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짧은 역사』를 읽고
공룡은 아직 멸종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도 공룡들을 주변 공원과 음식점, 식료품 가게, 동물원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조류가 공룡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흔히 약 6,600만 년 전에 운석이 유카탄 반도에 충돌하면서 공룡을 비롯하여 많은 생물을 멸종시키고 중생대를 끝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룡의 일부였던 조류는 대재앙에서 용케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짧은 역사』의 6장 ‘초록 지구’ 부분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다. 사실 새가 공룡의 자손이라는 내용 자체는 다른 과학 책에서도 종종 언급된다. 그렇지만 이 책은 45억 년에 걸친 지구 역사의 주요 순간을 단 300쪽에 압축해 냈다는 점에서 특히 차별화된 책이다. 하버드대학교 자연사 교수로 40년 동안 연구와 강의를 했던 저자의 경력이 제대로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추천사를 쓴 작가 곽재식도 지적했듯이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과학적 사실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사실을 발견하는 데 사용된 과학적 방법론도 주의 깊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 소개된 방법론을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방사성 동위원소의 함유량을 이용하여 화석이나 지층의 연대를 측정하거나 원시 지구에서 아미노산이 형성되는 과정을 실험을 통해 재현하는 장면 등을 읽다 보면 이렇게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낸 학자들과 같은 인류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완결성 덕분인지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치 한 학기에 걸쳐 잘 짜인 강의를 수강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은 총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를 대표하는 내용을 제목으로 정했다. 각 장에는 공룡 생존설 말고도 약 24억 년 전까지는 지구의 대기에서 산소 농도가 매우 희박했다든지, 생명이 처음 출현할 당시 지구는 물로 뒤덮여 있고 육지는 거의 없었으며 수소 등의 기체들이 온천처럼 부글거리고 있었다든지 등 처음 들어보지만 신기한 내용이 가득하다. 사실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 덕분에 자연사박물관을 꽤 자주 다녀왔는데 자연사 박물관에서 배운 것보다 이 책을 통해 배운 지식이 훨씬 많은 것 같다.
현재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듯이 공룡도 한때 지구를 지배한 적이 있다. 공룡이 지구의 지배자였던 기간이 인간이 지배자였던 기간에 비해 훨씬 길지만 두 지배자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인간만이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마지막 장 ‘인간 지구’에서 이 사실을 강조하면서 우리 자신이 유발한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류가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담담하게 주장하고 있다. 결코 짧다고만 할 수는 없는 45억 년 지구 역사를 간결하고 우아하게 정리한 후 마지막 장에서는 효과적으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지성에 호소하는 내용을 포함시킨 이 책은 마무리에서도 깔끔하게 여운을 남기고 있다.
* 표지 사진 출처: Pearson Prentice Hall,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