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땐 뇌 과학』과 『그냥 하지 말라』를 읽고
2000년대 한때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내가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가끔씩 봤던 것 같은데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코너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유명해져 버린 컬투가 등장해서 말도 안 되는 영어 해석을 선보였는데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불멸의 유행어를 남긴 코너였다. 당시만 해도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인 줄 알았으나 저 말이 인생의 진리였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었다. 특히 박사과정 공부까지 하고 나니 저 말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두 책은 얼핏 보면 상반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두 권의 책을 읽었는데 한 책(『우울할 땐 뇌 과학』)은 '제발 뭐라도 해라'라고, 다른 책(『그냥 하지 말라』)은 '뭐든 그냥 하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어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사실 두 책의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마법의 문장인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한 마디면 해결될 상황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는 제목을 최대한 자극적으로 뽑아보고자 두 책을 굳이 대비시켰다. 무려 10년 넘게 매주 두 편의 영화로 비슷한 짓을 계속해오셨던 분(링크)도 계시니 부디 독자 여러분의 넓은 이해를 바란다.
『우울할 땐 뇌 과학』은 책을 소개하는 유튜버인 '겨울서점'이 추천한 책이다. 내 경우에는 '겨울서점' 추천 도서의 성공률이 70~80% 정도로 꽤 높은 편이었다. 일부 문학, 철학 관련된 책을 제외하고는 내 취향과 대부분 맞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딱히 우울증 증상이 없는데도 순수한 호기심에 이 책을 찾아 읽은 것이다. 책 제목에 '우울'과 '뇌 과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 다소 어둡고 딱딱한 인상을 주는데, 다 읽고 나니 첫인상이 무색할 정도로 흥미롭고 가끔씩은 유쾌하기도 한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상당히 유용하다. 전반부에서는 우울증에 걸려있을 때 뇌의 각 부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이 부분을 읽다 보면 전전두엽, 전방 대상피질, 편도체, 섬엽, 해마 등 반복해서 등장하는 뇌 부위의 명칭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각 뇌 부위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술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당연히 아니다. 후반부에서는 우울증의 하강 나선에 빠져있을 때 그로부터 최대한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조언으로 채워져 있다. 사실 후반부 각 장의 제목에 핵심적인 조언이 다 나와 있다시피 한데 그래도 내용이 지루한 편은 아니었다. 참고로 각 장의 제목은 운동이 뇌에 미치는 영향(5장), 최선의 결정이 아닌 괜찮은 결정(6장), 수면의 신경과학(7장), 습관을 적이 아닌 동지로 만들기(8장), 감사 회로가 부정적 감정을 밀어낸다(10장), 그저 사람들 속에 있기(11장), 전문가라는 도구(12장)다. 이 중 6장과 11장에서 '뭐라도 해라'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그냥 하지 말라』는 제목이 상당히 강렬한 책이다. 제목이 쉼표를 어느 곳에 찍느냐에 따라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인데 저자가 데이터 분석 전문가라고 하니 설마 책 제목이 '그냥, 하지 말라'는 아니겠지 싶었다. 부제(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와 영어 제목(Don't just do it)을 보고 나의 추측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밀리의 서재에서 발견하고 읽기 시작한 것은 전적으로 빅데이터라는 단어에 홀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애초 기대했듯이 빅데이터를 이용하여 기발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최근의 정형화된 사회 흐름을 빅데이터를 통해 뒷받침하긴 하는데 그냥 어떤 단어의 언급 횟수가 높아졌다, 어떤 단어가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표현만 가끔 보이는 정도였다. 책의 홍보 문구에는 데이터 과학이 강조되어 있지만 실제 내용으로는 자기 계발이나 경영 분야에 더 가까운 책이었다.
자기 계발 서적을 평소에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책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한 편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기술은 당신이 태어난 다음에 나온 것(Technology is anything invented after you were born)'이라는 인용문이 인상 깊었고 '생각의 현행화'라는 소제목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었다. '그냥 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결국 방향성 없이 무작정 뭔가를 하지는 말라는 얘기인데, 단순하지만 내 삶에서도 여러 가지 측면에 적용할 수 있는 메시지라 그런지 유난히 깊이 와닿았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i-boss.co.kr/ab-6141-54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