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6 작성)
과거 충무로는 드라마 피디들에게는 무덤 같은 곳이었다. 드라마의 위상이 영화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시절이었던 만큼 감독 데뷔를 꿈꾸는 피디들은 적지 않았지만, 브라운관을 주름잡던 스타피디인 황인뢰, 이진석, 이장수, 오종록 심지어 안판석 마저도 영화감독으로서 인정받거나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한국 드라마 또한 질적으로 진화함에 발맞춰 감독으로의 전업을 성공적으로 해낸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영화감독 겸업에 뛰어든 드라마 피디들의 성적표는 어떨까?
이재규 감독
400만 관객을 코앞에 두고 흥행 순항 중인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은 잘 알려진 대로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등을 연출한 드라마 피디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밝힌 바 있는 감독은 드라마 피디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일종의 지름길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 이재규 감독의 데뷔작은 <역린>이었다. 2014년 5월 초 황금연휴에 개봉해서 384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지만, 현빈, 정재영, 조정석, 한지민 등 화려한 캐스팅과 인상적인 미쟝센에 비해 서사적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다. 각 인물들이 풀어내야 하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아 오히려 메인 플롯이 동력을 받지 못하고 지루해진 셈인데 16부작 드라마에 익숙한 드라마 피디가 저지를 법한 가장 전형적인 범실이다.
두번째 작품인 <완벽한 타인>은 이탈리아 원작영화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가져옴으로써 전작에서 범했던 실책을 무난히 만회했고, 이로써 흥행과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평가에 있어 모두 전작보다 나은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김석윤 감독
영화감독 겸업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바로 김석윤 감독이 아닐까? 조선명탐정 시리즈의 연출자로 알려진 감독의 영화 데뷔작은 2004년부터 방영해 큰 인기를 모았던 시트콤 <올드미스다이어리>의 극장판이었다. 시트콤 메인피디였던 김석윤 감독이 예지원, 지현우 등 출연진을 그대로 데려와 영화 버전으로 이야기를 재탄생 시켰고, 종영 후 극중 캐릭터들을 그리워하던 시청자들은 극장으로 선뜻 달려와주었다.
제작사 대표의 권유로 엉겁결에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지만 <올드미스다이어리 극장판>은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 이 작품을 통해 파트너십을 구축한 감독과 제작사는 한국에서는 드문 프랜차이즈 무비 성공사례로 꼽히는 조선명탐정 시리즈를 만들어 내게 된다. 조선명탐정이 3편까지 차례로 개봉하는 동안, 감독은 <송곳>,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등 호평을 끌어낸 드라마들을 꾸준히 연출하며 드라마 피디로서의 본업(?)에도 소홀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김석윤 감독이 애당초 ‘드라마’ 피디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KBS 예능국으로 입사한 예능 피디 출신으로 <올드미스다이어리> 개봉 당시에도 개그콘서트 연출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덕에 드라마 피디들에 비해 드라마적인 문법으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김홍선 감독
최근 화제 속에 종영한 오컬트 공포 드라마 <손 the guest>를 연출한 김홍선 피디 또한 영화연출에 도전했던 감독이다. OCN 드라마 <히어로>로 데뷔해서 <보이스>, <라이어게임> 등 특색 있는 장르물을 연이어 맡아오며 ‘장르물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뜻밖에 감독 데뷔작은 사극액션인 <역모-반란의 시대>였다. 평생 영화감독을 꿈꿔왔다는 김홍선 피디는 감독 데뷔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되자 직접 각본을 쓰고 제작에 나섰는데 메이저 투자배급사 없이 자체적으로 자금 조달을 해 2015년 8월 촬영을 마쳤지만 배급사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다 2017년 11월에야 늦깎이 개봉을 했다. 라이징 스타 정해인을 비롯한 주연배우들이 노개런티를 불사하고 열연했음에도 저예산의 한계가 드러나며 캐릭터 구축이나 서사 모두 부족하다는 혹평 속에 3만명을 조금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장태유 감독
<쩐의 전쟁>, <뿌리깊은 나무>, <별에서 온 그대> 등 매 작품 시청률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아왔던 한국 최고의 피디 장태유 역시 영화 연출에 도전했다 쓴 맛을 톡톡히 보았다. 2014년 <별에서 온 그대>의 신드롬적 인기를 발판 삼아 중국으로 넘어간 그는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연출하기로 계약하고 첫 작품으로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이라는 영화를 내놓았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건너갔다가 성공을 위한 힌트를 얻고 중국으로 돌아온 젊은 여자 주인공이 앙숙이던 두 여성과 힘을 합쳐 쇼핑몰을 연다는 이야기로 야오천, 당언, 곽부성, 리천 등 중화권에서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주연을 맡았지만 흥행 면에서도 작품성 면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메이메이 쇼핑몰의 기적> 이후로도 한한령 때문에 중국에서 연출한 드라마 <하지미지>에서 연출자 이름이 지워진 채 방영이 되고 국내 복귀를 위해 선택한 드라마 <사자>에서는 제작사 문제로 중도 하차하게 되는 등 불운이 이어지고 있어 과거 그의 드라마를 아끼던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2018.11.16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