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원을 다녔던 경제학과에서는 세부 전공별로 교수와 대학원생 연구실을 같은 층에 배정하여 자연스럽게 소통을 유도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 전통이 효과가 있었던지 외향적이지 않은(이라 쓰고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으로 읽는다.) 학생이었던 나도 지도교수가 결정되고 연구실을 배정받은 후 오며 가며 마주치던 선배들을 몇 명 알게 되었다. 그중 한 명이었던 틸로카(Tiloka)는 스리랑카 출신이었고 나보다 3년 먼저 박사과정을 시작한 학생이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틸로카는 자신이 한국에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며 유난히 반가워했다. 그러고서는 앞으로 많이 나를 괴롭히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했는데, 그녀는 1년 후에 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고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 말을 정확히 지켰다. 사실 괴롭혔다는 건 농담이고, 내가 한국인 연구보조원을 구할 때 한국어로 게시글을 올려주거나 자료를 구할 수 있는 한국 웹사이트에 대신 회원 가입을 해주고 한국의 현실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등의 소소한 도움을 몇 번 준 정도였다.
틸로카의 논문 제목은 〈인적자본을 위한 무한 경쟁: 한국을 중심으로(The Rat Race for Human Capital: Evidence from South Korea)〉(링크)였다. rat race는 극심한 생존 경쟁이나 무한 경쟁을 뜻하는 표현인데 제목인 인적자본을 위한 무한 경쟁은 사교육 경쟁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틸로카가 이 논문을 통해 답을 얻고자 했던 질문은 '사교육에 대한 지출이 대학 입학이나 졸업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궁금해할 만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별로 대학 입시 결과나 졸업 여부를 종속변수로 하고 사교육 지출을 설명변수로 하는 간단한 회귀분석을 실시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데 그 이유는 부모의 교육열, 학생의 능력이나 열의 등도 사교육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동시에 대학 입시 결과와 졸업 성적에 큰 영향을 주므로 이런 요소들을 적절히 통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사교육비에 부모와 학생들이 예측하지 못한 충격이 발생한 사례를 이용한다면 사교육비와 이 요인들 간의 관련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틸로카도 논문에서 바로 이 방법을 선택했는데 구체적으로는 2007년에 7개 시도에서 학원 영업시간을 밤 10시로 제한했던 조례를 사교육비에 대한 충격으로 활용하였다. 이 조례 때문에 학생들이 이사를 가지 않았다면, 조례를 도입한 시도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사교육비는 줄어들고 조례가 적용되지 않는 시도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사교육비에는 변화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틸로카가 이 내용을 학교 세미나에서 발표했을 때 장내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에서 온 교수와 대학원생들 몇 명을 빼고는 학원에서 보통 밤 10시를 넘어서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저런 조례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대학원 동기는 나에게 '넌 저런 환경에서 계속 공부해 왔으니 박사학위 정도는 식은 죽 먹기겠네?'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논문의 추정 결과 실제 학원 영업시간 제한이 사교육비 지출을 줄이고 학원에 가는 시간을 줄인 대신 수면 시간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참 오랜만에 경제학 논문을 읽다가 슬퍼졌다.) 또한 논문은 부모의 교육 수준이 낮을 때 사교육비 지출이 자녀의 대학 입학 확률을 높이는 효과가 더욱 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보통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을 때 사교육비 지출이 많아지므로 이는 사교육의 효과가 사교육비가 늘어날수록 점차 줄어든다는 점을 의미한다. 논문은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능력의 향상 없이 대학 입학 점수만을 올리기 위한 한국의 사교육 경쟁은 사회 전체적으로 비효율적일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로 한국인 경제학자의 관점이 포함된 최신 논문 한 편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바로 김성은, 염민철, 미셸 터틸트(Michele Tertilt)가 공동으로 작성한 〈교육에서의 지위 외부성과 한국의 저출산(Status Externalities in Education and Low Birth Rates in Korea)〉(링크)이라는 논문이다. 저출산은 알겠는데 지위 외부성은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제목이다.(사실 나도 그랬다.) 경제학에서 외부성은 개인이나 기업 등이 어떤 경제적 행동을 했을 때 의도하지 않은 이익이나 손해를 일으키는데도 아무런 대가를 받거나 지불하지 않는 상황을 뜻한다.(링크) 공장의 생산 활동이 환경오염을 유발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내지 않는 경우가 부정적 외부성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논문의 제목에 등장하는 교육에서의 지위 외부성이란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상대적 순위(지위)에만 관심을 갖고 경쟁적으로 사교육을 시킨 결과 예상치 못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제는 논문에서 밝히고자 하는 내용이 어느 정도 예상되기 시작한다. 순위에만 집착하는 과도한 사교육 경쟁이 자녀 출산 후 예상되는 교육비 지출에 대한 부담을 높여 결국 저출산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동질적 개인을 가정한 모형(heterogeneous agent model,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냥 경제학의 기본 가정을 완화한 아주 복잡한 모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을 이용하여 추정한 결과, 이러한 사교육 경쟁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지금보다 16% 정도 높았을 것이라고 한다. 뒷부분에서는 사교육 경쟁을 줄이거나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의 효과를 위 모형을 통해 분석하기도 했는데 기술적인 내용이 많아 여기까지만 줄이도록 하겠다.
사교육의 경제적 효과를 다룬 논문을 딱 두 편 살펴보았는데 신기하게도 모두 전체 사회의 입장에서 볼 때 사교육이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물론 문제는 과연 내 자식에게 이 결론을 용감하게 적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냐가 되겠다. 전형적인 용의자의 딜레마 상황으로 보이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분위기가 바뀌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일단 내 아이에게는 최대한 불필요한 사교육을 시키지 않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kr/%EC%9D%B4%EB%AF%B8%EC%A7%80/rat-r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