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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Feb 05. 2019

A Head Full of Dreams vol.1

20년 간의 1막을 마친 콜드플레이, 그 첫 번째 이야기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영국 출신의 한 밴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굳이 그들에 대한 이런저런 소개를 하고 싶습니다.


 20년 간 총 7장의 정규 앨범을 내며 그래미 7회 수상, 브릿 어워즈 9회 수상 외에도 무수한 시상식의 상을 휩쓴 밴드. 총 1억만 장에 육박하는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밴드. 단일 투어로 전 세계의 모든 공연이 매진되며 총 5억 2천3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밴드.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의 최다 헤드라이너이자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도 공연한 밴드. 옥스팜 공정 무역과 국제 앰네스티 캠페인 등의 사회 활동과 자선 공연들에서 만날 수 있는 밴드. 비욘세, 제이지, 리한나, 노엘 갤러거, 아비치, 체인 스모커즈 등 장르불문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피처링한 밴드. 할리우드 톱스타와의 결혼과 이별로 전 세계 파파라치들의 타깃이었던 프런트맨의 밴드. 영화 OST, 광고, 카페와 식당 등 음악이 사용될 수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플레이되는 노래를 연주하는 밴드. 그 노래의 제목을 몰라도 누구나 한 번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있을 'Yellow', 'In my Place', 'The Scientist', 'Fix You', 'Viva la Vida',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 'Paradise', 'A Sky Full of Stars', 'Everglow', 'Adventure of a Lifetime', 'Something Just Like This', 이 모든 노래들을 연주한 밴드.



 바로 콜드플레이입니다.


 제게 있어 콜드플레이는 온전히 '제 세대'의 음악입니다. 평생을 흠모하며 가장 많이 연주해 온 레드 제플린은 이미 제가 음악을 제대로 듣기 전에 전설이 됐지만, 콜드플레이와 린킨파크, 푸 파이터즈 등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떨어진 적 없이 함께해온 제 삶의 일부였습니다. 그들의 노래에 기쁨을 얻고 위로도 받고, 때로는 실망도 했습니다. 깜짝 놀란 적도 있고,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받기도 한 시간이 20년이네요.


 콜드플레이는 지난 2017년 4월에 <A Head Full of Dreams> 투어로 내한하여 이틀간 잠실 주경기장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당시를 경험하신 분은 기억하실 텐데 잠실 주경기장 5만 장이 순식간에 매진이 된 화력에 힘입어 이례적으로 공연이 이틀로 늘어났고, 추가 5만 장도 초단위로 팔려나가며 10만 장이 완전 매진이 됐습니다. 저도 정말 너무도 어렵게 티켓을 구해 이틀째 공연에 갈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제 인생의 최고의 날 중 하루였습니다. 한 동안 그 공연에 다녀왔던 사람들과 마치 마법에 홀린 듯한 후기를 나눴고, 경리단길과 이태원 골목마다 콜드플레이의 노래가 끊이지 않았던 봄의 나날들이 기억나네요.


#ColdplaySeoul


 지난해 연말, 콜드플레이의 20년 간의 삶과 음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A Head Full of Dreams>*가 공개됐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들은 이제 막 콜드플레이의 1막이 끝났고, 새로운 2막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지난 20년 간 우리와 함께 했던 콜드플레이의 앨범들을 한 장씩 돌이켜보며 그들의 음악과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첫 글에서는 결성 과정부터 세 번째 앨범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다음 글에서 네 번째 앨범부터 1막의 종막까지를 담을 예정입니다.


 * 영화 <A Head Full of Dreams>는 아마존 프라임 Exclusive로 타 온라인 VoD 서비스에서는 볼 수가 없네요. 작년 12월 말에 일부 메가박스 MX관에서 이틀간 하루 1회 상영 일정의 매우 제한된 일정으로만 개봉을 했었습니다. 정말 가슴 뛰고 훌륭한 다큐멘터리인데 감상이 가능한 경로가 제한적인 게 참 아쉽습니다.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혹여나 올해 팝업으로라도 극장 상영 기회가 생긴다면 절대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참고로 이 다큐멘터리는 'A Sky Full of Stars',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 등 여러 인상적인 콜드플레이의 뮤직비디오를 감독했고, 오아시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SUPERSONIC'을 감독한 맷 화이트크로스(Mat Whitecross)입니다.

