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일본어 자격증 도전기 #2

by 다은




그렇다. 나는 원래 어릴 때부터 시험일이 다가오면 그제야 벼락치기로 한 판 승부를 보는 아이였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이런 벼락치기 습성은 결국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벼락치기로 시험공부를 하고 시험을 봤다. 그래서 그런 걸까? 시험을 보고 나면 머리에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흥미가 있는 과목은 따로 그나마 기억에 오래 남았었는데 이마저도 흥미가 꾸준하게 유지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엇인가를 하려면 확 꽂히거나, 흥미가 갑자기 생겼을 때 해야 한다. 즉, 계시를 받아야 한다. 흔히 말하는 덕통사고도 이와 일맥상통할 것 같다. 다만 이제 덕통사고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시작된다는 것이 다르기는 하지만 '내가 관심 있어하는 것'이라는 주제는 같이 가져가니깐 말이다.




하지만 나도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까지 벼락치기를 할 줄은 몰랐다. 인생이 벼락치기의 나날들이다.


핑계를 대자면 퇴근하고 난 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가? 씻고 밥 먹으면 10시가 훌쩍 넘는다. 이 상태에서 뭘 한다는 건 초인만 가능한 일이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공부를 한다? 정말, 진심으로 쉽지가 않다.

퇴근하고 씻는 것부터가 너무나 큰 일이다. 그러나 이미 원서는 접수를 했고, 자격증 문제집도 샀기 때문에 안 할 수가 없다. 이때부터 이제 후회가 된다. 내가 왜 접수를 했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집에 오면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출근하기 전에 공부할 걸 챙기고 출근을 했다.




09:30 - 18:30 노동

13:00 - 14:00 점심시간 및 단어 외우기

19:00 - 22:00 일본어 공부




이런 식으로 점심시간에는 단어장을 가져가서 단어를 외우는 시간으로 썼다. 솔직히 단어는 이때가 아니면 잘 안 보게 돼서 외우려고 하기보다는 책 읽듯이 슥슥 읽고 지나가는 정도로만 봤다. '보다 보면 외워지겠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최대한 많은 단어를 보려고 했었다.


퇴근 후에는 회사 근처 카페에서 자격증 문제집을 풀었다. 솔직히 나는 노베이스 아닌 노베이스다. 중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일본어였고, 대학 때도 교양 수업으로 일본어 강의를 들었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히라가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N3급 문제집을 보면 한자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는 한자를 보면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일본어 발음으로 어떻게 읽는지는 모르는 수준이었다. 아는 것도 없는데 왜 N3급부터 했느냐. 그건 3급은 공부 안 해도 붙는다는 인터넷상 후기를 보고 혹했기 때문이었다.



히라가나 + 몇 없는 아는 한자 = 당시의 내 수준



일본어 시험은 언어지식(문자, 어휘, 문법), 독해, 청해 순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문제집 처음 파트도 언어지식 파트로 시작한다. 문제집을 딱 펼쳤을 때 읽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너무 막막했었다. 히라가나, 가타카나, 한자의 콜라보에 눈도 지끈 머리도 지끈거렸다.


애초에 나는 강의도 없이 문제집 한 권만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더 막막했었다. 하지만 세상이 좋아진 만큼 파파고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공부를 했다. 파파고가 일본어 발음과 뜻을 다 알려주기 때문에 그걸 다 책에 옮겨 적었다. 물론 이러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근데 가끔 이상한 거 알려주기도 하니깐 단어장을 찾아보기는 해야 한다.


처음은 한자 읽기 부분이라 밑줄 친 한자를 어떻게 발음하느냐를 찾으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뭐 알아야 정답을 찾든 말든 할 거 아닌가. 앞에 기출단어를 표시해 줘서 그걸 외우고 풀면 됐지만 단번에 딱 하고 외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봐도 봐도 내일이 되기도 전에, 책만 덮으면 머릿속이 하얀 백지가 된다.


그래서 나는 문제를 보면서 모든 단어와 뜻을 찾았다. 이러면 눈으로 단어장을 보는 것보다 조금은 더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이었다. 몸을 좀 혹사시켜야 머리에 남는 타입은 이래서 슬프다.



공부를 시작했던 초반, 거의 첫날은 그래도 모르는 걸 알아가는 기분이 들어서 나름 즐기면서 했었다. 이게 3개월 동안 꾸준히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벼락치기할 사람은 여전히 벼락치기를 하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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