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릿사르: 신성한 금빛 열망의 도시 (4)

인도 여행: 생의 냄새와 그 기억

by 게으르니스트

꽤 오랜 시간, 황금사원의 출구에 서서 카메라의 렌즈로 사원 구석구석을 탐침하듯 꼼꼼히 훑었다. 그렇게 스스로 다그치듯 연실 셔터를 누른 것은, 역설적이게도 황금사원이 주는 감흥에 무뎌지고 있음을 부지불식간에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공간에서 무언가 더 건질 것이 없을까, 하는 집착은 이 시절에는 버리지 못했다. 두근거림의 역치가 올라가고 있었기에, 욕심을 채우기 위한 더 많은 자극이 필요했다. 이틀 밤낮을 사원 안에서 보냈으니 암릿사르가 품은 가장 큰 보석은 충분히 즐긴 셈일텐데도, 초보 여행자의 탐욕스러운 마음은 한참 동안 카메라를 얌전히 두지 못하였다.


가이드북을 챙겨 읽은 덕에 다음 행선지가 정해져 있어서 그나마 이 곳에 작별을 고할 수 있었다. 다음 방문지는 암릿사르 인근의 작은 마을 와가 (Wagah). 독특한 국경폐쇄식으로 여러 매스컴에서 유명세를 탄, 인도와 파키스탄을 잇는 유일한 육상관문이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매일 양국 군인들이 국기를 하강하며 화려한 제식행사와 함께 국경 통문을 걸어잠그는 제식을 벌인다. 몇 천여명이 전사한 여러 번의 분쟁을 치뤘음에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국경을 완전히 폐쇄하지 않았다. 완전히 단절된 분단국가의 시민인 나는 군사적 긴장 속에서도 적에게 문을 연 채 살아간다는 것의 모습이 궁금했다.


황금사원 앞에 미리 불러놓은 대절택시를 타고 와가로 향했다. 인도의 먼지투성이 길을 사방이 뚤린 오토릭샤로 달릴 자신은 없었다. 에어컨을 틀고 차창을 올렸는데, 옆을 달리는 릭샤 안에 바람에 휘날리는 마스크를 부여잡은 몇 명의 여행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오고 가는 시선 속에 낮뜨거운 만족감과 긍지 넘치는 부러움을 서로 교환했다. 인도 여행은 바닥까지 고생해야 제맛이라는 뿌리 없는 편견이 싫었지만, 그 순간 만큼은 그들이 안쓰러울 만큼 도로 위에 흙먼지가 많이 날렸던 탓이다.


와가 국경검문소 앞에 늘어선 인파

그렇게 한 시간 여를 달려 와가에 도착했다. 와가라는 마을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방문하는 이는 거의 없지 않을까. 이는 도착하여 국경검문소 쪽으로 다가가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마을의 거리는 한산했지만, 검문소 정문에는 국경폐쇄식이 진행되는 일몰까지 시간이 남았음에도 벌써부터 꽤 많은 인파가 늘어서 있었다. 택시까지 대절해서 서둘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선착순으로 관람석에 앉힌다는 가이드북의 설명이 기억났다. 나는 사람들의 대열에 황급히 합류했다.


세계적으로 꽤 많은 언론에 소개된 곳이어서 외국인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검문소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의 대부분은 인도인이었다. 군사적으로 대치 중인 나라의 코 앞에 모여든 인도인들의 심중을 나는 알 수 없었다. 비유하자면 판문점에서 태극기 하강식을 하는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든 셈이었다. 우리, 아니 적어도 내 세대에게 판문점은 반공교육 할 때나 되어야 방문하는 음습한 공간이었다. 완장 찬 헌병의 싸늘한 눈빛, 우울한 회색의 각진 건물들, 주변을 압도하는 현실감 없는 고요함, 분계선 건너의 북한 군인들을 바라보는 연민 섞인 복잡한 감정들, 그것들이 60년 넘는 시간 동안 판문점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게 요구한 절제된 심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색색의 터번이며 사리와 함께 이곳에 몰려든 인도인 특유의 무질서한 행렬에는, <분쟁>이라던가 <통제> 같이 적국의 입구에서 의당 만날 법한 건조한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이곳은 시끄럽고 북적거리는, 그냥 인도였다.


몸을 대충 더듬대는 것으로 검문은 끝

잠시 후, 행렬이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형식적인 검문이 시작되었다. 칙칙하고 답답해 보이는 인도 경찰의 감색 제복이 느슨해진 긴장감을 잠깐 조여주는 듯 했지만 그 생각도 잠시 뿐, 쭈볏대며 몸 수색을 받고 가방 속을 보여주는 것으로 경찰의 검문 절차는 싱겁게 끝이 났다. 파키스탄에 가까워지는 마지막 통제절차조차 느슨했고, 검문게이트를 벗어난 인도인들은 관람 스탠드로 대오없이 우르르 몰려갔다. 외국인들은 여권을 확인하는 간단한 절차를 통해 '외국인 전용석'이라는 특혜가 주어지긴 했지만, 기왕 볼 것이라면 가장 앞자리에서 보는 것이 흥미진진할 터. 나도 뒤질세라 인도인들 틈에 섞여 스탠드의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달음질을 쳤다.


