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생의 냄새와 그 기억
암릿사르에서의 첫인상을 황금사원의 야경으로 시작했다면, 빛나는 황금의 광채가 머릿속에 아직 남아있을 동안에 낮의 황금사원을 다시 한번 만나보자.
밤에 만나는 황금사원이 어둠의 휘장 속에 독야청청 빛나는, 그야말로 손에 닿기 힘든 신성한 성소(聖所)의 모습이라면, 낮의 황금사원은 노동의 금전적 가치를 중히 여기며 현재를 살아가는 시크교도들의 생의 냄새가 한데 뒤얽힌 현실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황금의 사원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지만, 그 안에서 누군가는 잠을 자고, 누군가는 기도를 하고, 누군가는 앉아서 밥을 먹으며, 누군가는 영험한 효력이 깃들어 있다는 연못에 몸을 담그며 소원을 빈다.
자고, 먹고, 씻는 각각의 일상.
그 일상 속에 스민 인도인들의 마음이, 황금사원이라는 신성한 공간에서 모두 고요히 '절대자'라는 한 방향을 향해 있으되, 모두 '제각각의 인생'이라는 테마로 날뛰고 있다는 것은, 종교적 일상과 세속적 일상이 분리되어 있는 우리의 시선에서는 참으로 독특한 심상을 자아낸다.
잘리안왈라 바그의 좁은 입구를 되돌아 나와 차량의 통행이 금지된 왼쪽 대로에 서면, 어젯밤에는 어둠 속에 조용히 묻혀있던 황금사원의 하얀 대리석 외벽이 저 멀리서 눈에 들어온다.
낮에 만나는 황금사원과 밤에 만나는 황금사원은 많은 차이가 있다.
입구에서부터 약간 어색하다.
어젯밤은 첫 방문이었기에, 그래서 황금사원의 관람을 서둘렀기 때문이었을까. 사원 입구까지 이어지는 길에서 마주치는 '인도스러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수시로 방문객을 실어 나르며 경적을 울려대는 소란스러운 릭샤 때문만은 아니다. 정돈되지 않은 길거리의 간판, 거리 곳곳을 뒹굴고 있는 콜라병, '여기는 분명히 사람이 사는 곳이다'라는 흔적이 넘쳐나는 거리, 인도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소란스러운 인간시장의 모습.
그것은 첫 만남부터 나를 사색하게 만들었던 황금사원의 첫인상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곧이어 사원 안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릭샤의 경적소리처럼 진저리 나게 머릿속을 윙윙거리는 인도의 번잡스러움일까, 아니면 또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사색의 시간일까.
팔을 들어 작열하는 햇빛을 가리며 어젯밤 느꼈던 평화로운 감격을 가슴속 한 구석에 잘 개켜 놓고, 나는 황금사원 안으로, 두 번째이지만 첫 번째인 발자국을 옮겼다.
[ Tip ]
황금사원에 입장하기 위한 규율은 다음과 같다.
- 민소매 옷이나 짧은 치마 등은 금물이다.
- 들어갈 때 술이나 고기가 든 음식, 담배, 마약 등은 소지해서는 안된다.
- 기타 장신구나 선글라스 등은 소지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황금사원을 다시 만났다.
낮에 만나는 황금사원은 밤의 그것보다는 왜소하다. 좌중을 압도하며 어둠을 가르고 홀로 빛나던 황금사원은 만물에게 공평한 태양빛 아래서는 그저 작은 건물일 뿐, 어젯밤의 감동을 주는 강렬한 황금빛은 간데없다.
그러나 낮이 좋은 이유는, 밤보다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인다는 것.
황금사원에 팔려 있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니, 이 사원에 모여든 사람들 하나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움직임과 모양새가 황금사원의 존재감보다 돋보이기 시작한다. 빨간색,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색색깔의 터번을 머리에 눌러쓴 시크교도들의 원색의 행렬은 짐짓 귀엽기까지 하다.
게다가 뜨거운 햇살에 날카롭게 벼려져 정교한 세공이 유난히 돋보이는, 황금사원의 새로운 모습은 보너스.
오후 서너 시 정도 되었음직한 시간.
