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식독서

어쩌면 5·18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by Muswell

'한국인들에게 2024년은, 계엄만 아니었다면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해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누군가 이런 취지로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소년이 온다』가 1980년 5월 18일 전후의 계엄 기간 동안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일들과 고통스러운 후일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짓궂은 역사의 장난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많이 주저하고 망설였다. 5·18과 광주를 정면으로 마주한 작품이다 보니 읽다 보면 필연적으로 분노, 슬픔, 안타까움 등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을 텐데 이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에는, 읽는 동안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엔가 홀린 듯이 계속 읽게 되는 작가의 필력에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다.


중학생인 동호는 한 집에 세 들어 사는 친구인 정대가 행방불명된 누나를 찾으러 나갔다가 군인들에게 총을 맞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를 찾기 위해 희생자들이 모여 있던 곳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친구의 시신은 찾지 못했지만 눌러앉아 시신을 확인하러 온 유가족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각 장은 동호와 그 주변 인물들의 5·18 당시 행적이나 먼 훗날의 후일담을 서술하고 있다.


소설의 첫 장에서 동호의 행동과 생각은 동호 자신이나 전지적 작가가 아닌, 동호를 '너'라고 부르는 화자에 의해 묘사된다. 흔히 접하던 서술 방식은 아니어서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무슨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기도 했다. 마지막 장이 동호 어머니가 동호를 '너'라고 부르며 하고 싶은 말을 쓰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 첫 장에서도 이러한 형식을 빌려서 소설 제목에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인 소년 동호의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다른 장들도 읽어 내려가기 어려웠지만 동호 어머니의 절절한 호소가 이어졌던 마지막 장은 특히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렇게 책이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책의 에필로그를 읽으면서도 감정의 동요가 상당했다. 에필로그에는 한강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 집필과 자료 작성 과정 등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실제 한강 작가가 광주에서 살았던 집에 이사 온 가족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아예 허구의 인물이었다면 덜 슬펐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실존 인물의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다고 하니 슬픔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다. 또한 1980년 초에 광주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왔다는 한강 작가의 주변에도 이런 사연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5·18 당시 희생된 광주시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에 다시 한번 시민들에 대한 공격을 지시한 사람과 그 수하들에 대해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에는 1990년대, 2000년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고통받고 살아가는 인물들도 그려져 있다. 이들은 아마 44년이 지난 지금에도 완전히 5·18 이전의 삶을 회복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다시 비상계엄이 발효되었는데 이를 보면 참 슬프게도 5·18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완전한 공감은 언제나 불가능하지만, 그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최대한 정확히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다시는 이러한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계속해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ycaon/22361665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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