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다.
친구와 함께 했던 일본여행에서 나는 일본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시작은 거대하지도 위대하지도 않다. 정말 사소한 것이 동기가 되고 이걸 하고자 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나온다.
나는 한창 더위가 지속되는 여름에 친구와 도쿄여행을 갔다. 2박 3일이었지만 우리의 여행은 가기도 전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8월이었기에 태풍 소식이 연이어 들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가 떠나기 하루 전 밤, 태풍이 일본 도쿄를 정통으로 관통한다는 소식으로 일본행 비행기가 줄줄이 취소가 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그 전날에는 도쿄 부근에서 약하지만 지진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두 번째 일본 여행이고, 친구와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여행 가기도 전부터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하필 당일이 다 되어서 이런 일을 마주하다니! 운이 없는 건지 조상님들이 가지 말라고 말리는 건지 이래저래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었다.
일단 수수료가 붙기 때문에 숙소는 취소를 해둔 상태였다. 숙소야 당일에도 구할 수 있으니깐 취소를 하고, 비행기는 어차피 첫 타임이었기에 일단 공항에 가서 비행기가 뜨면 가고 안 뜨면 공항 구경이나 하고 오자는 마음이었다. 짐이야 어차피 기내에 들어갈 정도로 밖에 준비할 게 없어서 사실상 몸만 공항으로 갔었다.
우리의 일본여행은 영화를 보러 가는 거여서 짐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여행은 여행이다. 가서 뭘 사 올지 모르니깐 기내에 들어갈 정도가 되는 크기의 캐리어는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일단 우리는 비행기가 결항이 안 돼서 도쿄에 무사히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급하게 다시 숙소를 잡고 체크인을 해서 비행기를 탔다. 그래도 태풍은 태풍인지라 도쿄 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가 쉽게 착륙하지 못하고 3바퀴는 빙빙 돌았던 것 같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불안한 마음이 더 컸는데 막상 내리고 확인한 날씨는 한국의 장마철 같았다. 그래서 바로 불안한 마음이 가시고 숙소로 향했다. 그래도 태풍 때문에 영업을 안 하는 가게가 많았다. 우리나라와는 반대되는 모습에 뭔가 신기했다. 지금까지 태풍이 온 날 일을 안 했던 적이 있나? 학창 시절에도 태풍을 뚫고 등교를 했던 것 같았는데...
다행히도 다음 날에는 태풍이 왔던 건가 싶을 정도로 날씨가 화창했다. 태풍이 지나간 후라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도 좀 불어서 엄청 습하고 덥지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일본의 여름은 한국보다 덥다고 하는데 이날 경험한 걸 떠올리면 나름 다행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첫날부터 느낀 점은 '젊었을 때 여행 많이 다녀라'라는 어른들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을 이해했다는 점이었다.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돈이 있어야 가죠'란 대답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 정말 젊었을 때 돈을 모아서 여행을 다녀야 되는 게 맞다. 그게 해외던 국내던 다니고 보면 내가 얼마나 작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넓어진다.
일본 서점을 갔을 때 절실히 느꼈다.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이 안 된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노벨문학상 시기가 돌아올 때마다 번역된 책이 없어서 못 읽은 책이 얼마나 많았는지 심지어 한 작가가 쓴 작품이 다 번역이 되지도 않아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읽지도 못하는 원서를 찾아보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영화관도 마찬가지였다. 수입이 안 된 영화를 보는데 무슨 소린지를 몰라서 대충 영상만 보고 추리를 하면서 봤다. 이건 이거대로 재밌는 경험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요즘은 번역기가 잘 되어 있어서 하나하나 번역기의 도움을 받으면 책을 읽을 수는 있다. 단점은 번거롭고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이럴 바에는 그냥 내가 언어를 배워서 조금이라도 읽는 게 빠르지 않을까란 생각이 확 들었다. 영화를 자막 없이 보기 위해, 번역해주지 않는 책을 읽기 위해.
사실상 덕질을 하기 위해 언어가 배우고 싶어 졌던 거다. 그동안 수많은 덕질이 있었음에도 '이제 때가 됐다'는 계시를 받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동안 일본어를 배울 기회는 많고 많았지만 작심삼일이라고 책만 사다 두고 펼쳐보지도 않은 책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언어자격증은 유효기간이 2년이고, 원서비도 비싸서 '굳이 시험을 봐야 하나?' 싶었지만 이왕 배우기로 한 거 '시험 한 번 봐 보자!'는 마음으로 접수부터 했다.
나 같은 작심삼일인 사람은 원서접수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접수부터 해도 3일만 좀 하다가 그 후부터는 안 하게 되지만...
그래서 난 작심삼일 하다가 시험일이 다가와서야 벼락치기를 하게 됐다.
그래도 일단 첫 발을 내딛는 게 중요한 거니깐!
그런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