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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Apr 08. 2022

요즘은 기술이 발전하면 어떤 일자리가 사라지는가?

내가 커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넘어 다른 사람들이 각각의 일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대략 군대에서 자대 배치를 받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보병이었던 내가 힘들게 밖에서 근무 서고 훈련을 받는 동안 행정병이나 보급병들은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취업을 하고 직장 내 여러 부서를 돌면서 '도대체 무슨 중요한 일을 하길래 그렇게 야근들을 하나'라는 생각을 주로 했는데 어쨌든 이런 생각도 직업에 대한 관심의 일종이긴 하다. 그런 관심이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인지 작년에는 '아무튼,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보기도 했다.


박사과정 진입 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주제를 결국 직업의 관점에서 풀어낸 것을 보면 참 신기하게도 평소의 관심은 어떻게든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같다. 처음에 가졌던 가설이 엎어지고 또 다른 가설로 시작하는 등 연구 과정에서 중대한 변화가 있었지만 직업 관련 데이터가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 데이터 역할을 했던 건 변하지 않았다. 처음 논문 작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전혀 몰랐는데 알고 보니 직업 관련 분야는 최근 노동경제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그만큼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경제학 논문은 미국 경제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이 가장 선진국이기도 하지만 데이터가 가장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최근에는 훌륭한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국가가 미국 외에도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최소한 직업 관련 데이터는 아직도 미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어 보인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데이터는 직업 명칭 사전(DOT, Dictionary of Occupational Titles)이다. 미국 노동부에서 무려 13,000개가 넘는 직업에 대해 각각의 직업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예: 서 있기, 앉아 있기, 멀리 보기 등)을 서술해 놓은, 말 그대로 직업계의 백과사전이다. 카투사로 미군들과 함께 군 생활을 한 탓에 개인적으로 미국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긴 걸 보면 미국이 대단한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이 사전은 1939년 초판 발행 이후 네 번 개정판이 발간되었고 1991년에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되었다.


직업 명칭 사전의 개정이 중단된 후 이를 계승한 것이 바로 직업정보 네트워크(O*NET, Occupational Information Network)의 데이터다. O*NET에서는 직업의 종류가 약 900여 개로 단순화(?)되었지만 DOT에 비해 조사하는 행동이나 기술의 범위가 더 넓고, 각 직업별로 수십 명의 근로자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으며 매년 약 100개씩의 직업 데이터를 개정한다는 점에서 크게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내 논문에 쓰인 데이터도 O*NET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논문에서는 방대한 직업 데이터에서 연구주제와 맞는 몇 가지 특성만을 뽑아내 그 특성을 기준으로 수많은 직업을 몇 개의 직업군으로 분류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분류는 오터(Autor), 레비(Levy), 머네인(Murnane)의 2003년 논문(링크)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정신노동(cognitive), 단순 반복 노동(routine), 육체노동(manual)이다. 대략 관리자·전문직 등이 정신노동에, 단순 사무직 등이 단순 반복 노동에, 건설 노동자 등이 육체노동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위 논문에서는 컴퓨터의 도입이 각 직업군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는데 결론은 컴퓨터가 단순 반복 노동을 수행하는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 논문을 시작으로 이후 많은 연구가 IT 기술, 로봇 등이 발달함에 따라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 현상을 단순 업무 편향적 기술진보(Routine-biased technological change)라고 부른다. 기술진보가 단순 업무를 대체하는 쪽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단순 업무 편향적 기술진보가 계속됨에 따라 일자리 양극화(job polarization)라는 현상도 생기게 되었다. 수백 개의 직업을 각 직업의 평균 임금 순으로 순위를 매겨 보면 대략 정신노동, 단순 반복 노동, 육체노동에 속하는 직업 순으로 임금이 높다. 그런데 기술이 단순 반복 업무를 없애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 순위에서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는 단순 반복 노동에 속하는 직업은 고용 증가율이 낮고, 대신 임금 순위에서 양쪽 끝에 있는 정신노동이나 육체노동에 속하는 직업은 증가율이 높게 나타난다. 임금을 가로축에, 고용 증가율을 세로축에 놓을 경우 이러한 일자리 양극화는 U자 형태로 그릴 수 있다.



아마 앞으로도 기술 발전은 계속될 텐데 일자리 또는 직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당연히 알기 어렵다. (알다시피 경제학자의 예측이 성공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듯이 어쩌면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정신노동까지 대체하게 될 수도 있다. 사실 기술 발전이 당장 내 일자리에 위협이 될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문제긴 하지만,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로서는 전반적인 직업의 분포가 미래의 기술 발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할지에도 큰 관심이 간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662505&memberNo=909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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