수취루의 층층계단을 가득 메운다. 특히, 저녁 6시경부터 8시까지는 내가 홍등을 찍으러 온 건지, 관광객들을 찍으러 온 건지 알 수 없을 정도.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떠밀리다 보면 사진은커녕,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혀서 무안한 쏴리 ~ 를 날려야 하니, 이 시간에는 여간해선 수취루 홍등 거리의 신비한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 부부처럼 지우펀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느긋하게 수취루의 어느 찻집에라도 앉아서 한 시간만 기다려보자.



수취루의 많은 찻집들이 슬슬 문을 닫기 시작하고, 타이베이에서 예스진지 코스를 따라왔던 관광객들이 서둘러 타이베이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저녁 8시 반경이 되면, 이 거리엔 해리 포터에 등장하는 어느 뒷골목의 동양 버전쯤 되는 듯한 비밀스러운 신비감이 넘쳐난다.


비밀의 성채로 이어지는 층층계단.

사람으로 가득 찼던 이 곳은, 이제 홍등의 붉은빛이 오롯이 가득 찬 길 하나만 남았다.


그 말인즉슨, 당신의 사진을 방해하던 수많은 뒤통수들이 ㅡ_ㅡ;;; 사라졌다는 의미. 

홍등을 찍으러 온 건지,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뒤통수 인증샷을 찍으러 온 건지 알 수 없었던 한 시간 전과는 다르다, 한 시간 전과는 !! 


한산해진 수취루의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지우펀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일분일초라도 놓칠까 눈을 떼지 못하고, 넉넉한 시간을 들여 홍등 하나씩 하나씩을 지그시 기억 속에 담아본다.



그렇게 한참을 거리에서 서성이다 보면, 사진을 많이 찍어 카메라의 메모리가 가득 찼다는 신호가 올 수도 있겠다.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그만큼 많이 가져갔다는 뜻일 테니, 슬슬 이 발그레한 홍등들과 작별할 시간이다.


만약 배가 살짝 고파졌다면,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찻집 어디라도 들어가서 살짝만 허기를 채운 후, 숙소로 돌아가 적당한 시간에 내일을 기약하며 휴식을 청하자. 멋진 야경을 두고 방에 들어가긴 아쉽지만, 산골짜기 마을의 밤은 쌀쌀하니 너무 늦게까지 돌아다니진 말자.


수치루 야경 감상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하루 종일 서늘한 빗줄기에 시달렸던 몸을 따뜻한 샤워로 녹인 우리 부부. 지난 일주일 동안 있었던 즐거웠던, 당황했던, 먹먹했던 모든 순간들을 다시 떠올리며 대만에서의 마지막 밤, 마지막 잠을 가만히 청했다.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밤은 지난 여정에서 얻지 못했던 것들이 아쉬워 항상 뒤척이는 법이지만, 아직, 우리는 지우펀의 모든 것을 만나지 못했으므로, 마음을 다독이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일 아침 새롭게 떠오르는 해와 함께, 오늘 만난 지우펀의 모든 것은 밤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빛으로 우리와 마주 할 테니까.



그리고 여행 마지막 날, 지우펀의 아침이 밝았다. 

어제 하루 종일 빗방울을 뿌려대던 하늘의 구멍은, 거짓말처럼 파란색 물감으로 가득 메워졌다. 


여행 마지막 날의 아침은 항상 그러하다. 간밤의 아쉬움은 온데간데없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마음과 함께, 느린 속도로 일상에 돌아오면서 느껴지는 보송보송한 상쾌함.

그 청량한 기분처럼 오늘 아침 지우펀의 하늘은 맑고, 푸르고, 깨끗하다.


짐을 맡아준 타이베이의 행리탁운중심이 새삼 고마운 순간이다. 올 때 가볍게 왔기에, 가는 날의 아침도 다시 짐을 꾸리느라 부산스러울 필요가 없다.


우리 부부는 상쾌한 기분으로 단장을 마치고, 고워크 지우펀 호텔에서 정성스레 준비해 준 아침을 먹으러 방을 나서다가...