( <A Head Full of Dreams의 트레일러 링크 : https://youtu.be/Lhzu6bQxFo4 )





  이 글은 콜드플레이의 음악과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콜드플레이의 멤버 전원을 잘 모르실 분들도 많을 것 같아 간단히 밴드 멤버들을 소개합니다.


ㅁ 가이 베리맨(Guy Berryman) : 베이스, 백킹 보컬, 키보드, 만돌린

ㅁ 조니 버클랜드(Jonny Buckland) : 기타, 백킹

보컬, 키보드

ㅁ 윌 챔피언(Will Champion) : 드럼, 퍼커션, 백킹 보컬, 기타, 피아노, 키보드

ㅁ 크리스 마틴(Chris Martin) : 리드 보컬, 기타,

피아노, 키보드, 하모니카


 그리고 밴드는 비록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지는 않지만 제5의 멤버를 자랑스럽게 강조합니다.


ㅁ 필 하비(Phil Harvey)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리고 콜드플레이 멤버들 20년 간의 지기지우.


왼쪽부터 필 하비, 크리스 마틴, 조니 버클랜드, 윌 챔피언, 가이 베리맨


 단 한 번도 멤버 교체 없이 20년 간 친구로서, 형제로서 함께해 온 멤버들의 결속력과 시너지는 그들의 음악과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빛납니다.

 

스타피쉬에서 콜드플레이로


 그들의 이야기는 1996년 영국 런던의 University College London(UCL)에서 크리스 마틴과 조니 버클랜드의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난장을 피우며 술을 마시고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크리스의 남다른 에너지와 재능에 깊은 인상을 받은 조니. 별 다른 말 없이 과묵하게 웃고 있다가 조용히 기타를 잡고 들려준 조니의 연주 실력에 놀란 크리스. 이렇게 서로에게 매료된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밴드 결성의 계획을 세웁니다.


 1990년부터 크리스와 쉐본(Sherborne) 보딩 스쿨의 동창이었던 필 하비는 가장 오랫동안 크리스를 지켜봐온 친구입니다. 필에 따르면 쉐본 스쿨의 딱딱한 체계로 운영되는 스쿨 밴드에서 건반을 연주할 시절의 크리스는 본인이 가진 캐릭터와 매력을 온전히 다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종종 빛나는 재능을 엿보며 범상치 않은 친구라는 생각을 품었다고 하네요. 쉐본 스쿨의 밴드 활동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필과 크리스는 깊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로 계속 함께 성장해나갔습니다. 쉐본 스쿨 시절부터 우수한 성적을 냈던 필은 옥스포드로 진학했습니다. 콜드플레이 멤버들은 이런 필을 '명석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뭘 해야 하는지 아는 친구'라고 평가합니다.

 

 학교에서 만난 가이 베리맨의 베이스 연주 실력이 괜찮다는 것을 알고 가이를 영입하여 스타피쉬(Starfish) 라는 밴드명으로 지역 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합니다. 스타피쉬의 멤버들과 평소 캠퍼스에서 같이 피아노, 기타 등을 치며 친하게 어울려 놀던 윌 챔피언은 스타피쉬의 리듬 섹션이 공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전까지는 드럼 연주를 해본 적이 없지만) 빠른 실력으로 드럼 연주를 익혀 스타피쉬의 드럼과 퍼커션 연주를 맡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밴드 콜드플레이의 라인업이 완성된 순간입니다.


저수지의 개들...아니 밴드 스타피쉬.


