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고
테드 창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였다. 그때까지 내게 익숙한 테드 창은 영화 극한직업의 마약범죄자 창식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테드 창은 중국계 미국인 소설가로 단 두 권만의 책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과학소설 상을 휩쓴 작가라고 한다. 장 씨가 아닌데도 영어로 이름 짓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 테드 창이 되었던 극한직업의 창식이와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모습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테드 창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총 여덟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몇몇 소설은 세계관이나 형식 등이 다른 과학소설에 비해 특이하다. 예를 들어 「바빌론의 탑」과 「일흔두 글자」는 각각 고대 바빌론 시대와 산업혁명 초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인류 과학의 진화」는 무려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짧은 글이다. 「지옥은 신의 부재」는 신, 천사 등 일반적으로 과학과는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소설이다.
책 제목의 모티브가 되었고 겉표지 뒤쪽에 일부 내용이 나와 있는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았다. 모든 현상을 순차적인 인과관계로 해석하는 인간이, 미래의 목적지를 미리 알고 있지만 단지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언어를 이용하는 헵타포드라는 외계인과 만나는 이야기가 주인공 딸의 인생 이야기와 나란히 펼쳐진다. 전체 이야기가 목적지가 이미 정해진 헵타포드의 세계관에 부합하도록 서술되었다는 점에서 기발했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볼 때 주인공과 딸의 이야기가 아름답고 슬프게 느껴졌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소설은 「지옥은 신의 부재」였다. 이 소설의 세계관에서는 가끔 발생하는 천사의 강림이 일종의 재난으로 해석되고 천국과 지옥이 모두 존재하는데 지옥은 신과 영원히 단절되어 있는 세계를 의미할 뿐 인간계보다 물리적으로 더 나쁜 장소도 아니다. 이렇게 독특한 세계관 속에서 신에 대한 태도가 제각각인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의 생각과 경험을 따라 읽다 보면 ‘신을 믿는다.’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과 작가의 다른 소설집인 『숨』을 읽고 나면 정말 고급스럽고 품격 있는 과학소설을 읽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각 소설의 세계관이 흔한 과학소설에서 보기 어려울 정도로 특이한 경우가 많은 데다 읽는 과정에서 묵직한 철학적 고민들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 책을 ‘읽으면 유식해진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라고 평가했다고 들었는데 딱 맞는 소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테드 창이 작품을 많이 내는 작가가 아니긴 하지만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여 고민하면서 읽는 즐거움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www.hani.co.kr/arti/economy/it/11421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