... 이른 아침의 지우펀 마을이 너무나 평화로워, 아침식사를 잠시 미루고 아침 산책을 하기로 하였다. 

이게 무슨 신선놀음이야 ㅋㅋ 아침 산책이라니. 왠지 아재 냄새를 풍기는 듯하면서도 여유로움이 넘치는 것이 살짝 고급지쥬 ?


아 ~ 여행지에서 전투하듯이 매일매일을 바쁘게 돌아다니던 20대의 지난날. 

이제 나는 성공한 인생을 반추하며, 마치 현지인이 된 듯한 자유로움을 느끼며 지그시 아침 산책을 하..... 기는 개뿔. 이 여행으로 나는 가난뱅이 직장인에서 빚쟁이 직장인으로 수직 낙하했다. ㅠㅠ


통장잔고는 제로, 카드값은 플러스.

지갑에 돈 대신 허세가 충만하니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눈물만 나오는구나.



하지만 자존심은 악마가 인간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라고 했던가.

비록 이제는 직장인 생태계의 최하위 개체인 빚쟁이 직장인이 되었지만, 차하위 개체 ㅡ.ㅡ; 인 가난뱅이 직장인이었던 한 때를 떠올리며, 이 순간, 이 여유로움을 한껏 즐기는 Strider.



평화로운 지우펀의 아침.

사람들은 천천히 잠에서 깨어나 밝게 개인 하루를 시작하고, 초목들은 어제 하루 동안 잔뜩 머금은 빗물로 힘을 얻어 한층 짙어진 녹음을 사방에 내뿜는다.


이럴 때는 당연히 마눌님 모델놀이다. 

사진 찍지 말라고 찡찡대지만 나중에 이쁜 사진을 건지면 카톡 프사로 쓰게 보내달라는 여우 같은 마눌님. ㅋㅋ

결혼 전에는 혼자 셀카 놀이도 잘하더니만 결혼 후엔 남편한테 빈틈을 보일 수 없다신다.

녹음으로 푸르고 바다와 하늘로 파아란 배경이 마눌님을 절세 모델로 꾸밈 ~ 우리 마눌님 짱짱걸 ^0^ ~


지우펀은 바다를 면하고 있는 산비탈에 있는 마을이라, 바다를 향해 탁 트여있는 풍경 사이로, 길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산등성이의 오르내림이 저 멀리 수평선까지 나아가 섬이 되어 푸른 바닷물에 박힌다.


양떼 같은 하얀 구름과 함께, 여행자의 마음을 바다 저 끝으로 조용히 데리고 가는 양치기 같은 지우펀의 풍경.

한참을 그렇게 지우펀의 풍경에 흠뻑 빠져들었다가, 이제는 지우펀의 풍경이 살포시 가져간 마음을 다시 되찾아올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우리 부부.


아쉽지만, 느긋한 아침 산책을 끝내고, 잠시 미뤄둔 아침을 먹으러 고워크 지우펀으로 돌아왔다.



짜잔 ! 고워크 지우펀의 아침 메뉴 등장 !!

하얗고 곱게 쑨 쌀죽에 모닝롤과 여덟 가지의 소박한 반찬이 곁들여진 아침상이다.


마치 그동안 기름진 대만 음식에 쩔은 우리 부부의 위장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대만의 어느 가정식처럼 담백하고 정갈한 고워크 지우펀의 아침 식사. 심심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간도 우리 부부의 입맛에 딱 ! 

조금 부족해 보인다고 ? 죽과 반찬은 부족하면 더 가져다 먹으면 되니까 걱정 말자.


작지만 깨끗하고 편안한 방과, 헛헛한 속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아침식사에, 부담스럽지 않은 숙박비.

지우펀에서 하룻밤 묵어간다면 고워크 지우펀을 반드시 고려해 볼 만한 이유.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 부부. 이제 타이베이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짐을 꾸려 나와 마을 거리를 거닐면서 지우펀, 그리고 대만과 조금씩 작별을 나눈다.