  영화 <A Head Full of Dreams>에는 UCL에서 함께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뭉쳐 다녔던 네 사람의 젊은 시절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크리스는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말도 많고 행동도 큰 혈기왕성한 청년이지만 뛰어난 감성과 음악적 재능을 지닌 타고난 엔터테이너입니다. 조니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며 그저 과묵하게 그저 웃기만 하지만 뛰어난 연주와 편곡 실력을 지닌 정중동이고요. 가이도 말수는 적지만 자기 생각이 명확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하는 단호함을 지닌 청년이고, 윌은 둥글둥글하고 밝은 사람 좋은 분위기 메이커지요. 예나 지금이나 크리스 마틴은 타고난 프런트맨입니다. 넘쳐나는 크리스의 에너지와 재능, 리더십이 좋은 방향으로 출력될 수 있는 건 조니, 가이, 윌이 함께 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치아 교정기를 낀 젊은 크리스는 콜드플레이가 반드시 거대한, 정말 거대한 밴드가 될 거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크리스는 다른 밴드를 하고 있던 친구로부터 본인들이 쓸지 말지 고민 중인 밴드명을 듣게 되고, 그 밴드명을 스타피쉬가 쓰겠다고 얻어옵니다. 크리스 본인도 이게 엄청 좋은 이름인지 아닌지 확신은 없었지만 뭔가 끌려서 쓰게 됐다는 그 이름, 바로 콜드플레이(COLDPLAY)입니다.


 <콜드플레이>라는 이름에 대해 크리스 마틴이 The Late Late Show의 Carpool Karaoke에 출연해 한 언급이 있는데, 농반 진반으로 한 얘기인 것 같지만 크리스 마틴이라는 아티스트의 생각과 야심 또한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재미있습니다. 콜드플레이의 명곡 메들리는 기본이고, 크리스 마틴의 에너지와 매력이 듬뿍 담겨 있는 영상이라 한 번 재밌게 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SADub7W22Zg )


아아 크리스 형, 당신의 매력은 대체...


 멤버 구성과 관련해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네요. 1997년에 크리스는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보유한 연주자에게 콜드플레이의 키보디스트로 합류해줄 것을 제안하는데, 그는 이미 활동을 시작한 본인의 밴드에 전념하기 위해 크리스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의 이름은 팀 라이스 옥슬리(Tim Rice-Oxley), 바로 밴드 킨(KEANE)의 키보디스트죠.


피아노와 신디사이저가 사운드의 키를 잡고 있는 매력적인 사운드의 밴드 킨. 팀 라이스 옥슬리의 선택으로 킨의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마침내 메이저 데뷰


 콜드플레이는 <Safety>라는 EP를 발매해 레코드 회사와 지인들에게 주로 돌렸습니다. 필 하비가 그의 부친과 학교 룸메이트들을 설득해 EP 제작 펀드를 마련하고 콜드플레이의 매니저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옥스포드 대학교를 중퇴하고 콜드플레이의 활동을 전적으로 서포트하게 됩니다. 콜드플레이는 훌륭한 재능을 지닌 멤버들이 모인 밴드이기도 했지만 명민하고도 헌신적인 매니저의 덕을 크게 본 밴드이기도 합니다. 한 아티스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훌륭한 매니지먼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됩니다.


 콜드플레이는 곧 독립 레이블인 Fierce Panda와 계약을 맺고 5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녹음을 마친 싱글 'Brothers & Sisters'를 발매합니다. 인디 밴드로서 왕성한 활동을 계속해나갔죠.


<Brothers & Sisters>, 1999

 

 지역 클럽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명성을 쌓아가던 이들에게 마침내 빅 마켓으로의 입성 기회가 열리는데, 1999년 팔로폰(Parlophone)과 5장의 앨범 계약을 맺게 된 것이죠. 영화에서 크리스는 "반드시 팔로폰이어야 했어요. 당연하죠"라고 언급하는데, 비틀스와 데이빗 보위 등 영국의 레전드들이 거쳐간 팔로폰과의 계약이 영국 밴드인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짐작할만합니다.


