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도둑과 과일 도둑
처음엔 이 정도면 뭐 먹을 만 하네 생각하던 식단도 시간이 흐르니 점점 물리기 시작했다. 채식이라서 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간이 너무 약해서 빨리 질렸던 것 같다. 제일 먼저 나를 괴롭힌 음식은 뜻밖에도 '분짜'였다. 요즘 워낙 인기라 많이들 아시겠지만, 숯불에 구운 고기와 쌀국수, 튀긴 춘권 등을 각종 야채와 함께 새콤달콤한 국물에 찍어먹는 베트남 요리다. 원래 좋아하는 음식이긴 하지만 분짜가 이렇게 맹렬히 먹고 싶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 다음 머릿 속을 가득 채운 메뉴는 보들보들한 계란찜이었다. 평소 계란 요리라면 단연 프라이를 선호하는데 왜 계란찜이 갑자기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보통은 백반집이나 고깃집에 가면 사이드로 따라나오지 따로 시켜먹는 일은 없는 메뉴라 그런지 명상센터에서 돌아온지 한 달이 흐른 아직까지도 못 먹었는데 글 쓰면서 생각난 김에 집에서라도 해먹어야겠다.
다음으로 먹고 싶어진 것이 평양냉면이었다. 날씨가 갑자기 풀리면서 확 더워지니 시원하고 슴슴하지만 고기육수 본연의 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평양냉면이 격하게 먹고 싶어졌다. 신기한 건 스테이크나 삼겹살처럼 고기고기 뙇! 뙇!한 메뉴나 라면이나 떡볶이처럼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아니라 육식에 속하긴 하지만 비교적 건강한(?) 선택지들이 떠올랐다는 거였다.
이전 포스팅에서 명상센터 내에서는 어딜 가든 각자 자리가 정해져 있다고 했는데 식당에서의 내 고정석은 배식테이블의 바로 옆이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밥을 먹으면서 밥이나 반찬을 리필하러 오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런데 입소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한 수련생이 반찬을 더 가지러 온 것처럼 식판을 들고 배식 테이블 근처를 어슬렁 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딱 한 번 나온) 초콜릿을 빛의 속도로 입에 집어넣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딴청을 피우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센터에서 식사는 기본 자율급식제라 밥이나 반찬, 국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었는데 단, 하루에 한 번 꼴로 나오는 과일 같은 디저트의 경우에는 사과 두 쪽, 바나나 한 개, 방울토마토 다섯 개 이런 식으로 양이 정해져 있었다. 초콜릿은 1인당 1개씩 먹게 되어 있었는데 자기 몫을 다 먹고 나서 하나를 더 먹을 요량으로 눈치 보며 다가와서 몰래 입에 넣은 것이다. 솔직히 식물성 유지 들어간 준초콜릿이 맛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나. 별 것 아닌 초콜릿 하나가 뭐라고 명상하러 온, 마음을 갈고 닦으러 찾아온 이런 곳에서 저렇게 추하고 못난 짓을 하는 거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 수련생을 ‘초콜릿 도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은 ‘초콜릿 도둑’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과일 도둑’이라고 부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수련생이었는데 식사시간이 끝날 무렵 다시 와서 개인당 양이 정해진 과일을 오렌지 다섯 조각, 방울토마토 한 움큼 이런 식으로 왕창 더 가져가곤 했다.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배포(;;)가 큰 건지 이 사람의 경우에는 대범하고 태연하게 집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초콜릿 도둑’과 ‘과일 도둑’을 적발(?)한 후부터 매 식사시간 마다 밥이나 반찬을 리필하러 오는 사람들을 더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는데 저들 외에 양이 정해진 과일 등을 욕심스럽게 더 가져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말인 즉슨 이 둘은 여러 번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는 것. 처음에는 규칙을 어기는 모습과 탐욕스런 태도가 너무 추하고 꼴 보기 싫어서 괜히 화가 나곤 했는데 다시 생각을 해보니 그들 때문에 누가 자기 몫을 직접적으로 뺏긴 것도 아닌데 굳이 감정 소모하며 화를 낼 필요까지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괜히 “어떤 피치못할 이유가 있어서 병적으로 식탐이 강한 불쌍한 사람들일지도 모르니까!!” 하며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가설(......;;)을 세워 보기도 했다.
그치만 왠지 저 사람들 평소에도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욕심을 채울 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