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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보 Jun 15. 2019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건 채식을 경험하다-1

명상센터의 채식식단

나에겐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는 고약한 취미(?)가 하나 있다. SNS에서#나의_비거니즘_일기 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해서 비건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올린 음식 사진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품평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채식에 관심이 있어서, 나도 한번 시도해 보려는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콩고기를 튀기고 지지고 볶은 요리를 보고 “아… 이렇게 맛없는 걸 먹다니…” 탄식하거나 탄수화물 메인에 탄수화물 반찬이나 탄수화물 고명을 곁들인 걸 보며 “OMG… 완전 탄수화물 폭탄이잖아…” 하며 놀리기 위해 사진을 찾아본다는 점에서 매우 못되먹은 짓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채식하는 친구를 앞에 두고 이런 망발은 하지 않습니다. 온라인에서 그런 드립도 치지 않아요오오. 그리고 열심히 찾아보다 보면 간혹 맛있어 보이는 메뉴도 있더라고요오오 아무쪼록 글을 읽는 채식주의자 여러분 부디 노여움을 푸시기를…)


이렇듯 나는 농담삼아 스스로를 ‘프레데터(포식자)’라고 칭할 정도로 육식주의자다. 그게 육고기건 해산물이건 계란이건 두부건 간에 탄수화물보다 단백질이 중심이 된 식단을 선호한다. 가끔 절밥을 얻어먹거나 친구 따라서 홍대 언저리에 있는 팬시한 비건 레스토랑에 가 식사를 한 적은 있지만 자발적으로 채식을 한 기억은 당연하게도 없다. 공장식 축산의 문제에 대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육식을 포기하기엔 내가 고기를 너무 좋아하고 동물복지에 신경 쓴 고기를 선택하기엔 나의 주머니가 너무 얇았기 때문이다.


막상 명상코스를 신청하고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 역시 열흘동안 채식, 그것도 페스코도 락토오보도 아닌 ‘비건’ 채식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입소하는 날 최후의 오찬(?)으로 순대국을 선택한 이유도 앞으로 한참 고기 못 먹을 테니까 미리 먹어 두자!! 하는 생각에서 였으니 말 다했다.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한 대로 이 곳 명상센터에선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매일의 일정이 돌아간다. 아침식사는 새벽명상이 끝난 후인 아침 6:30에 먹고, 점심식사는 오전 11시에 하며, 저녁은 오후 5시에 식사가 아닌 차와 간단한 간식을 먹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전에 수련에 참가했던 경험이 있는 구수련생의 경우에는 아예 저녁 간식도 먹지 말아야 한다. 오전 11시에 점심을 먹고 다음날 아침 6시 반에 아침을 먹을 때까지 대략 19시간 정도를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이다. 명상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배를 가득 채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다. (내가 이 명상센터를 다시 찾을 수 없는 이유 하나가 추가되었다……;)


아침에는 밥 말고 죽과 토스트가 나온다. 흰 죽은 아니고 곡류나 렌틸콩처럼 간단한 재료가 더해진 죽에다 채식김치와 김가루, 간단한 절임류가 함께 준비되었고, (우유나 버터 등 동물성 재료가 안 들어가서 그런지 결코 맛있다고 할 수 없는) 식빵과 딸기잼, 피넛버터가 같이 나왔다. 도시에선 달고 짠 과자니 단 음료 같은 걸 아무렇지 않게 먹고 마시다가 센터에 와서 매일 슴슴한 한식만 먹다 보니 딸기잼의 단 맛이 마치 군대에서 먹는 초코파이처럼 귀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죽과 빵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는 게 아니고 둘 다 먹을 수 있었는데 나처럼 딸기잼의 단 맛에 끌려 빵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식빵 쪽 테이블은 늘 줄이 길었다.