팔로폰과의 계약 후 크리스 마틴의 자필 편지


 네임드 레코드 회사에서 발표하는 첫 EP는 그들에게 프로 뮤지션으로 가는 중요한 이정표이면서도 통과하기 쉽지 않은 난관이었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독립 레이블에서 발매했던 싱글처럼 며칠 밤샘하며 후루룩 녹음하고 레코드를 찍어내는 것과는 달리,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각 악기 별로 녹음을 따로 하는 경험은 그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특히 밴드에 합류하면서 드럼 연주를 급조로 시작했던 윌의 연주와 박자가 들쭉날쭉해서 제대로 된 레코딩 결과물을 내지 못하면서 모두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고 하네요. 결국 크리스와 윌의 갈등으로 인해 윌은 팀을 떠나게 됩니다. 자의에 의한 하차라기보다는 해고의 형태로 떠나게 된 셈입니다. (과격한 언사가 오고 갔다고 하는데 술이나 약물 등으로 인한 영향인지는 뉘앙스만 있을 뿐 자세하게 언급되지 않습니다.)


 윌이 떠나고 나서야 크리스와 나머지 멤버들은 본인들이 지켜왔던 팀의 근간과 팀워크를 망쳐버린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알게 되고, 다시 윌을 설득하여 윌은 콜드플레이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때가 민주주의 형태의 밴드 운영의 룰 세팅을 하게 된 계기와 시발점이 됐다고 하니 향후 20년을 위한 포석이 된 셈이지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마음이 조응하여 내는 밴드의 사운드와 그렇지 않은 사운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콜드플레이는 전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비단 음악계뿐 아니라 모든 이의 삶에 걸쳐 걱정과 기대감이 뒤엉켰던 뉴 밀레니엄이 다가오는 시점에 크리스 마틴은 자신만만하게 포부를 밝힙니다.


"We are Coldplay. Guy, Will, Jonny, Chris. Massive. Absolutely huge."


 그리고 마침내 밴드는 첫 앨범을 출시합니다.


<PARACHUTES>, 2000

 

 첫 싱글 'Shiver'가 영국 싱글 차트 35위까지 오르는 성공적인 성적을 거두고 글라스톤베리에 오르는 등 그들의 이름이 서서히 퍼져가고 있을 때, 단박의 그들의 이름을 브릿팝의 새로운 기수로 끌어올리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지금도 콜드플레이의 대표곡이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노래, 'Yellow'가 발매되며 그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영국 싱글 차트 4위에 오르며 콜드플레이는 메이저 데뷰와 동시에 스타에 등극하게 됩니다. 'Yellow'는 제가 고등학생 때 처음 들었는데 박력 있는 고출력 기타 리프의 인트로와 섬세한 팔세토 보컬이 자아내는 멜로디의 조합으로 예상치 못한 기쁨을 얻었던 기억이 납니다. 콜드플레이라는 밴드 이름을 봤을 땐 생기 없는 무미건조한 음악을 할 줄 알았는데 음악에 긴장감과 온기, 나른함이 고루 담겨 있었거든요.


 특히 밴드는 2017년 내한 공연에서 'Yellow'를 부르다가 잠시 끊고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 10초의 묵념을 제안해 모두가 고요하게 묵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묵념이 끝나고 밴드와 관객이 함께 부른 'Yellow'가 어땠는지는 말로 담아내기 어렵네요.


'Yellow'와 세월호 추모를 위한 10초의 묵념


 미국에서도 그들의 앨범이 발매됐습니다. 영국 청년들의 이미지와 노래가 미국 시장에 전파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영화에서는 그들이 미국 시장에 첫 발을 내리고 적응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그려집니다.


물리적인 범위가 너무 큰 미국 시장. 이런 작은 무대의 기회 조차 잡지 못하고 고사하는 아티스트가 십중팔구이고, 여기서 버틴다고 해도 성공이 담보되지 않지요.


 젊디 젊은 청년들이 자국의 환경과 정서와는 판이하게 다른 미국 시장에서 푸대접을 받고 앨범이 대형마트에서 염가에 풀리는 모습을 보며 충격도 받았겠지만, 이 난국을 어떻게든 버텨낸 콜드플레이의 미국 진출은 더할 나위 없이 성공적이었습니다.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 판매고로 미국 시장에서도 'Next Big Thing'으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킵니다.


 네 젊은이의 재능과 훌륭한 곡이 그들의 성공의 기반이었지만, 무수한 밴드들이 미국 시장은 고사하고 자국 시장에서도 채 성공하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콜드플레이라는 크리스 마틴의 말대로 '압도적으로 거대한' 밴드가 될 운명과 운을 타고난 밴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근데 크리스, 신발은 왜 벗었나요? 에비로드 오마주?..

