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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Jan 01. 2022

이 책은 코미디인가 에세이인가

『다정소감』과 『전국축제자랑』을 읽고

제목만 봐서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두 책은 모두 김혼비 작가가 썼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정소감』은 김혼비 작가의 단독 저작이고 『전국축제자랑』은 김혼비 작가와 남편인 박태하 작가가 공동으로 쓴 책이다. 이 두 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무튼, 술』이라는 김혼비 작가의 전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머릿속에 '김혼비'라는 이름을 각인시켜 내가 이 두 권의 책을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든 기념비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김혼비'는 필명인데 영국의 작가인 닉 혼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아무튼' 시리즈는 다양한 작가들이 '생각만 해도 좋고, 설레고, 피난처가 되는 한 가지'에 대해 200쪽 내외로 짧게 쓴 책들이다. 현재까지 40권 넘게 출간되었고 방금 세어보니 내가 끝까지 읽은 건 일곱 권인데 그중 『아무튼, 술』이 가장 재미있었다. (요조 작가의 『아무튼, 떡볶이』가 막상막하긴 했다.) 나는 평소에 혼자서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볼 때 아무리 웃긴 장면이 나와도 실제 소리를 내서 웃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 책은 읽으면서 육성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무튼 시리즈가 에세이를 표방하고 있지만 최소한 이 책은 코미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술과 관련된 굵직굵직한 에피소드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두 책 모두 김혼비 작가의 수다스러우면서 깨알같이 터지는 말장난의 향연이라는 점에서 전작과 일맥상통한다. 『전국축제자랑』은 박태하 작가와 공동으로 집필한 책인데 역시 부부는 닮는 건지 그도 무시할 수 없는 개그감을 선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세상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으면서 생각하지 못한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에세이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다정소감』은 제목에서부터 다정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글을 보여주겠다는 굳은 다짐을 반영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가식과 위선에 대해 쓴 내용이었는데 어차피 세상에 진짜 선만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식과 위선을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게 차라리 나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꼰대와 관련된 내용도 흥미로웠는데 꼰대질이 두려워 조언 자체를 거절하게 되면 진짜 꼰대들은 본인을 꼰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꼰대질을 계속하는 반면,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할 가능성이 높은 지인들은 혹시 꼰대질을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을 하면서 조언을 삼갈 가능성이 높아 더욱 꼰대들만 주변에 꼬이는 상황을 초래하게 될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책이 한없이 웃긴 가운데서도 작가의 통찰력에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전국축제자랑』은 부부가 전국 12개 축제에 다녀온 후 썼던 연재 글을 엮은 책이다. 우리나라의 축제가 워낙 서로 어울리지 않는 여러 개의 행사가 모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코미디를 담당하는 에피소드의 소재는 화수분처럼 튀어나온다. 처음에는 조선 시대 남녀가 내외하듯 축제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던 두 작가가 왠지 모르게 축제를 즐기며 응원하게 되는 장면들도 소소한 웃음과 함께 따뜻함을 주는 지점이었다. 전체적으로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는데 한 가지 작은 불만이 있다면 'K-스러움'이라는 용어가 너무 남용되고 있는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대환장파티가 벌어지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천연덕스럽게 사회자가 무심한 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갑자기 구석에서 감동적인 지점이 등장하는 등 어느 정도는 막장스러운 전개를 그냥 'K-스러움'이라는 용어 하나에 모두 때려 박은 느낌이었다. 어떤 의도로 이 용어를 썼는지는 이해가 되긴 하지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모든 상황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는 용어로 등장하는 경향이 있어 뒤로 갈수록 용어의 신선함이 바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코미디인지 에세이인지 헷갈릴 정도로 웃긴 책이라고 쓰고 있지만, 말장난은 개인 취향을 탈 수밖에 없는 탓에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웃긴 책일 리는 없다. 참고로 내 아내는 『전국축제자랑』을 몇 쪽 읽고서는 한마디로 '정신없는 책'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렇지만 웃음 코드가 맞는다면 두 권 모두 강력하게 추천할 만한 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nl.pinterest.com/pin/32228953559466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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