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를 읽고
이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의 인상은 상당히 강렬했다. 검은색 표지에 흰색 글씨로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라는 제목이 상단에 박혀 있고 배경에는 똑같은 제목이 더욱 크지만 흐릿한 글씨로 쓰여 있다. 아마 제목 자체가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익히 알고 있을 내용이기 때문에 ‘사라진다’라는 핵심 단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면서 충격을 더하려고 했던 것 같다.
사실 제목만 보면 ‘또 저출생 고령화 얘기야?’라고 괜히 피로감을 호소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부제인 ‘새로 쓰는 대한민국 인구와 노동의 미래’는 이 책이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음을 자신 있게 내세우고 있다. 특히 저자인 이철희 교수가 인구, 건강, 노동, 경제사 등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해 온 학자이기 때문에 최소한 이 책이 뻔히 예상할 수 있거나 학문적 근거가 없는 내용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전반부에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분석 결과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노동인구는 일반적인 예상대로 줄어들겠지만 감소 속도는 생각보다 느릴 것이다. 노동생산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거나 여성, 장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진다면 노동력 총량의 감소는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인구구조의 변화는 산업, 직종별로 노동시장에 불균형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은데 특히 의료 및 돌봄 서비스 분야에서 불균형이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바탕으로 이 책은 후반부에서 노동시장이 젊은이가 사라지고 고령층 위주로 재편되면서 생길 부작용에 대한 대응방안과 바람직한 이민 정책의 추진 방향을 제시한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물론 책 내용이 저자가 단독으로 또는 공동으로 발표한 학술논문, 정책보고서 등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 등을 서술한 부분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부분을 잘 몰라도 각 장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으며 일반적인 논문보다 글도 쉽게 잘 읽히는 편이다. 연관된 전공을 한 입장에서 보면 가장 최근의 추세가 미래에도 유지된다는 가정이 분석 내용에 자주 등장하는데, 다른 예측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크게 무리한 가정은 아닌 것으로 보여 학술적으로도 상당 부분 검증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국민들이 저출생, 인구구조 변화 등에 대해 가진 인식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는 인터뷰 화면으로 대표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은 어떤 면에서는 대한민국이 망해가고 있지만 당장은 우리가 예상하듯이 빠르게 망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인구구조 변화의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데 이 책은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당장 우리가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시의적절하게 제안하고 있다. 합리적인 분석 내용에 바탕을 두고 일말의 희망을 보여주되 그 희망에만 의존하지 않는 냉철한 정책 대응 방안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훌륭한 경제 대중서의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newsfeed.dispatch.co.kr/2262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