아마, 한동안은 대만을 다시 여행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버스를 타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여행의 모든 마지막 날은 아쉽지 않을 수 없지만, 작은 아이템들, 짧은 순간들의 반짝임이 유난했던 대만 여행이었기에, 여염집의 대문, 길거리의 상점에 걸린 인형 하나도 예사롭게 지나치기가 어려워, 자주 카메라의 렌즈 커버를 벗겨낸다.


사진 속의 풍경들은 사진 속에 담아달라는 듯, 렌즈 너머에서 나를 응시한다. 지우펀 마을은 그렇게 고요하게,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채 우리 부부를 가만히 배웅해 주었다.



지우펀에서 타이베이로 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산졔 거리로 들어가는 입구 건너편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루이팡(瑞芳)행 버스를 타면 된다. 20분 정도면 루이팡 역에 갈 수 있고, 여행 출발하기 전에 한국에서 루이팡 역 - 타이베이 역 기차를 예매하면 된다.


Strider는 Tze-Chiang Limited Express 407 열차를 예매하였는데, 지금은 다른 열차가 다닐 수도 있으니, 이전에 대만 기차 예매하는 법을 설명한 포스팅을 참조하여 적절한 기차를 예매하자.


https://brunch.co.kr/@strider/12


우리 부부는 그렇게 기차를 타고 타이베이로 돌아와, 행리탁운중심에서 맡겨두었던 짐을 찾은 후 타오위안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으로 돌아올 때는,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 사두었던 국광버스 왕복 버스표를 잊지 말자.


타이베이에서 타오위안 공항으로 향하는 1819번 탑승하는 곳은 아래 지도에서 확인하면 된다. 


http://www.taiwanbus.tw/information.aspx?Lang=En&Line=4645


이렇게, 5박 6일간의 대만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른 우리 부부.


탑승장에서 우리가 탈 비행기의 탑승 안내 방송을 기다리는 동안, 카메라 안에 가득 차 있는 사진들을 들춰내어, 지난 5박 6일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여행자들은 간밤의 기억들을 곁들여 이른 아침 숙소 주인이 정성껏 내어온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의 여유를 즐기며,



그곳 마을의 사람들은 쌀 반죽처럼 길고 찰진 인생의 하루를 치장하듯, 오늘도 동글동글 잘라낸 떡가래에 하얀 고물을 골고루 묻혀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이렇게 여행기를 쓰며 되돌아본 우리 부부의 대만 여행은, 하나를 다 먹고도 주머니에서 또다시 하나를 꺼내먹고 싶은 달콤한 막대사탕처럼, 다시 맛보고 싶은 작은 순간들, 투명하게 빛나는 작은 기억들로 가득했다.



여행기를 끝마치며 오늘 다시 한 번, 타이완을 떠나온 나는, 이 소박하고 오밀조밀했던 보석 같은 순간들, 지우펀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하늘처럼 파랗고 빛나는 기억들과 언제쯤 기쁘게 재회할 수 있을까.




Strider - '때때로 찾아내는 보석 같은 순간들, 대만 여행', 끝.





(에필로그 예고)


드디어 여행 갔다 온 지 무려 1년 하고도 4개월 만에 여행기를 완성했다는 건 너와 나의 비밀;;; 마치 엊그제 다녀온 것처럼 태연하게 포스팅을 써내다니. 거짓부렁도 이 정도면 예술급일세.


그렇게 1년 반이나 지난 시점에서야 이 여행기를 써냈지만, 그 덕분에 다시 한 번 들춰본 사진들, 그리고 잠시 잊혀졌던 추억은, 한참 동안 닫아 놓았던 보석함의 뚜껑을 다시 열어 손때가 탈 세라 숨겨두었던 좋은 보석을 다시 꺼내어 두 손 안에서 희롱하며 흐뭇해하는, 그런 기분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이딴 추억팔이보다 월등히 좋은 것은, 역시 현지에서 낚아 온 풍성한 먹거리와 귀여운 기념품들이겠지. ㅋㅋㅋ


여행기의 대망을 장식하기 위해 남기는, 대만에서의 여러분들의 쇼핑을 친절히 도와줄 미친 친절함의 블로거 Strider가 대만에서 낚아온 먹거리와 기념품들 총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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