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섬나라로의 첫 번째 출장

by Muswell

7개월 전부터 일하기 시작한 이곳에서 내가 담당하게 된 나라는 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중 하나다. 참고로 내가 속해있는 부서(division)에서는 무려 13개나 되는 태평양 국가를 맡고 있는데, 파푸아 뉴기니, 동티모르, 피지를 제외한 10개 국가(키리바시,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연방, 나우루, 팔라우, 사모아, 솔로몬 제도, 통가, 투발루, 바누아투)는 모두 인구가 100만이 되지 않는 작은 나라다.


드디어 1월에 연례협의를 위하여 이 나라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 나라에 머무는 기간은 15일이지만 가고 오는 데 각각 이틀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총 출장기간은 3주에 가깝다. 여기에 오기 전만 해도 출장기간을 대략 2주로 알고 있었고 아내에게도 그렇게 얘기했었는데, 이런 나라들은 미국에서 먼 곳에 위치해 있고 직항도 없기 때문에 실제 출장기간은 더 길다는 사실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11월에 예약한 항공편 일정에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지만 역시 가는 길이 멀고도 험했다. 워싱턴 DC에서 도쿄까지 14시간 30분 비행, 도쿄에서 6시간 대기, 도쿄에서 괌까지 4시간 비행, 괌에서 4시간 대기를 마친 후에야 첫 번째 목적지로 가는 항공편에 탑승할 수 있었다. 집에서 출발한 지 약 34시간이 지나서야 첫 번째 섬에 착륙했는데, 이 섬에 대한 첫인상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강렬한 초록색 숲과 에메랄드 빛 바다였다. 활주로가 짧아서 그런지 착륙 직후 급정거가 심해서 앞자리로 밀려가는 느낌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섬에서는 3일 동안 협의를 진행하였다. 이 섬 주변 해역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공격에 의해 침몰한 일본 군함이 상당수 가라앉아 있어 이 군함을 보기 위해 다이빙을 하러 오는 관광객 수요가 꽤 있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한 군함에서 석유가 유출되면서 국가비상사태까지 선언되었다고 한다. 미국과 일본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지만 두 국가는 현재에도 이 나라의 우방국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참 곤란한 입장이겠다 생각했다.


날씨는 예상한 대로 덥고 습하고 비가 자주 내렸다. 첫날 오후 면담은 호텔 컨퍼런스 룸이 문을 닫는 바람에 호텔 복도에서 진행을 했다. 아직 열대지방 날씨의 무서움을 모르고 면담 장소를 찾느라 쓸데없이 계단을 부지런히 오르내린 탓에 이미 미팅 시작 전에 탈진 상태였다. 게다가 복도에는 에어컨도 나오지 않았고 시차적응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첫 번째 면담은 비몽사몽 하다가 겨우 마쳤다. 왜 이곳 사람들의 행동이 한국인의 입장에서 느릿느릿해 보이는지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주말에 이 나라의 수도인 두 번째 목적지로 이동하였다. 일요일에는 팀 활동을 하자고 해서 여행사에 알아봐서 투어를 예약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 해상유적지를 작은 모터보트로 둘러보는 투어였는데, 유적도 살펴보고 바다도 달리고 하니 기분 전환이 되었다. 이 날까지는 그래도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호텔은 나름 이 섬의 번화가에 위치해 있었는데 정부 건물이 있는 수도는 차로 15~20분 정도를 가야 했다. 그나마 첫 번째 섬보다는 도로 사정이 나은 편이었지만, 곳곳에 구멍이 파여 있고 중앙선도 없는 왕복 2차선 도로다 보니 운전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은 아니었다. 이 나라에 머물면서 시속 60km 이상으로 속도를 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월요일부터는 1주일 내내 하루 종일 정부 건물과 호텔 주변을 오가며 면담이 있었다. 이런 작은 나라는 공식 통계가 부실하다 보니, 연례협의에서 면담을 통해 얻는 정보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첫 출장이어서 처음에는 질문을 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점차 적응이 되니 계획하지 않았던 질문도 대화 중간에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영어로 새로운 정보를 듣고 소화하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팀의 다른 동료들도 하루를 마치고 나면 피로가 쌓인 모습이었다.


두 번째 주말부터는 면담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출장 전에 작성했던 보고서를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 사실 업무의 양만 따지면 그렇게까지 일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호텔 와이파이도 오락가락하고 현지 통신사의 핫스팟을 이용해도 인터넷이 안정적이지 않아 업무의 속도가 나지 않는 바람에 토요일과 일요일 내내 일을 해야 했다. 마지막 주에는 면담의 수가 줄었으나 중간중간에 보고서 관련 업무를 계속했다. 예전에 이곳으로 파견을 오셨던 선배님 한 분이 몰디브를 담당했지만 출장 가면 호텔에서 일만 하느라 정작 밖에 나가본 적이 없다고 한탄하신 걸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주에 간 면담에서 예상치 못하게 한국인을 한 명 만날 수 있었다. 다른 국제기구의 개발 프로젝트 관리자로 이 나라에 상주하고 계신 분이었는데, 열정 하나만 가지고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 와서 일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그분의 말로는 이 섬에 상주하는 한국인이 본인을 포함하여 네댓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드디어 모든 면담이 끝나고 마지막 주 화요일과 수요일에 장관이 참석한 프레젠테이션과 종합 면담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잘 마쳤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는 정부의 규모가 작다 보니 장관, 차관 등 고위직이 세부적인 내용까지 잘 파악하고 있어서 고위직과의 면담에서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장관은 종합 면담을 마치면서 미리 일정을 알려주면 다음번에는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진해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팀은 출장 일정을 두 달 전에 이미 정부에 알리면서 세부 면담 일정을 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세부 일정은 도착하는 날까지 정해지지 않았었다.



이렇게 나름 파란만장했던 출장이 잘 끝났다고 생각했다.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면서 항공편 지연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다. 한 시간 넘게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직원이 다가와서는 항공편이 취소되었으니 카운터에 가서 변경을 하라는 소식을 들었다. 원래 돌아오는 항공편은 시외버스처럼 여러 섬을 거쳐 하와이의 호놀룰루까지 갔다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워싱턴 DC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이미 집을 너무 오래 비웠기에 어떻게든 오늘 이 섬에서 나가고 싶었다. 오랜 시간 실랑이 끝에 일단 괌으로 가서 하룻밤 묵고, 괌에서 호놀룰루와 휴스턴을 거쳐 워싱턴 DC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항공편을 변경했다. 마음고생을 조금 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상당히 늦어지긴 했지만, 항공사 돈으로 괌을 짧게나마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첫 번째 출장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문서와 통계로만 경험을 하다가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 생동감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출장을 1년에 두 번 이상 다니게 될 것 같은데, 비행기에서 있는 시간이 워낙 많으니 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원래 처음이 어렵지 적응하면 괜찮아질 테니 앞으로의 출장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 기대한다.


* 제목 사진 출처: unsplash.com (Marek Ok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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