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0 작성)
때로 멋진 승부를 지켜보는 일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보다 짜릿하고 감동적이다. 올림픽 시즌이 오면 우리가 밤잠을 설쳐가며 티비 앞으로 모여드는 이유다. 승리와 패배가 갈리고, 환호하는 자가 있으면 눈물을 삼키는 자가 나오게 마련이다. 승리를 통한 성취로 우리는 많은 걸 얻지만 실패에 뒤따르는 좌절에서도 우리는 배우고 성장한다. 이것이 바로 스포츠를 소재로 한 성장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유 아닐까? 스포츠, 그 중에서도 이색 스포츠를 다룬 성장영화들은 살펴보자.
경보란 한 쪽 발이 항상 지면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며 전진을 겨루는 경기다. 팔을 부지런히 흔들며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혹자는 우스꽝스럽다 생각하기도 하지만 단언컨대 경보는 꽤 진지한 스포츠다. 금메달이 3개나 걸린 올림픽 공식 종목인 것이다. 금주 개봉작 <걷기왕>에서 선천적 멀미증후군에 시달리는 소녀 만복이 도전하는 스포츠가 바로 경보다. 타고난 멀미 때문에 학교까지 매일 왕복 4시간을 걸어 다니다 보니 공부고 뭐고 학교에서 잠만 자던 소녀가 경보를 접하고 처음으로 욕심을 갖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로, 소년소녀뿐 아닌 우리 모두에게 뛰지 말고 걸어도, 걷다 힘들면 멈춰 쉬어도 좋다는 메시지를 코믹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전한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은 음악에 맞추어 일정한 형식으로 수영과 댄스 기술을 조화시켜 아름다움과 기교를 겨루는 수중 경기이다. 2015 세계선수권에서 최초로 혼성 종목이 신설되었을 만큼 금남의 영역인 이 종목에 도전한 오합지졸 다섯 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바로 <워터보이즈>이다. 일천한 실력에 덤비는 무모한 도전인 만큼 영화는 끊임없이 닥치는 악재와 해프닝을 통해 쉴 새 없이 웃음을 주지만, 평범한, 아니 실은 조금 모자란 아이들이 어쩌다 보니 시작한 무언가에 진심을 다하게 되는 과정이 주는 감동은 결코 가볍지 않다.
족구는 각 팀 4명이 네트를 사이에 두고 발과 머리만 사용해 수비와 공격을 주고 받는 스포츠로 한국, 구체적으로는 공군 11전투비행단이 그 발상지이다. 군인 또는 복학생들이 특히 애호하는 생활체육이라 할 수 있는 족구를 소재로 한 성장영화가 바로 안재홍 주연의 독립영화 <족구왕>이다. 학점 2.1, 토익 한번 본 적 없는 복학생 홍만섭이 사라진 교내 족구장을 되찾고 캠퍼스 퀸 안나에 대한 짝사랑을 이루기 위해 족구에 청춘을 불사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영화로 “너는 족구를 왜 하니?” 하는 질문에 “그냥 재밌으니까요” 하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만섭의 저돌적이고 순수한 모습이 신선하고 또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롤러 더비란 총 5명이 한 팀이 되어 롤러 스케이트를 탄 채로 임하는 경기로 공격수 격인 재머가 트랙을 질주하는 것을 상대팀 나머지 선수들이 저지하며 벌이는 스포츠이다. 레이스 도중 벌이는 몸싸움 수위가 높아 남자 경기가 철폐되었을 정도로 미식축구 뺨치는 과격한 스포츠이기도 하다. 국내에선 생소한 롤러 더비라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 <위핏>에서 주인공 블리스는 보수적인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미인대회에 나가고 바른 생활만 해야 하는 상황에 갑갑함을 느끼던 중, 우연히 롤러 더비라는 짜릿한 스포츠를 접하고 진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주노>의 엘렌 페이지가 주연을 맡았고, 배우이자 제작자로 유명한 드류 베리모어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만기가 장모님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방송인 혹은 낙선 정치인이 되기 전, 강호동이 무릎을 탁 치며 고민을 해결해주는 도사로 전직하기 전에 씨름은 국민 스포츠였다. 이제는 쇠락한 스포츠인 씨름을 소재로 한 성장영화가 바로 2006년작 <천하장사 마돈나>이다. 씨름에 천재적인 소질을 지닌, 그리고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오동구가 씨름을 배우고 시합에 나가는 과정을 통해 폭력적인 아버지의 억압, 그리고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코믹하고 때론 짠하게 그려낸다. 열 아홉의 나이에 27킬로를 찌워가며 열연을 펼쳐 청룡영화제에서 신인남우상을 거머쥐었으니, 주연배우 류덕환 자신에게도 성장의 계기가 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2016.10.2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