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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Dec 02. 2021

열정 페이의 경제학

21세기가 시작되던 해, 코요태의 Passion이라는 노래가 우리나라를 강타할 때만 해도 '열정'이란 단어가 이렇게까지 조롱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10년대 들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줬다는 구실로 고용주가 청년 구직자에게 보수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소위 '열정 페이'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시장 임금보다 낮은 열정 페이를 지급하는 것은 노동경제학에서 '보상적 임금격차(compensating differential)'라고 불리는 이론으로 어느 정도는 설명할 수 있다. 노동자가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일을 다른 일에 비해 확실히 선호하기 때문에 낮은 월급을 감수하면서도 일을 할 의사가 있는 경우 열정 페이는 보상적 임금격차에 해당될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노동자가 아닌 고용주가 먼저 열정을 들먹이면서 임금을 깎고, 노동자는 다른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낮은 월급과 고용주의 꼰대질을 참아가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례는 보상적 임금격차에 해당된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청년 실업률이 높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청년 실업률이 높지 않다면 임금과 근로 조건이 더 나은 직장을 구할 가능성(outside option)이 높아지므로 어쩔 수 없이 '열정'을 핑계로 사실상의 착취를 일삼는 일자리에 취직할 필요성이 낮아지게 된다.



고용주의 갑질로 얼룩진 상태가 아닌, 순수한 의미의 열정 페이는 근로조건이 더 좋을 때 임금을 덜 지급하는 보상적 임금격차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근무시간이 상당히 자유롭고 연구주제를 마음 내키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교수의 월급이 다른 직업에 비해 낮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근로조건이 열악할 때 임금이 더 높아지는 것 역시 보상적 임금격차로 볼 수 있다. 보상적 임금격차라는 단어가 위험한 환경을 보상하기 위해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한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음을 고려한다면, 이런 경우가 보상적 임금격차의 전통적 의미와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보상적 임금격차가 실제 존재하는지 여부를 측정하는 문제는 단순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원칙적으로 생산성이나 능력이 같지만 다른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두 노동자를 대상으로 각 직장의 근로조건 차이가 두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는 대부분 생산성과 능력의 차이를 반영한다.(라기보다는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이를 가정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데이터에서는 근로조건의 차이가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설명하는 부분, 즉 보상적 임금격차에 해당되는 부분을 정확히 분리해내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학에서는 준실험적 상황을 이용하거나 개인별 특성(생산성 또는 능력도 이에 해당될 수 있다.)을 고려할 수 있는 고정효과(Fixed effects) 패널 모형을 이용하여 회귀분석을 수행한다.


석사과정 수업 시간에 배웠던 논문들에 의하면 보상적 임금격차는 존재하긴 하나 그 크기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에 대해서는 합의된 결론이 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연구에 따르면 생물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학생들이 연구의 자유도가 높은 직장에 취업할 경우 임금이 낮은 경향이 있다고 하고, 산업 현장에서 사고 발생 시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을 의무화한 법이 시행된 이후 보상액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 정도가 크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린 연구도 있었다. 내 주전공 분야가 아니라서 위 결론을 뒤집는 최신 논문이 발표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라면 이러한 결과는 '보상적 임금격차' 이론의 기반 자체가 탄탄하지는 않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꼰대질과 낮은 임금에 시달리는 청년층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겠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huffingtonpost.kr/2016/01/25/story_n_90749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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