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트로보 May 19. 2019

명상센터에서의 낯선 첫 하루

센터의 첫인상

경북 3대 오지라는 BYC(봉화-양양-청송)와 맞먹는다고 소문난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의 진안이다. 서울과 진안을 잇는 버스는 하루에 딱 두 편. 직통철도는 당연히 없다. 국내에서 내가 가본 곳 중 가장 외진 곳이 아니었을까. 고속버스를 타고 진안에 내린 것은 오후 한시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센터로 향하는 군내 버스 역시 하루에 딱 다섯 편 뿐이었다. 삼십 분 후에 있는 군내 버스를 포기하고 나는 싸제(?) 점심식사를 택했다. 메뉴는 피순대가 들어간 순대국. 진안은 호남에서 드물게도 산지가 많아 농업보다 축산업이 성하고 특히 돼지를 많이 키운다……고 해서 선택한 건 아니고 열흘간 채식을 할 건데 마지막으로 괴기를 먹어줘야지! 하는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동해서 고른 게 맞다.


터미널 근처 꽤 유명하다는 순대국집을 찾아 들어갔다. 할저씨 무리와 가족 손님들이 꽤 많았다. 젊은 여자 혼자 들어가니 거의 투명인간 취급이다. ‘아… 시골은 이래서 싫어.’ 하는 생각을 하며 일하시는 분을 전투적으로 불러 세워 순대국 하나를 주문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맛은 그냥저냥이었다. 왜 돼지귀도 오소리감투도 간도 허파도 없고 건더기가 대창 뿐인 거죠??? 아무튼 아쉬운 점심을 뒤로 하고 나름 인테리어가 깔끔한 카페를 찾아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 정해진 입소 시간에 맞춰 택시를 잡아 타고 명상센터로 향했다. 택시 기사님께 센터 근처 보건소로 가주십사 얘기를 했는데 여행용 트렁크를 보고 알았는지 명상센터에 가는 게 맞는지 확인을 해왔다. 하긴 열흘짜리 명상코스가 대략 한 달에 두번씩 있으니 그간 이 곳을 찾는 손님들을 솔찬히 태워왔을 테다.


전형적인 시골마을 초입에 위치한 명상센터는 사무동과 식당, 여자숙소, 남자숙소 등 몇 개의 단층 건물이 초등학교 운동장 반 만한 크기의 정원을 둘러싸고 배치되어 있었다. 먼저 도착한 수련생들이 있었는데 나무그늘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서양인 남자들이 눈에 띄었다. 외국인들이 적지 않게 찾아온다는 후기를 읽은 적 있는데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따로 누가 나와서 안내를 해주는 건 아니고 이리 저리로 가서 무얼 하라는 내용이 입간판에 적혀 있길래 그대로 따랐다. 


센터 입소 신청서를 작성해서 오피스에 제출을 했다. 오피스에는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수수한 차림의 여자분과 마리화나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어쩐지 십년 전 홍대 언저리에서 밴드를 했을 것만 같은 인상의 단발머리 남자분이 있었다. 센터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이 된다고 들었는데 이 두 사람도 자원봉사자라고 했다.

 

다음은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지갑 같은 귀중품이나 책, 노트, 필기도구, mp3 같은 물품을 오피스 안쪽 개인용 로커에 보관할 차례다. 다들 그렇겠지만 스마트폰을 처음 손에 넣은 후로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스마트폰 없는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세계여행 도중 잠비아에서 탄자니아까지 타자라 열차를 타고 바퀴벌레 무리와 함께 60시간 이동한 때가 아마 오프라인으로 보낸 가장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래도 노트북이라도 있었는데… 자타공인 스마트폰 중독자에 어린이 시절부터 활자중독 증상이 심각했던 내가 과연 열흘을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스마트폰을 반납했다. 


