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읽고
장기하라는 가수에 대한 나의 인상은 호감에 가깝다. ‘싸구려 커피’로 충격적인 데뷔를 했던 가수답게 그를 대표하는 곡들도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닌 특이한 소재를 재치 있는 가사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노래 제목이나 가사에 불필요한 영어 단어를 쓰지 않고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틀을 깨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한다는 점도 좋게 다가왔다. 최근에 발표한 ‘부럽지가 않어’라는 곡은 난해한 전위예술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런 그의 장점이 잘 드러난 곡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장기하의 첫 번째 산문집이다. 책은 너무나도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책에서는 음악을 하는 장기하 외에 생활인 장기하의 모습과 생각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의 생각이나 삶에 대한 태도가 나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는데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의 팬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예술가이고 나는 사실상 정반대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감성적인 측면에서 그와 내가 진지하게 교감하기는 힘들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 내가 그나마 안 맞는다고 느낀 지점이 라면 취향에 관한 꼭지였다는 점을 보면 이 정도면 꽤 취향과 생각이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책을 읽기 전에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재기 넘치는 음악인 장기하’의 모습을 책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깨알 같은 웃음이나 소소한 깨달음을 주는 부분은 곳곳에 있었지만 큰 웃음을 준다거나 무릎을 탁 칠 정도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렇게 지극히도 상식적으로 사고하고 글을 쓰는 음악인도 전위 예술에 가까운 수준의 음악을 창조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를 의도하고 일부러 담백하게 글을 쓴 것은 아니겠지만, 나 같은 범인에게도 충분히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대목이었다.
물론 이러한 나의 생각을 듣게 된다면 장기하는 아마 ‘그건 니 생각이고’를 부르기 시작할 것 같다. 아니면, 이 책의 제목처럼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고 대꾸할 수도 있겠다. 정말로 내가 그의 책을 읽고 내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든 말든 딱히 상관은 없을 것이다. 극도의 허무주의까지 가는 건 경계해야겠지만 내가 아등바등 노력하고 있는 일들도 결과적으로 상관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에, 항상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읊조리며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0090910190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