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트로보 May 20. 2019

명상센터에서의 하루 일과

센터에서의 하루일과 

센터의 하루 일과는 아래와 같이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돌아갔다. 


04:00 기상

04:30 ~ 06:30 자율명상 

06:30 ~ 08:00 조식 및 휴식

08:00 ~ 09:00 명상홀에서 단체명상 

09:00 ~ 11:00 지도 선생님 지시에 따라 숙소 또는 명상홀에서 명상  

11:00 ~ 13:00 중식 및 휴식 

13:00 ~ 14:30 자율명상 

14:30 ~ 15:30 명상홀에서 단체명상 

15:30 ~ 17:00 지도 선생님 지시에 따라 숙소 또는 명상홀에서 명상 

17:00 ~ 18:00 차 마시는 시간 

18:00 ~ 19:00 명상홀에서 단체명상

19:10 ~ 20:40 법문 

20:40 ~ 21:00 명상홀에서 단체명상

21:00 ~ 21:30 지도 선생님에게 질의응답

21:30 취침 


밤 9시 반 취침에 새벽 4시 기상이라니… 도시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겐 꽤 도전적인 시간표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출근러 생활을 일찌감치 정리한 후로 낮과 밤이 바뀌다시피 한 나에겐 더욱 그랬다. 자정을 한참 넘겨서야 잠이 들곤 하던 내가 과연 새벽 4시에 일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일어나는 것 자체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면 일어나지 않고선 버틸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센터에서 수련생을 깨우는 비법은 아니 일과표에 따라 시간을 알리는 방법은 바로 종을 치는 거였다. 위에 적어 둔 시간표에 맞춰서 종을 치는데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있더라도 들을 수 밖에 없는 데시벨로 끈질기게 여러 번 친다. 집요한 종소리에 4시에 눈을 뜨긴 하는데 문제는 여전히 너무 졸립다는 거다. 9시 반으로 취침시각이 정해져 있지만 그 시간에 쉽게 잠이 올 리가 없어서 1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고 그러다 보면 도저히 4시에 맑은 정신으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부끄럽다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새벽의 자율명상 시간엔 거의 숙소에 남아서 모자란 잠을 보충하곤 했다. 새벽 자율명상 때 명상홀에 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나 싶어 대충 헤아려본 적이 있는데 여자수련생 약 35명 가운데 70% 정도는 참석을 하는 것 같았다. 한국인의 부지런함ㄷㄷㄷ 난 한국인 아닌가 보다;; 그런데 센터 측에서도 새벽 시간을 자율명상으로 정해 둔 건 입소한 수련생들이 제대로 못 일어날 거란 걸 알기 때문 아니었을까?.....라는 건 나약하고 게으른 놈의 변명일 뿐인가;; 


아무튼 이렇게 시키는 대로 시간표를 따라 하루를 보내다 보면 숙소에서의 자율명상을 빈둥거리며 날린다 쳐도 오전에 3시간, 오후에 2시간 반, 저녁에 3시간. 그러니까 하루에 8시간 반은 명상을 하게 된다. 자율명상 시간에도 충실히 명상을 하며 보낸다면 하루 12시간을 명상을 하게 되는 스케쥴이다. 후덜덜… 


이 가운데 하루 세번의 단체명상과 저녁 법문시간이 매일의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단체명상 시간의 풍경을 대충 스케치하자면 이런 식이다. 종이 치면 시간에 맞춰 명상홀로 향하고 각자 정해진 자리에 앉아 명상에 임할 준비를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홀은 여자/남자 구역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이런 방침 자체는 명상 기간 중 심신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데 좀 이상하다고 느꼈던 점은 명상홀 내에서 깔고 앉는 방석이나 식당에서 개인용 식기를 닦는데 쓰는 행주까지 여성용과 남성용으로 따로 마련해서 섞이지 않도록 구분해서 쓴다는 거였다. 응? 뭐지??? 이거 좀 미신적인 느낌인데?? 


아무튼 모든 수련생이 명상홀에 모이면 지도 선생님 격의 백발의 중년 남성이 명상홀 가장 앞 자리에 자리한다. 그러나 실제로 명상수련을 이끄는 사람은 2013년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는 미얀마 출신의 ‘고엔카’라는 법사다. 단체명상 시간에는 오디오를 통해, 저녁 법문시간에는 생전에 찍어 둔 영상을 통해 지도를 받는 것이다. 이 곳에서는 2,500년 전 석가모니가 수련했던 ‘위빳사나’라는 명상수련법을 가르치는데 석가모니가 당시 고통에 시달리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위빳사나를 전파하고자 주변 각국에 모두 제자들을 파견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수련법이 유실되고 오염되어 본국인 인도를 비롯해 거의 모든 곳에서 잊혀지고 사라졌지만 다행스럽게도 미얀마에서는 일부 승려들이 이를 보존하고 있어 대가 끊기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곳에서 기리고 있는 위빳사나의 스승들은 고엔카를 포함해서 그의 스승이라는 사야지 우바킨, 그리고 우바킨의 스승, 우바킨의 스승의 스승까지 총 4명이었다. 말이 2,500년이지 종교 지도자를 4대까지 기리는 거면 사실상 하나의 신생 종교 혹은 종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법문시간에 꽤 여러 번 강조해서 말하길 우리는 종교가 아니고 불교의 한 종파도 아니며 기독교도든 불교도든 힌두교도든 열반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자, 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마음의 평정을 찾고자 하는 자라면 누구나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일종의 테크닉(수련법)을 가르쳐주는 곳일 뿐이라고 한다. 


이 곳에선 우리는 특정한 조직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지 않고 수련생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에 의해 운영되며 자원봉사자에 의해 모든 업무가 굴러간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 불교나 기독교 역시 신도들의 시주나 십일조가 주요 재원이 되고 여러 보살님들, 집사님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굴러가고 있는 것 아닌가?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상센터에서의 낯선 첫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