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1 작성)
1. 현장에서 사태 수습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현장소장이 있었다.
<판도라>에서 정진영이 분한 현장소장 평섭은 재난의 한복판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후쿠시마 제 1원전에 남아 사태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현장소장이 있었다. 당시 55세였던 요시다 마사오 소장은 다년간의 현장 근무 경험이 있는 베테랑으로 극한 상황에서 스스로의 판단으로 해수 주입을 시작했고 상부에서 중지 명령이 내려왔을 때도 중지하는 척 연기하며 주입을 이어가 최악의 사태를 막았던 인물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2011년 11월 식도암이 발견되어 입원했고, 2013년 7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도쿄전력 측은 요시다 소장의 피폭 선량이 누계 70mSv이기 때문에 피폭과 발병 간의 연관성은 극히 낮다고 밝혔다.
2. 뒤늦게 콘트롤타워를 장악하고 상황을 수습한 대통령이 있었다.
김명민이 분한 강석호 대통령은 상황을 축소 은폐하려는 총리(이경영 분)에게 밀려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다 극 후반에 접어들며 사태의 엄중함을 깨닫고 위기대응본부를 장악한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일본 총리였던 간 나오토의 경우, 한시가 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능하고 관료화된 도쿄전력 측에 막혀 현장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사고 발생 4일째인 14일 보좌관을 이끌고 도쿄전력 본사로 쳐들어가 사기업인 도쿄전력을 정부가 장악하는 형태의 초법적인 대책통합본부를 세웠다. 당시 그러한 결단이 없었다면 사태 수습이 더욱 지연되어 재난의 규모가 수습할 수 없이 커졌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3. 미국 프랑스 등 구미 선진국은 자국민 대피를 실제로 검토하고 지시한 적이 있었다.
<판도라>에는 원전이 터지자 각국 대사관에서 앞다투어 자국민을 대피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특히 원전 사고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던 사고 초기에 미국 정부는 무인정찰기를 띄워 후쿠시마 현지를 정찰한 이후, 도쿄에 거주 중인 미국민 9만여명에게 퇴거 명령을 내릴지 여부를 검토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 미일동맹관계를 고려해 실제로 명령을 내리는 데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원전 대국 중 하나인 프랑스 정부는 3월 15일자로 간토 지방에 거주하는 프랑스 국민에게 퇴거할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
4. 지진 발생 직전에 사고 위험을 경고한 실무자가 있었다.
영화에서 현장소장 평섭(정진영 분)은 비선을 통해 대통령에게 직접 원전 사고 발생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보고서를 올린다. 실제로 후쿠시마 사고 발생 4일 전인 2011년 3월 7일 도쿄전력 원자력설비관리부 토목조사 담당 등 3인이 경제산업성 내진안전심사실장인 고바야시 마사루에게 ‘기존 예상치를 뛰어넘은 대규모 쓰나미가 덮쳐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고바야시 실장은 보고서 상의 수치를 산출한 과정과 이에 대한 대책에 대해 다시 보고하라 지시했고, 불과 4일 후인 3월 11일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규모의 원전사고는 끝내 터지고 말았다.
5.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현장에 남았던 최후의 결사대가 있었다.
<판도라>에서 주인공 재혁(김남길 분)을 비롯해 현장 노동자들은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원전에 다시 들어가 위기 상황을 해결한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현장 방사능 수치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라가자 현장 직원들 가운데 최소한의 인원을 남기고 나머지는 철수했다. 이때 끝까지 남았던 도쿄전력 직원들을 ‘후쿠시마 피프티(50)’라고 부르며 일본을 비롯한 각국 미디어에서는 영웅으로 칭송했다. 그러나 이후 요시다 소장이 죽기 전에 남긴 조서를 통해, 도쿄전력 본사는 인력도 물자도 지원해주지 않은 채 현장을 고립시켰고 사태 수습을 위해 몸을 던진 것은 대부분 도쿄전력 직원이 아니라 자회사, 그리고 협력사인 건설회사 직원들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2016.12.11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