한참을 돌아다녀 시큰대는 발바닥에 잠시 숨을 틔워주려 사원 구석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자니, 갑자기 경내 곳곳의 스피커에서 시크교의 기도문 낭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무슨 뜻인지 알 도리는 없다. 그러나 주변을 서성이던 인도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황금사원을 향하며 손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데서, 그 기도문이 중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인도인들은 어느새 이마와 입술 사이로 바쁘게 손가락을 놀리며 기도문 같은 것을 나지막이 읊조리기 시작했다. 나는 종교적 신념은 없었으나, 옷매무새를 주섬주섬 추스르며 일어섰다. 그 주변의 분위기가 그러했던 것도 있지만, 귀찮을 수도 있는 그 움직임은 그 순간엔 당연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것은 나 같은 이방인이건, 같은 땅에 살되 다른 믿음을 가진 힌두교도나 이슬람교도이건, 이 공간의 주인인 시크교도들에게 이곳을 방문한 손님으로써 가져야 할 겸허함을 표시하는 방법으로써 자발적이면서도 과하지 않은 적당한 수준의 예절이었다.
그리고 그 적당한 수준의 예절이면, 이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 자연스럽게 허락된다.
공간과, 공간의 주인과, 방문자가 대화로써 그 합의에 이른 것은 아니었으나, 그 묵언의 룰은 굳이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 본성의 발로일 것이었다.
그 인파들 가운데, 한 노여인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지그시 황금사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딸인지 며느리인지 옆에 선 젊은 여인의 상기된 표정과는 대조적인 차분한 표정이다.
자글하게 주름이 잡힌 손을 마주 잡은 저 여인은, 어쩌면 평생을 기다려온 순례의 길에서 드디어 오늘 황금사원을 만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이는 무엇을 바라며 두 손을 모았던 것일까. 담담한 얼굴의 의미를 읽기는 어려웠으나, 오히려 격정적인 표정이 아니었기에 기도의 의미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가족의 안녕이나 스스로의 건강같이 소소하고 일상적이지만, 절대자의 도움이 없이는 쉽사리 이루기 어려운 그런 기원들이었을 것이다.
인간다운 삶의 유지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인구가 태반이 넘는 이 나라에서, 이 구석진 곳까지 여행을 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여행을 하며 만났던 인도인들 중 많은 수가 아직 타지마할조차 가보지 못했다고 하였으니, 암릿사르는 오죽할까.
그래서 나는, 이 노파의 기도가 일생의 한 번이었을지도 모르는 짧은 순간을 오롯이 바쳐 올리는 소중한 기도일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넘겨짚기로 하였다. 그러자, 노파뿐만 아니라 황금사원을 향해있는 모든 이의 이 시간이 귀중해 보였다 ! 길지 않은 여행의 한 토막을 내어 굳이 이 작은 공간에 모여든 것은, 절대자만이 치워줄 수 있는 고단한 인생의 십자가를 각자 하나씩은 들고 있음일 테니까.
뜻을 알 수 없는 기도문에 조금 지쳐갈 때, 마침 한참 동안 사원의 경내를 울리던 몽롱한 기도 소리가 그쳤다. 나는 회랑을 따라 천천히 황금사원을 한 바퀴 돌며 어젯밤의 화려한 야경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몇 군데의 부속 건물들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위성지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황금사원은 회랑이 붙어있는 다양한 부속 건물들이 중심의 암리뜨 사로와르를 정사각형 형태로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이다. 이 큰 건축물이 오로지 황금사원 하나 만을 위해 존재할 리는 없다. 분명히 이 안에는 황금사원 말고도, 방문해 볼 만한 곳이 있을 터였다.
사원의 정문으로부터 왼쪽으로 걷다가 연못의 귀퉁이 하나를 돌면, 연못 가장자리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많은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있다. 다른 연못가에는 목욕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목욕 인파는 이 나무 근처에만 유난하다.
나무의 이름은 두크 반자니 베리. 영물이라도 되나 싶어 가이드북을 뒤적이니, 아니나 다를까 이 나무에는 어느 사원에나 하나쯤은 있을 법한 전설이 하나 얽혀 있었다.
패티 마을이라는 곳의 부유한 지주였던 두니 찬드 까트리가 어느 날 아름다운 네 명의 딸에게, 너희들이 입고 먹는 것은 모두 누구에게로부터 오는 것이냐 물었다.