열심히 달려 봤지만 관람석은 이미 인산인해

... 더운 날씨에 달리느라 괜히 힘만 뺐다. 이미 스탠드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평소엔 속터질 정도로 느긋한 인도인들이 한국의 선착순 달리기에 길들여진 나를 제치고 제일 첫 줄에 앉아있을 줄이야. 한참을 두리번거려 결국 그나마 국경 쪽에 가까운 외국인 전용석의 뒷쪽 자리에 앉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국경 너머 보이는 파키스탄 측 관중석

자리를 잡고 앉아 행사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웅성거리는 관람객의 행렬은 쉼없이 꾸역꾸역 행사장으로 밀려들어와 어지간한 체육관 규모의 스탠드를 가득 채웠다. 스포츠 국가 대항전을 방불케 하는 인파였다. 모여든 사람의 수에 놀라워 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가 문득 국경 건너 파키스탄 쪽을 바라보았다. 앉아있는 관중이 드문드문했다. 이윽고 사람이 채워지긴 했지만, 시간이 꽤 지날 때까지도 인도 스탠드 쪽보다는 한산한 편이었다. 인도와 분리된 후 오랜 시간 동안 파키스탄은 군사독재로 더디게 발전했고, 지금 국제 경제에서 인도와의 위상 차이는 현격하다. 인도 쪽으로 기울어 보이는 관중의 차이는 지금 두 나라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관람석에 모여든 인도인의 인파는 파키스탄 쪽을 향해 이보라며 위세를 떨치는 듯 했다.


친절한 닭벼슬

군인들이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웅성대던 장내를 어느 정도 정리했을 즈음, 관람석 맨 앞줄에서 한 남자가 앞으로 걸어나와 마이크를 들었다. 사내의 옆에는 닭벼슬 같은 장식을 머리에 단 군인들이 일렬로 각을 잡고 늘어섰다. 파키스탄 쪽의 하늘이 차츰 석양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국경폐쇄식 행사는 정확히 정해진 시간 없이 일몰 시간에 맞춰 진행된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꼿꼿한 자세로 선 남자는 과장된 손짓과 함께 뭐라뭐라 설명을 하다가, 대뜸 고함을 질렀다.


"Hindustan Zindabaad !!"

(인도 만세)


관중들이 남자의 선창에 맞추어 함께 "인도 만세 !"를 외치자 장내는 후끈 달아올랐다. 인도국기를 흔드는가 하면 북받치는 애국심을 못이기고 혼자서 "인도 만세 !"를 연창하는 사람까지, 국경검문소의 분위기는 일순간에 끓어올랐다. 여기가 적국 파키스탄의 앞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이것은 사실 도발행위였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편의 분위기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파키스탄 응원석 앞에도 한 남자가 관중들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오히려 상대편 사회자와 미리 합이라도 맞춘 듯, 두 남자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흥이 돋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기름을 들이붓는 요란한 볼리우드 음악이 스피커에서 터져나왔다.


두둠칫 두둠칫 볼리우드 댄스타임. 자이호 !
국기들고 뜀박질은 여자와 노인만 시킨다. 남자는 왜..? ㅜㅜ
크기변환_DSC05350.JPG 이 분은 신나셨지만 뒤에는 저격총 든 스나이퍼. 서늘...

입장할 때 보았던 무질서함과 매한가지로, 이 모습 또한 적대국 간 국경지대의 모습이 아니었다. 들썩대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도의 여염에서 만나던 그 정신사나운 소란함과 다르지 않았다. 사회자는 관중들을 관람석 아래로 불러내려 요란한 춤판도 벌이고, 국기를 주고 통문 바로 앞까지 뜀박질도 시켰다. 사회자의 역할은 관람객들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었다. 되려 근엄한 척 하기 좋아하는 인도인들을 자극하여 파키스탄을 향해 숨겨둔 열정을 폭발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그의 임무인 듯 했다. 인도인들은 제 흥에 겨워 속속 앞으로 튀어나갔고, 몇몇 외국인들까지 그 대열에 동참하는 바람에 국경검문소는 순식간에 클럽이 되었다. 볼리우드 영화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오던 그 떼춤 씬이 눈 앞에서 그대로 벌어졌다. 짙은 낯빛에 주름진 눈가,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망울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인도의 클리셰였지만, 인도인들의 본성임 본래 흥부자인가 싶을 정도로 국경지대의 삭막함은 단숨에 사라지고 장내는 열광으로 끓어올랐다. 파키스탄 쪽도 질세라 열심히 함성으로 응수하였다. 서로 총질하던 두 나라의 사람들은 이 작은 공간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었다.


