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를 읽고
(이 글은 소설 『달까지 가자』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대학생 시절 금융시장과 관련된 전공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초반 3~4주 동안 주식시장의 기본 이론인 자본자산 가격결정 모형(CAPM, Capital Asset Pricing Model)을 배웠다. 담당 교수는 주식시장을 잘 설명하는 이론을 정말 찾기 어렵다며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보기에 주식시장에서 유일하게 통하는 이론은 장모님 이론이야. 장모님까지 주식 투자를 시작하면 그때는 주식시장에서 돈을 빼야 한다는 거지.” 물론 누군가의 장모님은 주식 투자 전문가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이론도 항상 맞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CAPM보다는 설명력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장류진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마론제과라는 회사의 비(非) 공채 출신 사무직으로 박봉에 시달리며 살아가던 주인공 세 명은 가상화폐 중 하나인 이더리움에 투자하게 되는데 다행히 이더리움 가격이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에서 이익 실현을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주인공 중 한 명인 정다해의 팀장이 은밀하게 정다해에게 묻는다. “다해씨, 혹시 가상화폐 할 줄 알아?” 대화를 마치자마자 정다해는 단체 채팅방에 ‘이제 엑싯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메시지를 올린다.
위 장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요즘 젊은것들’이 한탕을 노리고 고위험 고수익 자산인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에 나서는 이야기다. 책 제목인 ‘달까지 가자’ 자체가 가상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가격이 달에 도달할 정도로 끝없이 오르기를 바라는 일종의 주문이다.
첫 소설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을 통해 직장인들의 삶을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이 그려내면서 판교 리얼리즘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극찬을 받은 작가의 소설답게 이 책에서도 마론제과 사원 세 명의 고단한 직장생활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소설은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가상화폐 투자라는 아찔한 줄타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대학 입학 이후 하자 없는 방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지금은 방과 화장실 사이에 턱이 없어 샤워만 해도 방 전체가 물바다가 되는 집에서 살고 있는 정다해는 월세와 보증금을 높여 이사를 가기 위하여 가상화폐 시장에 발을 들인다.
이 소설의 결말은 세 주인공이 모두 높은 수준의 이익을 실현하는 전형적인 해피 엔딩이지만, 등장인물들의 후일담을 들려주면서 인생은 결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일단 달에 도착하기만 하면 태평하게 떡방아나 찧는 달토끼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달까지 가자'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3억 2천만 원을 벌어 전세를 구할 여유가 생겼으나 당분간은 회사를 계속 다니기로 한 정다해나 2억 4천만 원을 벌면서 대만 흑당 밀크티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김지송의 모습을 보면, 아무리 가상화폐 가격이 높게 올라도 투자자들의 인생에 지속적이고 영원한 변화가 생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들이 번 돈이 당장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미래에 새로운 선택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과연 이들이 그토록 희망했던, 지상낙원과도 같은 '달'이 실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게 된다. 운이 좋아서 달까지 도달하는 경험을 하게 되더라도 결국에는 다시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곳인 지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테라·루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공교롭게도 ‘루나(luna)'가 로마 신화에서 달의 여신이라는 점에서 이 사태가 달의 몰락 또는 달의 무용성을 상징하는 것 같아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소설 『달까지 가자』는 젊은 세대들이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가상화폐 투자를 은근히 장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발 딛고 살아야 할 곳은 달이 아닌 여기 지구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주지 시킨다는 점에서 사려 깊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10203/1052654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