 

  다만, 미국 진출에 이르기까지 온전히 홀로 콜드플레이의 매니저로 일해 왔던 필은 그야말로 번 아웃 됐습니다. 전문적인 매니지먼트 체계 없이 인디 시절부터 콜드플레이의 모든 스케줄과 더 큰 시장으로의 진출까지 챙겼던 그는 "브릿 어워드에서 콜드플레이가 수상을 한 순간에도 그저 자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지치게 됩니다. 주치의가 필이 잠 자는 도중에 혹시 코마에 빠질까 걱정되 몇 차례 전화를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른 필은 콜드플레이의 매니저 자리에서 떠나게 됩니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팔로폰과 계약하는 훨씬 전부터 밴드를 물심양면으로 서포트했던 필 없이는 밴드의 급진적인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PARACHUTES>는 ‘Yellow'라는 불세출의 명곡은 물론 'Shiver', 'Don't Panic', 'Trouble' 등과 같은 좋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는, 오아시스와 라디오헤드의 계보를 잇는 신진 브릿팝 밴드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스타트입니다. 풋풋한 정서와 에너지도 있지요. 콜드플레이 통산 앨범 중 가장 어쿠스틱하고 4인조 락 밴드 다운 사운드를 담고 있습니다. 밴드의 키 사운드인 크리스의 팔세토와 조니의 리프 메이킹이 향후 앨범에서는 어떻게 다채롭게 활용되고 변화해가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조로운 리듬으로 인해 앨범 전체의 텐션이 풀어지는 느낌도 받습니다. 서정적이고 음울한 노래들로 채워진 앨범이라 심플한 사운드와 리듬은 선택적이기도 했겠지만, 그 영역까지 제대로 챙길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멤버들도 <PARACHUTES> 앨범에 대해서는 구성이나 사운드 측면의 아쉬움이 있었다는 언급을 하지요.


  <PARACHUTES>의 성공은 눈 부셨지만,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밴드의 다음 행보에는 그만한 부담이 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성공에 브릿팝 선배 밴드들의 아류라거나, 과대평가받는 유행가를 부르는 패기 없는 밴드라는 독한 평가 혹은 조소가 해쉬태그처럼 따라붙었죠. <PARACHUTES> 앨범으로 아무리 열심히 활동한들 그러한 담론에 맞설 수 없었습니다. 그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를 뛰어넘는 차기작이 필요했지요.


요새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겠죠. 취향이니까.


새 천년의 별


 밴드는 이를 잘 알고 있었고, 특히 크리스 마틴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콜드플레이는 투어를 마치고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차기 앨범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런던 스튜디오에서는 제대로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 리버풀에 있는 스튜디오로 옮긴 후 진척이 있었다고 하네요. 첫 데뷰에서 공전의 히트를 거둔 밴드는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혼란기를 거쳤고, 이 혼란의 감정이 차기 앨범의 첫 싱글 'In my Place'에 그대로 담겼다고 합니다. 일단 첫 곡을 쓰고 나서 그다음 작업을 이어가고, 또 작업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하네요.


 또한 데이브 홈즈라는 훌륭한 매니저가 함께 하고 있었지만, 네 사람을 가장 잘 알고 있고 밴드를 위한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조력자가 필요함을 새삼 느낀 밴드는 필 하비에게 콜드플레이에 다시 돌아와줄 것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에 필 하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콜드플레이의 앨범, 뮤직비디오, 콘서트 등 밴드의 활동 전반에 걸친 방향성을 함께 정하는 제 5의 멤버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후 콜드플레이의 앨범 속지에는 필 하비가 콜드플레이의 일원으로 명기됩니다. 필이 밴드의 음악적이고 인간적인 기둥으로 함께하게 되면서 콜드플레이의 활동의 질이 높아질 수 있었다고 모든 멤버들은 말합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의 조니, 필, 윌, 크리스, 가이