한 세대를 건너온 분단과 대치가 이젠 일상에 고착된 기본조건처럼 여겨지는 나의 세대. 북한과 가벼울 수 없는 관계인 채 60여년을 보낸 우리에게 지금 이 광경은 낯선 한편, 또 가벼워 보이기도 하였다. 이곳의 인도인들과 파키스탄인들은 경쾌한 몸놀림과 함성으로 국경을 넘어 오고 갔다. 정치나 이데올로기의 속박이 없을 때, 두 나라의 민초들은 어떻게 서로 말문을 트는 것이 옳은지 스스로 알고 있는 듯 했다.


남자들에겐 익숙한 '전방에 함성 5초간 발사'. 인도군인이라고 뭐 다르지 않다...

잠시 후, 뒤에 도열한 군인들의 함성 발사와 함께 장내는 드디어 국경폐쇄식의 본편으로 접어들었다. 춤추던 사람들은 군인들의 통제에 따라 스탠드로 돌아갔고, 난장이 벌어지던 관중석은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경마장의 말들처럼 순간 팽팽한 정적과 긴장감으로 가득찼다. 사회자의 신호에 맞춰 어깨에 소총을 맨 다섯명의 군인들이 스탠드 앞으로 나와 일렬로 섰다. 맞춘 듯 모두 건장한 체구들이다. 이어지는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에 군인들은 나름 각이 선 제식동작을 선보였다. 잠깐 잠잠하던 관중들은 이내 다시 환호하며 이들의 등장을 반겼다. 볼리우드 음악이 물러나 고요해진 장내로 사람들의 거대한 함성이 다시 밀려들었다. 앞에 선 군인들이 오늘 무대의 주인공인 것일까. 나도 열광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인디아 !'를 연호하며 군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국경 너머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으로 짐작하건대 파키스탄 쪽도 비슷한 상황인 듯 했다. 두 나라의 국민들은 오늘의 클라이막스로 함께 줄달음치고 있었다.


꼬맹이조차 흥폭발
어찌나 종종대며 걷는지, 정말 닭들이 일렬로 쪼르르 걸어가는 느낌이다.

다섯명의 군인들은 절도있는 자세로 수 차례 제식을 선보인 후, 사회자의 구령에 맞춰 오른쪽으로 돌아섰다. 꼿꼿이 세운 허리가 화살을 얹은 팽팽한 활시위 같았다. 군인들의 긴장감과 사람들의 폭발적인 열광이 가득한 장내에, 이윽고 사회자의 힘찬 구령이 떨어졌다. 마치 시위를 떠나는 화살처럼, 군인들은 파키스탄 방향을 향해 달음치듯 튀어나갔다. 행사의 절정으로 나아가는 지점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인도 군인들은 마치 경보선수처럼 잔망스런 잰 걸음으로 장내를 좌우로 이리저리 누비며 국경 통문으로 향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스피디한 발걸음에 더욱 즐거워했다. 동작의 통일성에 집중하며 좌중을 지배하려 하는 점잖은 우리네 군인들의 그것 대신, 약간의 과장으로 사람들의 분위기를 들끓게 만드는 인도 군인들의 이 코믹한 행진이 이 자리에는 왠지 더 어울려 보였다.


오늘의 주인공. 자기는 나름 절도있게 행진한다고 생각했겠지... 괜찮아, 자연스러웠어...

그렇게 일렬종대로 걸어가던 군인들이 일순 산개하여 길 좌우로 도열하자, 통문을 닫을 병사가 다시 한 번 그 종종대는 힘찬 발걸음으로 마주보는 동료들 사이를 통과하여 파키스탄 쪽을 향해 걸어나갔다. 관중들은 행사의 피날레를 장식할 이 경망스런 주인공의 등장에 인도 국기를 흔들며 뜨겁게 환호했다. '인도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의 열기는 뜨겁고 또 유쾌했다. 그것이 애국심의 발로인지, 분위기에 휩쓸려 터져나온 신명인지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다만 한때 총포를 겨누던 적국을 앞에 두고 적개심 대신 인도인들이 선택한 흥겨움은 날쌨지만 경박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국경과 보이지 않는 긴장을 함께 넘어가기엔 그만한 것이 없어보였다.


두 나라 군인들은 마치 사전에 함께 연습이라도 한 듯 합이 척척 맞는다. 혹시 틀리면 오늘 밤 얼차려..?