이에 다른 딸들은 '그것은 모두 아버지에게서 받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으나, 라즈니라는 이름의 딸이, '그것은 모든 것을 관장하시는 신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대로한 두니 찬드 까트리는, 라즈니를 문둥병자와 결혼시켜서 내쫓아버렸다
하지만 라즈니는 그에 개의치 않고, 문둥병자 남편을 지극히 간호하며 살다가 암릿사르로 이주해 오게 된다.
시크교에 귀의한 라즈니와 남편은, 독실한 시크교 신자가 되어 암릿사르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라즈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았고, 라즈니가 일하는 동안 남편은 연못 옆의 나무 그늘에 앉아 있곤 하였다.
어느 날 라즈니의 남편이 홀로 그늘 밑에 앉아 있다가 까마귀 한 쌍이 그 연못에 몸을 담그는 것을 보게 되었다. 잠시 후 놀랍게도 까마귀들은 깃털 색깔이 하얗게 변하였고, 이윽고 날아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본 라즈니의 남편은 이 연못의 물이 범상치 않은 것을 알고, 문둥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몸 또한 나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연못에 몸을 담갔다. 과연 라즈니의 남편은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문둥병이 깨끗이 낫게 되었다.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나무 근처의 연못에 몸을 담그면 몸이 낫고 건강해진다고 믿게 되었으며, 이후 황금사원이 그 나무와 연못 주변에 세워지게 되었다.
어느 오래된 나무에나 얽혀있을 법한 평범한 옛날이야기다. 하지만 사실 여부도 알 수 없는 전설 하나를 믿으며, 인도인들은 물에 신성성을 부여하고 깨끗한 생명을 갈구하며 거리낌 없이 옷을 벗어젖히고 연못으로 들어간다. 비단 이 곳뿐만이 아니라, 갠지스 강이든, 집 앞의 개울이든, 그곳이 신성한 곳이라는 이야기 한 소절만 있다면 인도인들은 당연하다는 듯 강물에 몸을 담근다.
신성한 물에 집착하는 인도인들의 저 구릿빛 몸짓은, 우리의 눈에야 당연히 오염된 물에서 목욕을 하는 비위생적인 행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폭염으로 달아오른 메마른 땅에서 살아가기에, 물로부터 생명 - 이성으로 모두 헤아리기 어려운 그 신비한 자연의 결정체 - 을 얻는다는 것을 대대손손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도 강제하지 않는 저 행위를 이어나가는 이유를 이성적으로도, 심지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문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했지만 그만두기로 하였다. 단층처럼 누적된 수 천년의, 수 억 명의 시간들을 헤집으며 '그 더러운 물에 도대체 왜 들어가는 겁니까 ?'라고 반항적으로 물어보기엔 나의 마음이 충분히 단단하지 않거니와, 제대로 된 질문도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우리에게 '한국인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삽니까?'라고 묻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
두크 반자니 베리의 맞은편에 있는 건물 입구에서도 인파가 북적이고 있었고, 그 천정에는 어느 경전 구절에서 가져온 듯한 문구들이 붙어 있었다. 고어까지 섞인 그 문구들을 한눈에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나, 대충 '스스로 찾는 이에게 일용할 양식이 주어지고 앞길이 열린다'라는 정도의 뜻인 듯했다.
이 곳의 이름은, 황금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구루 까 랑가르'. 세계 어느 곳의 시크교 사원을 가더라도 같은 이름의 건물을 찾아볼 수 있는데, '구루 까 랑가르'는 시크교 사원을 방문하는 모든 방문자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이다.
구루 까 랑가르는 무료로 식사를 하기 위한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 성별, 나이, 인종... 그 어떤 사회적 구분도 상관이 없고, 심지어 종교의 추종과 관련한 그 어떤 행위도 따로 요구함이 없다. 시크교 사원을 방문한 모든 사람은 구루 까 랑가르에서 식사를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
계단의 좌우로 쌓여있는 엄청난 양의 식판 무더기가 건물 입구에서 시선을 잡아 끈다. 구루 까 랑가르에서 식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둥근 식판을 하나씩 받아서 건물 1층과 2층의 식당으로 올라가면 된다.