<Live 2012> 앨범의 속지. 라이브 쇼와 DVD 필름의 크레딧에도 디렉터에도 필 하비의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크리스는 새 앨범의 레코딩 과정 내내 스튜디오를 거의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PARACHUTES>가 4인조 밴드의 심플한 사운드를 담은 반면 새 앨범에는 오케스트라 사운드까지 더해지면서 사운드의 양과 질 자체가 아예 달라져 레코딩과 어레인지 작업의 난이도가 월등히 높아졌습니다. 첫 앨범의 흐름과 구성에도 아쉬움을 품었던 크리스는 앨범의 서사 수준도 끌어올려야 할 뿐 아니라 개별 곡의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작업에 임했다고 하네요. 주말에 멤버들이 휴식을 취하러 집에 다녀올 때도 크리스는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곡 작업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곡 작업 중인 크리스


 어느 주말이 지나고 돌아온 멤버들에게 "떠오르는 멜로디가 있어 완성한 곡이 있으니 들어보라"며 발라드 곡을 들려줬다고 합니다. 새 앨범의 대표곡인 동시에 새 천년 브릿팝의 대표 발라드 넘버로 등극한 이 곡은 'The Scientist'.


 그렇게 사력을 다한 과정을 거쳐 콜드플레이의 두 번째 앨범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A Rush of Blood to the Head>, 2002


  'In my Place', 'The Scientist', 'Clocks', 'Politik', 'God Put a Smile upon your Face' 등의 명곡이 한가득 담긴 이 앨범은 전작의 큰 성공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A Rush of Blood to the Head> 앨범의 성공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콜드플레이를 영국 락의 'The Only One'으로 등극시켰습니다. 그들은 5개 대륙을 넘나들며 투어를 다니며 앨범 판매고를 천만 장을 훌쩍 넘긴 전 세계의 팬들의 사랑을 받는 대형 밴드가 됐습니다. 브릿 어워드와 그래미 어워드의 수상을 거머쥐고, 2003년 <롤링 스톤> 매거진으로부터 올해 최고의 앨범으로 평가를 받게 됩니다.


소포모어 징크스 따윈 던져버린 콜드플레이. 오아시스에게 <Morning Glory>가 있다면 콜드플레이에겐 <A Rush of Blood to the Head>가 있습니다.

 

 <A Rush of Blood to the Head> 앨범은 크리스가 추구했던 '한 차원 높은 사운드'를 담아냈습니다. 록 음악 다운 고조와 폭발력을 지닌 앨범의 킥오프 트랙인 'Politik'에서부터 밴드가 첫 앨범의 사운드와는 양적,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앨범의 백미이자 정수인 'In my Place'는 혼란과 방황, 우울함을 아주 담담하게 노래하면서도 그 기저에는 선명한 멜로디가 깔려있어 한층 깊어진 밴드의 사운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새 천년의 방황하는 감수성을 지닌 젊은 팬들은 그들의 노래와 연주에 귀와 마음을 열고 빠져들었습니다.


 단단하고 힘찬 비트 위에서 세련된 피아노 리프가 질주하는 'Clocks', 다시 시작할 것을 나직이 다짐하는,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멜로디의 'The Scientist', 멜랑콜리한 감성의 바닥 끝까지 내려갔다가 상승하는 대곡 'A Rush of Blood to the Head'까지 모든 트랙이 훌륭합니다. 밴드는 <A Rush of Blood to the Head> 앨범을 위해 20여 곡의 후보곡을 만들었는데, 최종적으로 실린 11곡은 단순히 좋은 곡들의 집합이 아니라 본 앨범의 정체성을 더욱 깊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고르고 고른 트랙리스트인 셈입니다. 영화에는 밴드 멤버들이 앨범에 수록할 곡을 협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모든 멤버가 합의한 곡들만이 앨범에 수록됩니다. 어떤 멤버의 의견이 특별히 힘을 갖거나 묵살되지 않는 과정을 거쳐 나온 최고의 산출물이지요.


밴드는 <A Rush of> 투어 실황 라이브 앨범/DVD인 <Live 2003>를 출시합니다. 두 번째 앨범을 낸 신인 밴드의 라이브 앨범이지만 시기상조라고 생각되지 않았죠.


