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 없음」을 읽고
원래 이 책의 제목은 「NO RULES RULES」다.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No rules'를 주어로, rule을 동사로 보면 '규칙 없음이 세상을 지배한다.' 또는 '규칙 없음이 최고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어로 써 놓으면 기발한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우리말로 직역하면 세상을 지배한다느니 최고니 하는 말이 들어가는 바람에 왠지 모르게 없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책 제목을 「규칙 없음」에서 끊어서 적당히 호기심을 유발한 것이 더 훌륭한 번역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넷플릭스의 대표이사(CEO)인 리드 헤이스팅스와 INSEAD라는 경영대학원의 교수인 에린 마이어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인 넷플릭스의 기업문화를 소개하는 책이다. 헤이스팅스는 각각의 문화적 요소를 도입한 배경과 효과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있고, 마이어는 학술적인 연구 결과나 직원 인터뷰를 분석한 내용 등을 통해 헤이스팅스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규칙 없음」에서 제시하는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는 크게 세 가지 요소로 정리할 수 있다. 바로 높은 인재 밀도, 솔직함, 통제 제거다. 높은 인재 밀도는 직원들의 능력과 연관된 요소로 인재 밀도를 구축하기 위해 비범한 능력을 가진 직원들을 채용하고 이들에게 최고 수준의 보수를 지급하는 한편 끊임없이 직원들이 맡은 자리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문화가 이에 해당한다. 솔직함은 직원들 간에 위계에 상관없이 항상 피드백을 주고받고 사내 모든 정보를 직원들에게 공유하는 문화다. 통제 제거는 말 그대로 휴가, 출장, 경비 규정과 같은 통제를 없애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별도의 상위직급자 승인 없이 각 직원이 책임감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는 문화까지를 포함한다.
내 업무 성과만 뛰어나다면 분명 꿈의 직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한 번 채용되기만 하면 성과가 뛰어나지 못해 해고를 당하더라도 퇴직금을 최대한 두둑하게 챙겨준다고 하니 더 그렇게 느껴진다. 물론 지금의 직장에 들어온 지 벌써 15년이 다 되어가는 내 입장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내 업무 성과만 뛰어나다면'이 얼마나 허망한 가정 인지도 알고 있고 이 책에서 소개된 기업 문화가 실제와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업무 성과는 내 능력, 동료와의 관계, 환경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정되는 것이며, 아무리 경영대학원 교수의 권위로 뒷받침했다고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넷플릭스 직원 중 내용에 공감을 표시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높은 인재 밀도, 솔직함, 통제 제거가 정말 넷플릭스 성공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는지도 확실하지는 않다. 작가 김영준이 「멀티팩터」라는 책에서 지적했듯이 운이나 당사자가 언급한 것과는 상관없는 요소가 실제 기업의 성공에 더 큰 도움이 된 경우도 많다. 이런 종류의 책에서 소개되는 각각의 요소가 기업의 성공에 도움이 되었다는 증거는 결과적으로 그 기업이 성공했다는 사실 뿐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이렇게 성공 사례를 분석한 내용을 너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게 「멀티팩터」의 주장이고, 「규칙 없음」을 읽을 때도 이 내용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무서움과 부러움이 교차했다. 일단 모든 직원이 끊임없이 암묵적으로 키퍼 테스트에 노출되어 있다는 데서 무서움을 느꼈다. 키퍼 테스트는 매니저들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져야 하는, 아래와 같은 질문이다.
팀원 중 한 사람이 내일 그만두겠다고 하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설득하겠는가. 아니면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사직서를 수리하겠는가? 후자라면 지금 당장 그에게 퇴직금을 주고 스타 플레이어를 찾아라. 어떻게 해서든지 지켜야 할 사람을 말이다.
경제학의 원리로 볼 때는 당연한 이야기이긴 한데 그 원리를 실제 주저 없이 실행하고 있다고 하니 뼛속까지 냉정함이 느껴졌다. 동료와 상사들이 항상 나를 저렇게 평가하고 있다면 내게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것 같다.
한편으로는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가 은근히 부러운 면도 있었다. 특히 솔직함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부분이 부럽게 느껴졌다. 아마도 상사의 생각을 헤아리는 독심술과 상사의 지시에 대한 복종이 최고의 덕목인 기업 문화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물론 자율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지만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정도의 책임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자율성이 주어지는 데 대한 정당한 대가로 보였다.
사실 조직의 특성에 따라 이러한 기업 문화가 필요한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 헤이스팅스도 책에서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조그마한 사고가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거나 규정에 맞게 업무를 해야 하는 기업에서는 넷플릭스의 문화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더 나은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해 생각해 볼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about.netflix.com/ko/news/the-next-wave-netflix-unveils-korean-line-up-for-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