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9.21 작성)
올 추석 연휴 기간동안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이 118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는 역대 명절 연휴 가운데 일 평균 최대치를 갱신한 것으로 이처럼 명절을 보내는 방법이 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설과 추석은 많은 이들에게 큰 스트레스다. 수험생, 취업준비생, 비혼주의자 등 명절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고 많지만 누구보다 간절한 이들은 아무래도 전국의 며느리들이 아닐까? 시대별로 며느리 수난극을 그린 영화들을 모아봤다.
<월하의 공동묘지>와 더불어 한국 고전 공포영화 중 투탑으로 꼽히는 영화가 바로 <여곡성>이다. ‘여곡성’이란 여자가 한을 품어 크게 우는 소리를 말하는데 극 중 주인공의 처지를 보면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 옥분은 가난 때문에 다들 꺼리는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막상 와보니 의외로 신랑이 외모도 번듯하고 다정해서 마음을 놓는데 첫날밤 알 수 없는 존재에게 공격당해 남편이 급사하고 만다. 알고 보니 손윗동서 둘도 첫날밤에 남편을 잃었다고. 이후로는 공포영화라는 장르의 공식대로 집안 사람들이 줄줄이 미치거나 죽어 나갈 따름이다. 시집 한 번 잘못 왔다 극한의 고난을 겪는 이야기인 것이다.
1997년작으로 개봉한지 2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고부갈등을 다룬 영화로 이보다 오싹하고 끔찍한 영화는 만들어진 바가 없다. 제약회사에 다니며 멀쩡하게 사회생활 잘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막상 합가를 해보니 시어머니가 아들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며 며느리인 나를 죽일 듯이 공격하다니 악몽으로라도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윤소정 배우의 신들린 연기력 덕에 서른 살 먹은 아들을 아무렇지 않게 목욕시키는 장면이나 며느리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욕조에서 물고문 하는 장면 등은 지금 보아도 소름이 끼칠 정도다.
‘Bedevilled(학대당한)’이라는 영문 제목이 말해주듯 폐쇄적인 섬에서 갖은 학대를 당하며 살아오던 주인공 김복남의 복수극을 그린 영화다. 가장 직접적이고 가혹한 가해자인 남편 만종과 시동생 철종, 시고모 동호 할매를 비롯해 섬 주민 전체가 공범이자 일종의 확대가족처럼 보인다. 주인공 김복남 역을 맡아 다소 모자란 듯할 정도로 순박한 모습과 복수를 향해 치닫는 광기를 모두 탁월하게 소화해낸 배우 서영희에게 11개의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겨준 영화이기도 하다.
<수상한 그녀>는 칠순 할매가 스무 살 꽃처녀로 회춘해 벌어지는 소동을 음악과 함께 그려낸 유쾌한 드라마라 기억되지만 실은 생각보다 무거운 갈등을 담고 있는 영화다. 극 중에서 주인공 오말순 여사는 홀몸으로 아들을 키워내 번듯한 국립대 교수를 만들었다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 문제는 아들을 아끼는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며느리를 푸대접한다는 것. 심장이 안 좋은 며느리가 갈등 끝에 쓰러져 실려가는데 병석에서 의식을 회복하자 마자 ‘어머니 좀 나가시라’고 할 정도로 갈등의 골은 깊다. 그러나 영화는 갈등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결말에서 주인공이 운 좋게 되찾은 젊음을 버리는 결단을 아름답게 그리며 아들에서 손자로 이어지는 무조건적인 내리사랑을 긍정하고는 그로 인해 발생했던 며느리와의 갈등은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성찰도 반성도 해결도 진정한 화해도 없이 말이다.
이번엔 진짜다.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이기에 가장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전복적인 영화가 바로 <B급 며느리>다. 2018년 1월 개봉하여 독립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으로 2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불러모았던 이 영화는 다큐 감독인 남편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2년여에 걸쳐 본인의 어머니와 아내 간의 갈등을 날 것 그대로 담아낸 작품이다. 애지중지 키워온 고양이를 결혼하면 갖다 버리라는 시어머니, 갖은 갈등 끝에 2년간 시댁에 가지 않기로 한 며느리, 오늘만 일단 참고 넘기라고 말하는 남편 등 보는 이들 각자의 입장에 따라 이입하는 대상은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가부장제가 뭐길래 멀쩡한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 부딪히고 고생하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2018.9.21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