입구에서는 시크교 전통 복장을 갖춘 봉사자들 외에도, 나처럼 머릿수건을 동여 맨 비(非) 시크교도들도 함께 식판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구루 까 랑가르에서는 시크교도가 아니더라도 원하는 사람들은 자원하여 식판 불출이나 배식, 설거지 등의 봉사를 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그 봉사자들인 모양이었다.
작은 산처럼 쌓여있던 식판은, 몇 명의 봉사자들이 식당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쉴 새 없이 식판을 나누어 주자 이내 동이 났다.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가 아님에도 구태여 봉사활동을 하는 그들의 마음이 일견 이해되지 않았다. 몰려드는 사람의 수가 적지 않아, 식판 불출 같은 간단한 일 조차도 쉽지는 않아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도움 없이는, 이 수많은 방문자들이 무질서함을 이겨내고 편안히 밥을 먹기란 어려울 것이었다. 너도 나도 식판을 집어가겠다고 몰려들어, 가지런히 쌓여있는 식판 무더기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의 입에 따뜻한 밥 한 술을 무사히 먹이는 일은 이렇게 노곤하지만, 그만큼 거룩하다. 봉사자들 스스로가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노곤함을 기꺼워하는 봉사자들의 바쁜 손놀림은 나에게 거룩해 보였다.
구루 까 랑가르의 위층으로 올라가면, 여느 식당처럼 식사를 하고, 또 배식을 하는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사실 독특한 것은 그 식사의 양상이다. 웬만한 강당 넓이의 홀에는 특별한 집기가 없이 사람이 앉을자리를 표시한 긴 거적 만이 줄지어 깔려있을 뿐이고, 거적을 따라 홀의 바닥에 줄을 지어 앉은 사람들이 입구에서 받은 식판에 되직한 카레와 인도식 빵 몇 조각을 받아 식사를 한다. 이 식당의 모든 사람은 똑같이 바닥에 둘러앉아 똑같은 식판에 똑같은 음식을 대가 없이 나누어 먹는다. 이 거적 위에서 한 끼 식사를 거쳐간 사람의 수는, 구루 까 랑가르 앞에 켜켜이 쌓인 놀라운 숫자의 스테인리스 식판보다 훨씬 많을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에 - 높고 호화로운 식탁이 필요 없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에 - 금은 수저가 필요 없이 똑같은 식기로 밥을 먹는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에 - 낼 수 있는 돈에 상관없이 똑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물론 현실적 제약 때문에, 그들이 나누어 주는 빵과 카레는 사원 밖의 식사보다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영국에 사는 부유한 시크교도와 인도에 사는 가난한 힌두교도가, 이 안에서만큼은 같은 음식을 같은 눈높이에서 같은 방식으로 먹는다. 이것은 강요된 평등이 아닌 선택된 조화였고, 음식의 가치는 내가 가지고 들어온 사원 바깥의 규칙으로 가늠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의 식판이 빌세라 자원봉사자들은 바삐 걸음을 놀려 음식과 물을 채워준다. 손수레 같은 것이라도 사용할 법 한데, 봉사자들은 음식이 담긴 통을 기꺼이 손으로 들어 나르고 있었다.
하루에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간다는 이 식당에서, 무거운 음식통을 들고 허리를 굽혀가며 하루 종일 음식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봉사라기보다는 차라리 중노동에 가깝다. 그럼에도, 백발이 성성한 시크교인이 허리를 굽혀 사람들의 물잔을 채우는 모습은, 성스러운 행동의 어떤 표상처럼 여겨졌다.
500여 년 전, 시크교의 창시자가 인도 전역을 순례할 적에 사람들에게 받았던 도움에 보답하고자, 시크교 사원에서는 이렇게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방문자 모두에게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듣기에 꽤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물통을 기울이는 저 이의 봉사가 없었다면, 그 아름다운 생각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실체가 없이 공허할 것이었다.
큰 생각이나 마음을 땅 위의 삶의 한가운데로 데리고 오는 것은, 그렇게 작은 움직임이었다.
오늘도 황금사원에서는, 고개를 돌리고 식사를 하고 있는 수녀님과 힌두교 여인 사이에 남아있는 약간의 간극,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메우고자, 빵 굽는 화덕이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카스트가 지배하는 인도 땅에서, 시크교는 브라만들의 계급주의와 종교적 특권의식을 거부하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창시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꿈인가. 화합은 인간의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부터 바라왔던 모든 사람의 소망이었지만, 지금도 이 지구 위의 어느 땅, 어느 마을, 그리고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증오와 시기가 독버섯처럼 자라난다.