개인용 로커에는 지갑과 노트를 집어넣었다. 순간적으로 의심병(……;;)이 발동한 나는 혹시라도 센터 측에 말하지 않고 몰래 탈주 혹은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신분증과 신용카드가 든 카드지갑을 따로 챙겼다. 키는 내가 보관하지만 로커 자체가 오피스 안쪽에 있는 개별 공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물건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면 오피스에서는 나의 방 번호와 식당에서의 내 자리번호, 명상홀에서의 자리번호를 쪽지에 적어준다. 명상센터에서 지내는 동안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밥을 먹고 명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센터의 중요한 규칙 중 하나가 코스 기간 열흘 내내 묵언을 지키는 것인데 고정 좌석을 정해주는 것도 아마 수련생 상호간에 커뮤니케이션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잔 꽃무늬가 그려진 매트리스와 이불, 베개 커버를 건네 받고 방으로 향했다. 나는 배급 받은 침구 말고 집에서 따로 가져온 걸 사용했는데 개인적으론 익숙한 내 침구가 낯선 환경에서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는데 꽤 큰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여자숙소는 겉에서 보기엔 시골 분교 같은 느낌을 주는 간소한 단층건물로, 좁고 긴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총 32개의 방이 늘어서 있는 구조였다. 건물 가운데 화장실 겸 욕실과 주출입구가 있고 양쪽 끝에도 출입구가 있었다. 얇디 얇은 가벽으로 구분된 32개의 방은 각각 약 2평 정도 되는 크기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누웠다 갔는지 가운데가 푹 꺼진 싱글 침대와 행거, 그리고 MDF로 된 5단 책장과 어떤 가구의 일부인지 알 수 없는 가로 40cm x 세로 60cm 짜리 1단 서랍장이 갖춰져 있었다. 4면의 벽을 벽지가 아닌 페인트로 마감해 휑뎅그렁한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얼핏 듣기로 이 명상센터가 과거 고시원으로 사용되던 곳을 개조했다던데 과연 그 말이 납득이 가는 분위기랄까… 


대충 짐을 풀고 식당 건물에서 이루어진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다. 센터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매일의 시간표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명상수련 기간 동안은 철저히 남녀가 분리된 생활을 하게 되는데 따라서 코스 시작 전인 DAY 0의 오리엔테이션 때와 코스가 끝난 후인 DAY 11의 마무리 대청소 때만 남자 수련생들과 마주칠 수 있다. 남자 수련생들을 대충 스캔했는데 약 30명 중 서양인 참가자가 20%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오… 그런데 개인적으론 이런 데 찾아오는 서양인은 오리엔탈리즘에 경도된 것처럼 보여서 그다지 좋게 보진 않는다. 그리고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키가 187쯤 되어 보이는 귀엽게 생긴 남자분을 발견했다. 나와는 대략 띠동갑 정도 될 것 같지만 아무튼;; 


오리엔테이션 후 비건 채식 식단으로 저녁식사를 하고는 (센터에서의 식생활에 대해서는 따로 자세히 쓸 생각이다) 명상홀로 이동했다. 명상홀은 센터 내에서 가장 크고 깔끔한 새 건물이었는데 십억을 들여서 지었다고 소식지에 써 있었다. 메인 명상홀은 천장이 높고 전체적으로 하얀 공간인데 대략 60평 정도로 단체명상 시간에 수련생을 비롯해 자원봉사자 등 약 70명 정도가 앉아 명상을 하기 충분한 크기였다. 맨 앞에는 지도 선생님? 같은 분이 의자에 걸터앉아 있고 특별히 벽을 쳐 두거나 한 건 아니지만 공간을 반으로 나누어 한 쪽은 여자, 다른 쪽은 남자가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DAY 0에는 오리엔테이션 정도만 하고 아무 것도 안 할 줄 알았는데 오… 노노 그렇게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첫날 저녁부터 한시간 넘게 명상을 해야 한다. 얼떨떨한 와중에 시키는 대로 정좌를 하고 앉아 나는 그렇게 명상하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영겁 같은 한 시간이 지나고 아홉시쯤 되어 방으로 돌아왔다. 공동 욕실로 가 대충 씻고 양치를 하고 와 잘 준비를 했다. 벌써 오월 초 완연한 봄인데도 시골이라 그런지 아니면 단열이 안되는 건물 탓인지 실내 공기가 꽤 차가워 비치된 전기장판을 켜고 잠을 청했다. 평소 자던 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왜 명상을 배워보려 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