채식김치를 먹어본 것도 처음인데 젓갈이 빠져서인지 정말 맛이 단조로웠다. 발효음식다운 복잡하고 깊은 맛은 찾을 길이 없고 배추의 아삭한 맛에 고춧가루의 매운 맛과 소금의 짠 맛이 더해진 그냥 그대로의 맛이랄까… 평소 새우젓으로 담가 맛이 깔끔한 경기도 김치보다 멸치젓이나 그 외 생선젓갈이 들어가 풍미가 강한 남도 김치를 좋아하는 편이라 더 심심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자극적인 음식을 접할 수 없는 환경이라 매운 맛이 난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점심은 하루 중 유일하게 밥과 반찬이 제대로 갖춰진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쌀밥에다 시금치나물이나 겉절이, 도토리묵 무침, 콩자반, 가지나물, 구운 김, 두부조림 등 채식 반찬, 그리고 미역국, 김칫국, 콩나물국, 무국 등 국이 함께 나왔다. 앞서 육식주의자임을 강조했지만 야채 역시 매우 좋아하고 특별히 가리는 식재료도 없기 때문에 매일 채식반찬에 밥을 먹는 것 자체는 다행히도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평소에 요리도 자주 하는 편이고 객관적으로 꽤 균형 잡힌 식생활을 꾸려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으쓱으쓱) 아마 못 먹는 야채가 많은 사람이라면 꽤 힘겨운 생활이 될 수도 있겠다.


반찬 가운데서는 특히 구운 김이 맛있었다. 여기서 직접 굽는 건가 생각될 정도로 바삭바삭하고 참기름 향이 살아있어서 김이 나오는 날엔 기뻐하며 가져다 먹었다. 그 밖에도 두부조림이나 도토리묵처럼 짠 맛이나 새콤한 맛이 제대로 나는 반찬은 그럭저럭 맛이 있었다. 하지만 나물 종류는 재료를 데친 다음 소금간만 약하게 한 듯 밍숭맹숭해서 시금치면 시금치, 가지면 가지를 익혀서 그대로 먹는 느낌이었다.


맛있게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먹을 만한 와중에 ‘아… 이건 뭔가 잘못됐다’ 하며 고개를 내젓게 만든 것은 있었으니 바로 국이었다. 다른 반찬들은 간이 약하다 해도 재료 자체가 가진 맛이나 식감으로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국의 경우엔 가장 많이 들어가는 주재료가 뭘까? 그렇다… 바로 물이다ㅠㅜㅜ 미역국이건 무국이건 콩나물국이건 된장국이건 대체로 ‘물’맛이 났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한식에서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뭔가. 멸치나 소고기, 닭고기를 끓여 육수를 내는 것 아닌가. 그러나 여기선 그 모든 육수 재료들이 다 빠진 상태에서 국을 끓이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맹탕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듣기론 채식하는 사람들은 버섯이나 각종 채소들을 넣고 끓여 만든 채수를 육수 대신 쓴다지만 자원봉사자들이 식사를 준비하는 이 곳에서 그 정도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기본적으론 밥과 반찬, 국이 나왔지만 때로는 특식 느낌으로 불고기 양념을 한 콩고기를 곁들인 쌈밥이라든가 짜장밥, 토마토소스 스파게티 같은 메뉴가 나온 적도 있었다. 콩고기는 예상대로 맛이 없었지만 가끔 나와준 특식 덕에 그나마 질리게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저녁 간식으로는 오미자차, 깔라만시차, 짜이(유제품은 OK인듯 했다) 등의 마실 것과 뻥튀기가 나왔다. 뻥튀기는 옥수수나 쌀 뻥튀기일 때도 있고, 호프집에서 주는 마카로니 뻥튀기일 때도 있었는데 아무리 양껏 퍼 담아 먹어도 뻥튀기는 뻥-하고 배가 꺼졌다.. 밤 9시 반에 모든 일과가 마치면 자야 하는데 자정이 다 되도록 잠이 안 오는 이유가 늦게 자고 일어나던 평소 생활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배가 고파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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