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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보 Nov 25. 2018

누가 캡틴 마블에게 미소를 강요하나

(2018.9.25 작성)

2019년 3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캡틴 마블>의 공식 예고편이 드디어 공개되었다. 예고편에 등장한 주연배우 브리 라슨과 관련해서 과거 마블의 새 시리즈가 시작되던 때와는 조금 다른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각종 합성사진까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뭘까?  


지난 18일 <캡틴 마블>의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21번째 영화이자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첫번째 영화다. 캐럴 댄버스라는 이름의 공군 파일럿 출신 히어로는 MCU의 수장인 케빈 파이기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등장했던 히어로들 중 가장 강한 캐릭터가 될 것이라 한다. 이런 강력한 캐릭터를 맡아 연기하게 된 것은 영화 <룸>과 <콩:스컬 아일랜드>로 우리에게 알려진 배우 브리 라슨이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할 때 원작 팬들이 캐스팅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어벤져스>의 헐크 역으로 마크 러팔로가 기용되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었다. 전작에서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던 에드워드 노튼이 원작과 싱크로율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에 코믹스 팬들도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의 팬들도 입을 모아 ‘이 캐스팅 반댈세’를 외치는 분위기였다. <어벤져스> 시리즈가 3편까지 나온 지금은 마크 러팔로가 아닌 헐크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코믹스에서는 동양인 남성이었던 <닥터 스트레인지>의 앤시언트 원 캐릭터를 백인 여성인 틸다 스윈튼이 맡게 되었을 때도 논란이 있었다. 이런 사례들은 어디까지나 캐릭터의 특징이나 성격에 기반해 배우가 얼마나 배역에 가까운가, 캐릭터를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들이다.


그러나 <캡틴 마블>의 브리 라슨에게 쏟아진 의견들은 이와는 좀 달라 보인다. 예고편을 보고 기대된다는 얘기도 많았지만 ‘평범하게 생긴 아줌마’라느니 ‘확 끌어들이는 미모가 아니’라느니 ‘블랙 위도우급 미모가 아니’라느니 하는 코멘트도 적지 않았다. 마블의 히어로를 연기해온 배우들 가운데 크리스 에반스나 크리스 헴스워스 같은 미남 배우들도 있지만, 앤트맨을 맡은 폴 러드처럼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도 있고, 기본값이 못생김이고 연기할 때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평을 듣곤 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못생겨서 별로다 나이가 들어 보여서 안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마블의 히어로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에 걸맞는 외모와 이를 잘 표현할 만한 연기력만 갖추면 되는 것 아닐까? 브리 라슨은 마블 히어로를 연기하는 최초의 아카데미 수상자이고 캡틴 마블을 연기하기 위해 배우가 외적으로 갖춰야 할 첫번째 미덕은 미모가 아니라 강인함이다. 군 출신인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브리 라슨은 권투, 레슬링, 유도 등 9개월간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받았고 공군기지를 찾아가 현역 공군 비행사들로부터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예고편 공개 후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해프닝이 있었다. Flinging Monkey(@TFMonkeyYoutube)라는 트위터 유저가 캡틴 마블이 왜 웃지 않냐 그녀의 미소를 보고 싶다며 예고편에 등장한 주인공의 얼굴을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합성해 버린 것이다. 이를 보고 많은 이들이 실소하던 중 Jane Ritt(@heymermaid)라는 유저가 “맞아. 캡틴 마블은 좀 웃을 필요가 있어. 그래야 다른 동료들과 잘 어울릴 테니까.”라며 비꼬는 코멘트와 함께 남성 히어로들이 등장한 포스터를 웃는 표정으로 바꿔버린 사진을 올렸다. Flinging Monkey의 트윗이 불과 500번 가량 RT된 데 반해 이를 비판한 Jane Ritt의 트윗은 2만 가까이 RT되고 5만이 넘는 유저들로부터 ‘좋아요’를 받았다.  




애초에 영화 <캡틴 마블>은 철저히 여성주의적인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기획된 콘텐츠라 할 수 있다. 원작 코믹스에서도 그러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캡틴 마블이 ‘미즈 마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시기에 이 캐릭터는 긴 금발머리에 배꼽과 허벅지가 다 드러난 비키니 수영복 같은 유니폼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 ‘캡틴 마블’이라는 이름으로 캐릭터가 정착될 때쯤이 되어서는 유니폼에서 노출이 사라지고 머리길이도 짧아졌다.


영화 기획 초기단계부터 마블 측은 <캡틴 마블>의 제작진에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각본가인 니콜 펄먼, <인사이드 아웃>의 각본을 쓴 맥 르포브를 비롯해 작가진을 전원 여성으로 기용했고 감독 역시 여성 감독들을 우선적으로 검토했다. 남편 라이언 플렉과 함께 연출을 맡게 된 안나 보덴은 마블 최초의 여성 감독이고 이들이 선임되기 전 물망에 올랐던 이들도 <셀마>로 골든글로브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에바 두버네이, <퍼시픽림 업라이징>의 각본가 에밀리 카마이클 등이었다.

<캡틴 마블>이 개봉하는 내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흑인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제대로드러내면서 흥행에 있어서도 좋은 성과를 거둔 <블랙 팬서>처럼 <캡틴 마블>이 여성 히어로물의 새 역사를 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8.9.2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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