오늘의 주인공인 통문닫이 군인이 드디어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파키스탄 군인과 마주 섰다. 두 사람은 저러다 뒤로 나자빠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과장된 하이킥을 올려붙이며 제식동작을 서로 겨루었다. 마치 양국의 하이킥 대표선수가 결승전에서 맞붙은 듯 사람들은 열광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환호하는 관중들에게서 기쁨과 열정이 엿보였다. 몇십년 전 두 나라 사이의 충돌은 몇 천명의 사상자와 고통과 앙금만 남겼다. 오늘 두 나라를 대표하는 병사들의 우스꽝스러운 이 경쟁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두 사람은 사람들의 응원 속에 물러섬없이 한참 몇 합의 하이킥을 겨루었다. 겨루되 이기고 패배함은 없는 대결이었다. 그것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대와 유대 사이에서 찾아낸 균형점 위에서 벌이는, 즐겁고, 한편으로 가슴졸이는 줄타기 놀이 같았다.


닫히는 통문

대결이 끝난 양국의 군인이 다시 서로 마주보며 각을 세우자, 그를 신호삼아 육중한 쇠창살의 철문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렀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사람들의 환호를 뒤로 하고, 이 길도 이제 잠시 휴식을 취할 시간이다. 지는 해를 배경으로 통문 양 끝에 높이 솟은 게양대에서 양국의 국기가 약속한 듯 동시에 내려왔다. 정밀하게 조절된 하강의 속도는 이 행사를 유지하는 가장 밑바탕에 깔린 룰인 동시에, 여기 모인 상대 국민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두 나라의 군인들은 내려온 국기를 조심스레 접어 옮겼다. 그 신중한 몸가짐은 흥분한 사람들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신호가 되었다. 웅성대던 관중들은 아나운서의 안내에 따라 썰물처럼 장내를 빠져나갔고, 이로써 오늘의 국경폐쇄식은 막을 내렸다.


볼 일 다 봤으니 우르르 빠져나가는 사람들

한적한 국경마을을 요란하게 달구던 사람들의 함성이 잦아들고, 해는 완전히 저물어 사위는 어둑해졌다. 스탠드 꼭대기에서 저격총을 든 군인이 남은 이곳은 순식간에 다시 적대국 간의 국경지대로 돌아왔다. 방금 전 들썩거리던 사람들의 모습과 소리는 마치 환상처럼 간 데 없었다. 텅 빈 스탠드를 잠시 바라보았다. 지금 적막한 이곳은, 여기서는 내일 이 시간에 똑같이 양국의 사람들이 모여 함성과 제식동작과 하이킥을 겨루고, 다시 국경지대로 돌아올 것이다. 이 장소는 그렇게 순식간에 축제와 현실을 넘나들고 있었다. 흥겨운 축제의 순간은 팽팽하게 당겨진 두 나라 사이의 장막을 맹렬히 두드리고 지나갔다. 그 자리엔 아마 틈이 생겨 있을 것이다. 인도와 피키스탄 사이의 지나간 날들과 현재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 틈은 결국 작은 틈으로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흠집조차 나기 어려워 보이는 한반도의 두터운 장막을 떠올리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 한 줄기 빛조차 아쉽고 또 부러울 뿐이다.


통문 근처에서는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굳게 닫힌 철문 건너의 파키스탄을 바라보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이들일까 했지만, 이내 두 나라 사이를 매일 오고 가는 버스와 비행기가 떠올랐다. 오고 감에 제약이 많지 않으니, 아마 그들은 양국을 오고 가며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총과 철이 가로막은 사이에서도 사람은 서로 부벼대며 살 길을 찾는 것일까. 신산함을 압도하고 자유분방하게 뻗어 나가는 삶의 길 속에서 육중하게 닫힌 철문은 도리어 가벼워 보였다. 그 가벼움을 가질 수 없는 내 나라의 처지를 조금 한탄하며, 나는 암릿사르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델리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암릿사르를 내려다보았다. 자연스레 황금사원이 온통 시선을 빼았는다. 가이드북 속 암릿사르와 와가는, 말로써 세상을 다스리는 종교와 정치가 온 도시를 뒤덮은 듯 했다. 페이지마다 황금사원과 국경폐쇄식을 이야기하는 이미지와 수사가 가득했고, 그것 없이 이 도시는 성립할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두터운 꾸밈 아래서 바라본 암릿사르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살 길을 자유롭게 걷고 있었다. 먹고 자고 목욕하고 몸을 흔들며 노는 것은 황금사원과 국경검문소의 안과 밖이 다르지 않았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았다. 날마다 꿈틀거리는 인간의 생에는 영구한 항상성이 있다. 황금사원만큼이나 빛나고 국경검문소의 댄스타임보다 열정적인 그 생명력은 몇 천년 동안이나 내려온 신성한 원시의 제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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