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같이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경기를 앞두고 주변 사람들과 내기를 할 때마다 우리나라와 상대하는 팀에 돈을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만약 우리나라가 이기면 돈은 잃겠지만 기분은 크게 나쁘지 않고, 상대 팀이 이기면 돈을 벌게 되니 어떤 상황이 되든 손해 볼 것은 없다는 논리이다. 이런 사람들을 옆에서 보게 되면 투자할 때 많이 쓰는 위험분산 전략을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적용한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저렇게 살 수 있으면 불행하지는 않겠다는 부러움도 든다.
그런데 요즘 책을 읽다가 몇몇 작가들이 이와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로 단서를 얻었던 책은 몇 년 전에 읽었던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다. 이 책의 첫 장에서 작가는 한 달 정도 머물면서 글을 쓰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비자를 받아오지 않는 바람에 상하이 공항에서 추방 명령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온 일화를 소개했다. 그런데 그 당시의 경험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흔치는 않겠지만, 겪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의외로 최악의 기분은 아니었다. 여행은 아무 소득 없이 하루 만에 끝나고, 한 번 더 중국을 왕복하고도 남을 항공권 값을 추가로 지불했으며, 선불로 송금해버린 숙박비와 식비는 아마도 날리게 될 것이 뻔했지만, 난생처음으로 추방자가 되어 대합실에 앉아있는 것은 진귀한 경험인 만큼, 소설가인 나로서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자기 합리화의 정도가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이 사람은 정말 소설 쓰는 걸 사랑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태도를 가진 작가들이 김영하 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이 책에서는 이어령이 암이 전이되면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황에서도 이를 기록할 수 있는 작가로서의 행복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주조차도 쓴다면 그게 희망이군요!" "쓸 수 있다면…… 그렇네. '사람이 어떻게 끝나가는가'를 보고 기록하는 것이 내 삶의 마지막 갈증을 채우는 일이야. 내가 파고자 하는 최후의 우물이지. 암이 내 몸으로 번져가는 것을 관찰하면서 죽음에 직면하기로 한 것은 희망에 찬 결정이란 말일세."
이 경우는 시한부 선고라는 가장 안 좋은 상황에 처했다는 점에서 작가들이 가지는 긍정적 태도를 극적으로 부각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죽음에 대해 초탈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마냥 덤덤한 태도를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에 기록이 제대로 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실제 위 책의 뒷부분에서 이어령은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들은 유명한 작가들이다. 자신의 삶에서 경험했던 안 좋은 일에 대해 써내면서 사람들의 관심도 많이 받고 책도 잘 팔렸기 때문에 저런 생각이 강화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글쓰기에 대한 진지한 애정 없이 저런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글쓰기에는 여러 가지 순기능이 있다고 하는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이 상황을 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한 줄기 빛을 제시한다는 것도 아주 큰 장점인 것 같다. 나야 가끔씩 한두 편씩 브런치에 쓰기 때문에 작가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이 작가들처럼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 상황을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지하여 버텨낼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싶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