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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Aug 24. 2021

런던에 있던 작은 나의 집 2

2015년 8월 말에 결혼식을 올린 후 신혼여행도 못 가고 9월 초에 아내와 함께 런던으로 왔다. 학기 시작까지 약 3주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집을 얼른 구하고 4박 5일 정도 유럽 어딘가로 신혼여행을 갔다 오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돌이켜 보면 참 안이한 생각이었는데 막상 신혼여행은 그 해 12월 겨울방학이 되어서야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에서 고생스럽게 집을 구하는 전형적인 이야기가 우리 부부에게는 해당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3주 정도 민박집, 단기 임대 등 임시 숙소를 전전하며 아무것도 못 하고 집만 보러 다녔다. 골더스 그린(Golder's Green), 스위스 코티지(Swiss Cottage), 이슬링턴(Islington)부터 남서부의 한인 밀집 지역인 뉴 몰든(New Malden)까지 다양한 지역을 누비며 집을 봤다. 서너 번 정도 마음에 들어서 오퍼를 넣었으며 계약금(holding fee)까지 걸었다가 취소된 곳도 두 군데였다.


기나긴 탐색 끝에 결국 열 번째로 본 집에 들어가 살 수 있었다. 부동산 사이트인 rightmove에서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집이 너무 깔끔하고 학교까지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인 것 같아서 어떤 지역 인지도 전혀 모르고 무작정 집을 보기로 했다. 집을 보러 간 날에는 날씨가 눈부시게 좋아 집이 더욱 괜찮아 보였고, 우리 부부는 집을 보자마자 부동산 회사 직원에게 이 집에 입주하고 싶다고 말했다. 각종 서류가 무사히 통과되었고 일정 조율도 잘 되어서 학기가 시작하는 주였던 10월 초에 이사할 수 있었다.



이 집은 개인이 소유한 집이 아니라 부동산 회사에서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외국인 신분으로 집을 구할 때는 집주인들이 처음 입주 시에 6개월치 월세를 미리 요구하면서 외국 살이의 서러움을 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집은 법인 소유라 그런지 선금 없이 3개월에 한 번씩 집세를 내면 됐다. 또한 집에 문제가 생기면 개인이 집주인일 경우 문제 해결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이곳은 이메일 한 통만 보내면 회사에 고용되어 있는 기술자가 와서 바로 해결을 해 주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집은 다른 원 베드룸 플랏(One bedroom flat, 침실 한 개에 화장실, 주방, 거실이 더해진 구조)에 비해 약간 좁은 편이었다. 침실과 그에 딸린 화장실은 있었지만 주방과 거실이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실 한쪽 벽면에는 주방의 개수대, 조리대와 높은 의자에 앉아 벽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탁이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집이 위치한 지역은 지하철 역에서 가깝지 않아서 시내에 나갈 때 교통이 불편했다. Zone 3에 있는 노던 라인(Northern line)의 이스트 핀칠리(East Finchley) 역까지 걸어서 15~20분 정도 걸렸고, 피카딜리 라인(Picadily Line)의 턴파이크 레인(Turnpike Lane) 역까지는 버스로 15분 정도 소요되었다. 학교에서 가까운 지하철 역은 피카딜리 라인이었기 때문에 여러 경로를 시험해 보다가 결국 집 근처 종점에서 W7 버스를 20분 정도 타고 피카딜리 라인의 핀스버리 파크(Finsbury Park) 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타는 경로로 정착을 했다. 핀스버리 파크 역이 Zone 2에 있었기 때문에 교통비도 약간 아낄 수 있었다. 이 경로로 가면 집에서 학교까지 50~55분 정도 걸렸다.


이 집에 2년 가까이 살았는데 첫 해에는 집세가 주당 285파운드, 두 번째 해에는 주당 290파운드였다. 파운드 환율을 1,600원으로 가정할 때 이 금액은 무려 200만 원에 가깝다. 서울과 비교하면 시내 중심부에서 동북쪽으로 1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강북, 도봉 지역에 있는 투룸 빌라의 월세가 이 정도라는 뜻이니 런던의 집세가 서울에 비해 훨씬 높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집을 구하기 전까지 1년 가까이 런던에 있었지만 이 집이 위치한 지역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정보도 전혀 없이 살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으니 초등학교 학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습긴 하지만)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동네가 깔끔하게 정돈된 편이었고 집에서 5분만 걸어 나가면 동네 중심부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대형마트 세 군데, 각종 체인점, 은행 등 웬만한 편의시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인 마트도 버스로 25분 정도 소요되는 골더스 그린에 서울 플라자가 있어서 편리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에는 알렉산드라 팰리스(Alexandra Palace)라는 큰 건물이 있었다. 지금은 전시장과 아이스 링크로 이용되고 있는데 사실 이 건물은 BBC가 전 세계에서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을 송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이 위치한 곳은 그나마 런던에서는 지대가 높은 편이라 런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그 이유로 여기에 BBC 텔레비전 방송국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 주변에는 풍성한 녹지, 작은 호수 등이 넓게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 있다. 12월 31일 밤에 이 공원에 구경을 간 적이 있는데 런던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가 작은 규모로 여기저기서 터지는 장면이 장관이었다.


이 집은 우리 부부의 신혼집이었고 아이도 이 집에서 생겼다. 월세는 사악한 수준이었지만 주변 환경도 나쁘지 않아서 살면서 애착이 많이 갔던 집이었다. (사실 나의 필명도 이 집이 있던 동네 이름을 딴 것이다.) 런던 생활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내 아내도 이 집에 살 때의 추억에 대해서는 자주 얘기하곤 한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8jP0g3vb5bc&ab_channel=FELIXCECC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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