 또한 2003년 밴드는 프리텐더스(The Pretenders)의 '2000 Miles'를 커버하며 영국 최다 다운로드 기록을 세우는데, 이 매출을 Future Forest와 Stop Handgun Violence 캠페인에 기부하면서 사회적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제는 크리스 마틴과 콜드플레이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사회적 참여 활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콜드플레이가 커버한 '2000 Miles의 다운로드 경로와 요금, 기부 관련 안내.

 

 더 이상 높아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들의 명성이 하늘 위까지 치솟는 일이 벌어집니다. 크리스가 배우 기네스 펠트로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죠. 할리우드의 슈퍼스타인 기네스 펠트로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크리스보다 더 유명한 셀럽이었고, 영국 출신의 여배우와 명문대 출신의 미남 록 스타의 만남은 세간의 조명을 받기에 최적의 사건이었을 겁니다.


기네스 펠트로와 크리스 마틴


명실상부한 세계 정상급 밴드로


 밴드는 두 장의 앨범의 큰 성공과 투어로 인해 부담감과 피로를 모두 떠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크리스가 기네스 펠트로의 남편으로서 언론과 파파라치의 집중 타깃으로 살아가게 되며 콜드플레이의 이름이 기네스 & 크리스 커플에 가려지는 듯한 형국도 밴드 멤버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편치 않은 상황이었다고 하네요.


 밴드는 2004년 대다수의 시간을 콜드플레이의 세 번째 앨범 작업에 할애합니다. 앨범 작업 기간은 1년을 넘겨 거의 18개월 간 이루어졌고 뉴욕, 리버풀, 런던, 시카고 등 많은 도시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는데, 멤버들은 세 번째 앨범의 작업이 썩 즐겁지는 않았다고 회상합니다. 전작의 큰 성공과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것만도 이 밴드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고, 새로운 좋은 아이디어가 잘 나오지 않아 난항을 겪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마냥 웃지만은 못했던 세 번째 앨범의 작업 시기. 크리스는 이 시기를 '재미없는 작업'으로 기억한다고 합니다.


 새로운 사운드를 위해 독특한 음색의 악기나 이전에는 쓰지 않았던 일렉트로닉 스타일의 사운드를 접목하는 것에도 주목을 했다고 합니다. 확고한 감성으로 사랑받았던 밴드인 만큼 ‘콜드플레이 다운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2005년, 마침내 콜드플레이의 세 번째 앨범이 출시됩니다.


<X&Y>, 2005

 전작들에서 ‘Yellow’, ‘In my Place’, ‘The Scientist’ 등 길이 남을 명곡들을 연주했던 콜드플레이의 새 앨범은 어땠을까요? 명성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이 앨범에는 'Fix You'가 있습니다. 'Fix You'는 부친의 별세 후 슬픔에 빠져있는 기네스 펠트로를 위해 크리스가 쓴 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죠. 영화에서도 이 에피소드가 소개되는데, 장인의 유품 중 너무 오래되어 제대로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싶은 오르간을 발견하게 되는데 막상 연주를 해보니 이 오르간의 소리가 너무 독특하고 훌륭했다고 하네요. 이 오르간의 사운드가 'Fix You'의 인트로에 담겨 있습니다. 'Fix You'는 한 개인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위로의 송가지만 이제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위로하는 시대의 명곡이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Fix You'를 처음 들었을 때는 꽤 괜찮은 멜로디와 큰 스케일의 좋은 곡으로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노래의 힘이 제 속에서 커지는 게 느껴집니다. 공연에서 이 곡의 절정이 다다를 때 전력 질주하며 점프하는 크리스의 모습과 모두가 함께 부르는 코러스의 장면은 장관이지요.


전설이 된 'Fix You'의 코러스, "Light will guide you home, and ignite your bones. And I will try to fix you."


 'Speed of Sound'에서는 콜드플레이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잘 소화할 수 있는 밴드라는 걸 엿볼 수 있습니다. 전 앨범의 싱글들이 가진 성향을 이어받으면서도 전자음악의 질감을 잘 소화하며 세련된 사운드를 뽑아냈습니다. 'Talk'에서는 U2를 연상시키는 연주를 들려주면서 이들의 기본 뿌리가 락 밴드임을 재확인시켜주기도 하지요.


