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 다쓰오 <밀짚모자>
오랜만에 책을 읽다 생각이 많아지는 구절을 만났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균형을 계속 유지하려면 양쪽이 함께 성장해야만 하는데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서는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인 듯했다.
호리 다쓰오의 <밀짚모자>는 시골에서 여름을 보내는 한 소년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인 소년은 친구의 여동생을 좋아해서 이들의 행동과 대화를 보고 있으면 어린 날의 풋풋한 사랑을 느낄 수가 있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작품이 굉장히 서정적이고 문장이 아름답다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주인공은 때때로 의도적으로 상황을 외면하거나 회피를 하는 경향이 있다. 소녀를 좋아할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를 대할 때도 의도적으로 외면을 하고 회피를 하고 있다.
주인공이 커가면서 보는 시야가 달라지고, 그로 인한 감정도 달라져서 주인공의 사랑은 여름날의 추억으로 끝이 난다. 좋게 말하면 아련하게 남은 첫사랑의 기억이지만, 나에게는 그저 회피하는 걸로만 보여서 작품이 기억에 오래 남지는 않는다. 만약 책이 여기서 끝났다면 지나쳐 가는 책 한 권에 불과했겠지만 책은 여기서 끝을 내지 않고 나아가 가족 간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주인공은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인해 아버지, 어머니와 헤어지게 된다. 다행히도 지진이 발생하고 난 다음 날에 아버지를 만나지만 어머니는 끝내 만나지를 못한다.
이렇게 끝이 나는 소설, 그리고 작중 주인공의 말 때문에 이성 간의 사랑보다 부모 자식 간의 사이에 꽂히게 되었다.
-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균형을 유지하려면 양쪽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
- 그러나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서는 쉽지 않은 일인 듯했다.
왜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서는 함께 성장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일까.
사람은 누구나 열 달을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세상에 태어난다. 최초의 시간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이게 함께 성장하는 일일까? 어머니의 영양을 뺏어서 혼자만 성장하는 일이라 한다면 우리는 최초의 시간부터 쉽지 않은 일을 하면서 태어난 것이다. 이미 어머니의 사랑이 더 크다는 전제하에 기울어진 저울에서 성장이 시작된다.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 이보다 무거운 사랑이 어디 있을까. 기울어진 저울이 균형을 이루려면 자식도 커가면서 부모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주면 된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에는 자꾸만 균형이 어긋난다. 주인공처럼 외면을 하기도 하고 별 것도 아닌 일에 틱틱 거리며 괜한 화풀이를 하게 된다. 분명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도 듣기가 싫고 외면하게 된다. 아는데도 마음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유년시절만 해도 어머니한테 모든 걸 의지하고 살았는데 머리가 조금 컸다고 반항이나 하고 말이다. 자식이란 다 그런 걸까. 태어났을 때부터 균형이 맞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무튼 사춘기시절을 최대한 조용히 지나가는 게 서로에게도 좋은 일이다. 사춘기 시절만 지나면 이 관계는 역전이 된다. 어머니한테 모든 걸 의지하고 살았던 자식은 사라지고 자식에게 모든 걸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어머니가 나타난다.
성인이 되고부터 기울어진 저울이 얼추 균형이 맞게 된다. 이제는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나이가 됐기 때문에 둘의 사랑의 무게가 비슷하게 유지가 된다. 하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쪽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그 성장이란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냥 서로 무조건적인 사랑만 주고받으면서 살면 그게 균형 잡힌 사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