그 옛날 시크교를 창시한 이는, 다 같이 바닥에 앉아서 먹는 한 끼의 밥숟갈에도 그 요원한 꿈이 담겨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 이것은 머리를 숙이며 가만히 식사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떠오른 내 멋대로의 생각이었지만, 가히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밥은 생명 가진 모든 이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일 테니, 밥에서부터 차별이 생겨난다면 세상은 카스트 제도 같은 비합리적 불평등에도 무뎌지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이 그렇게 가지고 힘센 자가 없고 약한 자를 깔고 앉는 금수의 세상, 한 뼘을 더 갖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는 폭력의 세상보다는 이성 있는 사람의 세상이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울 것 없는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하지만 그 당연함이 이뤄지기 어려운 지금의 세상에서, 평등한 높이의 이 한 끼의 식사는 역설적이게도 참으로 고귀해 보였다.
구루 까 랑가르에서 나누어 주는 식사는 무료인 만큼, 화려하거나 특별히 맛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정신에 공감하면서 식사를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면, 식당 곳곳에 놓여 있는 기부함에 기부를 해도 무방하다.
기부액 또한, 자신이 원하는 만큼 넣으면 된다.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자라면, 바짓춤에서 딸랑거리는 관리하기 불편한 동전들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5루피짜리 동전에 감사하는 마음을 2,000루피만큼 담아서 기부함에 넣도록 하자.
구루 까 랑가르를 나와 황금사원을 모두 둘러보고 정문의 계단을 다시 되돌아 나가려던 찰나.
잘려나간 오른손을 붕대로 동여맨 채 성스러운 황금사원을 향해 깊이 절하는 저 이의 모습은, 언제 다시 돌아와 볼지 모를 사원의 마지막 모습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어대던 나를 숨 막히는 상념으로 이끈다.
아마도 저 이는, 성스러운 이 곳에 발을 들이기 위해, 없는 주머니를 털어 깨끗한 새 붕대를 샀을 것이다.
한 벌 밖에 없는 옷이지만, 집 앞 여울물에 깨끗이 빨아 뜨거운 햇살 아래 바싹 말렸을 것이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을지도 모를 세탁소 주인장에게 깨끗한 다림질을 신신당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며칠을 들여 정성껏 준비한 후 매무새를 가다듬고 성스러운 이 사원에 발을 들인 저 이는, 무엇을 바라며 무릎을 꿇은 것일까.
아마도 그는, 오늘 일용할 양식을 쉬이 얻을 수 있도록 신의 은총을 바랐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집에서 그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을 바랐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언젠가 인생에 한 번은 있을지도 모를, 벌이가 아주 탐탁한 운수 좋은 날을 소망했을 것이다.
절대자는 그에게 장애라는 시련을 안겼지만, 그는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절대자에게 희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절대자에게만 의지하려 하는 나약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머리를 깊게 조아린 그 모습이, 시련에 맞닥뜨렸을 때 허리를 곧추세우는 오만함 대신, 시련을 받아들이고 무릎을 굽히는 겸허한 자세로 다음을 준비하는 작지만 강한 인간의 표상처럼 다가왔다.
힌두교도에 의해 지배되어 온 인도에서, 소수 종교인 시크교도가 받았던 박해와 압제의 역사 또한 여행자로서는 지나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 글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황금사원 안에는 500여 년간 지속된 힌두교도의 탄압을 기록해 놓은 박물관도 있으니 시간이 있다면 놓치지 말고 방문해 보자.
목욕하고, 먹고, 기도하는... 종교적 규율의 공간 안에서 존재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일상적 행위가 어지러이 뒤섞여 있지만, 그것이 어색하지 않은 이질적인 공감각.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을 그 거북하지 않은 생경함에서 나는 짙은 생의 냄새는, 밤의 황금사원이 보여준 압도적인 야경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날 때까지 잊지 못할 그 모습을 뒤로한 채 황금사원을 나선 나는, 암릿사르 인근의 인도 국경 마을 와가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