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실력의 순환주기

by Muswell

'요새 경기가 안 좋아서…'. 여러 매체의 기사와 주변 사람들의 말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표현이다. 도대체 건국 이래 불황이 아니었던 해가 있긴 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경기는 일반적으로 회복기, 확장기, 후퇴기, 수축기를 거치면서 순환하는데 이렇게 경기 변동이 반복되는 주기를 '순환주기'라고 표현한다. 경기 순환이 존재한다는 건 후퇴기나 수축기가 있으면 회복기나 확장기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당연히 경기가 항상 안 좋을 수는 없다.


요즘은 영어 실력도 사람들이 체감하는 경기와 비슷한 면이 많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생활한 지 벌써 6년이 넘었지만 내가 느끼는 나의 영어 말하기와 듣기 실력(쓰기는 마음 편히 AI에 맡기기로 했다.)은 항상 물음표에 가깝다. 물론 경제가 위아래로의 변동을 계속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듯이, 내 영어 실력도 장기적으로 보면 조금이나마 늘긴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단기적인 영어 실력의 변동이 상당한 편이다.


미국에 와서 3개월 넘게 출근을 해보니 나의 영어 실력, 특히 영어로 말하는 능력이 1주일을 주기로 위아래로 크게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월요일 오후에 영어가 가장 잘 안 되고, 목요일 오후나 금요일 오전에 영어가 가장 잘 되는 편이다. 이러한 순환주기가 생긴 것은 출근 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보통 1주일에 3일만 출근을 하고 나머지 이틀은 재택근무를 하는데 대부분의 직원들이 화, 수, 목요일에 출근을 한다. 그러다 보니 급하게 논의를 해야 하거나 서로 일정을 맞추기 어려운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회의를 화, 수, 목요일에 한다. 물론 이 날에 회의를 한다고 해도 재택근무를 해야 할 사정이 있다면 화상으로 회의에 참여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나도 별일이 없으면 화, 수, 목요일에 사무실에 나가고 그때 대부분의 회의를 소화한다.


목요일 정도 되면 지난 3일간 영어 사용 환경에 많이 노출이 되다 보니 말하기 실력이 급격하게 상승한다. 가끔씩은 내가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영어로 떠들고 있는 모습을 의식하면서 '오, 오늘은 영어가 좀 되는데?'라고 느끼기도 한다. (상대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금요일에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영어 사용이 읽기, 쓰기로 제한되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주로 시간을 보내면서 빠르게 영어 말하기 능력이 퇴화한다. 그렇게 맞이한 월요일 재택근무 때 오후에 간혹 회의라도 하게 되면 마치 0개 국어 구사자가 된 것처럼 더듬더듬 영어를 내뱉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게 모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겪게 되는 현상이다. 그리고 영어 실력을 가장 자연스럽게 높이는 방법은 영어에 대한 노출을 늘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사실 5일 내내 출근을 한다면 그나마 영어 후퇴기와 수축기를 지금보다 짧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보다 통근시간이 더 늘어나는 바람에 출근을 하면 약 2시간을 길바닥에 버려야 하고 대중교통 비용도 상당해 웬만하면 허용되는 한도까지 재택근무를 하는 편이다. 이래저래 남은 미국 생활 동안 영어 실력의 순환주기를 100번 넘게 경험하게 생겼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eiec.kdi.re.kr/material/pageoneView.do?idx=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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