 특히 공간감이 뛰어난 조니의 기타 톤이 일품입니다. 크리스의 독특한 신디사이저 톤과 잘 어울리면서도 곡의 리프의 임팩트를 더해주는 그의 톤은 심플하고 명확한 멜로디 라인을 지닌 연주와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조니 버클랜드라는 기타리스트가 얼마나 훌륭한 연주자이고 곡의 분위기까지 잘 고려하는 편곡자인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2005 MTV EMA 'Talk'를 연주하는 조니와 크리스


 개인적으로 <X&Y> 앨범은 자주 찾지 않게 되는 앨범입니다. 'Fix You'만을 예외로 두고 얘기하면 이 앨범 특유의 무미건조함 때문에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제게 <A Rush of> 앨범이 멜랑콜리하면서도 나른한 얼굴 뒤에 잔잔하게 서린 깊은 감성과 온기의 실마리의 조합이었다면, <X&Y>의 곡들은 정말 생기 없이 차갑고 건조하게 다가왔습니다. 처음 받은 이 인상이 쉽게 달라지지 않아 지금도 <X&Y>는 제게 좀 먼 앨범입니다. 사운드 퀄러티는 매우 훌륭합니다. 레코딩에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수준 높은 사운드이지만 곡들에 마음이 가질 않네요. 식상하게 들리는 반면 낯설게도 들리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취향과는 별개로 <X&Y>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빌보드, UK 차트 등 전 세계 20여 개 국에서 차트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영국 역사 상 세 번째로 빨리 팔린 앨범으로 기록됐고, 2005년 출시된 모든 장르의 앨범 중 최다 판매된 앨범이기도 합니다. 콜드플레이는 코첼라를 비롯해 이제 전 세계 어느 페스티벌이든 관객의 환호를 받는 밴드가 됐습니다. <X&Y>의 성공으로 인해 그들은 '영국의 콜드플레이'가 아니라 '세계 정상급 밴드'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X&Y>가 이렇게 거대한 성공을 거두게 된 것도 개인적으로는 좀 의아하기도 하지만, 이전까지 쌓아온 밴드의 색깔과 감성을 잘 이어간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콜드플레이만의 감성은 특정 국가나 일부 음악 팬들의 영역을 넘어 전 세계의 대중들이 사랑하게 됐습니다.


<Twisted Logic Tour> 무대에서의 콜드플레이. 밴드는 이 투어 기간 동안 코첼라, 글라스톤베리, 오스틴 시티 뮤직 페스티벌, Live 8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X&Y>는 평단에서도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앨범이지만 '전작만 못하다', '식상한 스타일의 반복'이라는 혹평도 함께 받았습니다. 거대한 대중성을 확보한 밴드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이런 혹평을 이유 없는 트집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멤버들은 "아쉬움이 많았다"라고 자평했습니다. 밴드도 그들이 반복해온 콜드플레이다운 사운드의 공식과 유사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2005년 6월부터 2007년 3월까지 진행된 <Twisted Logic Tour>의 긴 일정도 그들을 지치게 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변화에 목말라했고, 이 갈증을 원동력으로 삼은 그들은 다음 앨범 작업에 들어갑니다. 제게는 이 시점이 콜드플레이 1막 1장이 마무리된 시점으로 느껴집니다.


 <X&Y> 앨범의 마지막 곡은 히든 트랙인 ‘Til Kingdom Come’입니다. 후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OST에도 수록되는 이 곡은 <X&Y> 앨범의 활동을 종료하고 다음 앨범 작업에 들어가는 콜드플레이의 상황을 절묘하게 요약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밴드는 앨범 판매, 공연의 흥행, 평단의 평가, 주요 시상식 수상, 유명세 등 모든 영역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슈퍼스타가 되었지만 이후 그들이 써나갈, 그야말로 ‘Kingdom’의 역사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으니까요.



 < 다음 글에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 본 글에 인용된 에피소드는 영화 <A Head Full of Dreams>와 영문판 Wikipedia, <Rolling Stone> 매거진 등에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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