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7 작성)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를 불문하고 창작물에 있어 표절 시비만큼 치명적인 불명예는 없을 것이다. 영화의 경우, 10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 스토리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설정이 비슷하다 해도 표절 여부를 가려내기는 어렵다. 그러면 영화 포스터처럼 한 눈에 알아보기 쉬운 경우는 어떨까?
지난 13일 개봉해 적은 상영회차에도 불구하고 네티즌 평점 9.9를 기록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7위를 기록하며 분전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자백>의 포스터를 보자. 언론사 사무실을 배경으로 각종 자료와 서류들이 수북이 쌓인 책상을 최승호 PD를 비롯한 기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럼 이제 <스포트라이트>의 포스터를 살펴보자.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끈기 있게 파헤친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의 초상을 묵직하게 그려내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로, <자백>팀은 공식 트위터 등을 통해 “한국의 스포트라이트팀”을 자처한 바 있다. 최승호 PD의 강렬한 시선에 방점이 찍힌 <자백>의 포스터가 <스포트라이트>와 완전히 같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인물배치 면에서 적어도 참고는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15년 여름 개봉해 역대 한국영화 흥행순위 3위에 오른 <베테랑>의 포스터 역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2013년 8월 개봉해 한국에서 특히 흥행한 <나우 유 씨 미 : 마술사기단>의 포스터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것. 메인 포스터는 아니고 서도철 형사가 이끄는 광역수사대 팀원 중심의 캐릭터 포스터가 바로 그것이다. <나우 유 씨 미> 의 경우, 과감한 폰트 활용으로 영화의 내용에 맞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데 비해 아스팔트 도로를 딛고 선 형사들의 이미지가 중심이 된 <베테랑>의 포스터가 보다 현실적인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구도의 유사성과 인물이 화면 밖으로 던지는 시선 등 아무래도 두 포스터가 비슷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류승룡을 스타 반열에 올려주었던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역시 개봉 당시 포스터 표절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논란이 된 쪽은 임수정이 연기한 캐릭터 포스터로, 캐서린 제타 존스의 엘리자베스 아덴 레드도어 화장품 광고샷을 참고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경우, 요리연구가인 연정인(임수정 분) 캐릭터에 맞게 주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두 이미지를 비교해보면 색감과 구도, 의상 면에서 상당히 겹치는 구석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2003년 개봉했던 임상수 감독의 문제작 <바람난 가족>도 표절 의혹을 산 적이 있다. 주연을 맡은 배우 문소리가 중요 부위만 가린 채 전라로 도발적인 시선을 던지는 포스터 이미지가 캐롤리나 쿠르코바의 발렌티노 광고샷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제작사 측에서는 극 중 문소리가 거실 구석에서 다리를 벌리고 있는 장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고 문제가 된 발렌티노의 광고를 비롯해 유사한 이미지를 여럿 참고해 제작했으나 이는 단순한 모방은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다.
역으로 한국영화 포스터를 해외에서 표절한 경우도 있다. 한국 공포영화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장화홍련>의 포스터를 2008년 개봉한 일본영화 <나고야 살인사건 0 : 비기닝>이 베낀 것. 두 주인공의 뒤에 선 아버지 무현(김갑수 분)과 새엄마 은주(염정아 분)만 지우면 거의 같은 포스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극 중 두 여자주인공의 관계도 <장화홍련>과 같은 자매 설정이라고 한다.
(2016.10.17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