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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Jan 06. 2023

만 나이가 어때서

얼마 전 아이와 놀아주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 친구는 어떻게 사귀는 줄 알아?"
"어떻게 사귀는데?"
"우선 나이를 물어보면 돼!"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는데 실제로 처음 만난 아이들과 같이 놀다가 너는 몇 살이냐며 나이를 묻고서 같은 여섯 살이라고 하면 너무나도 반가워하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기에 충분히 수긍이 갔다.


그러다가 생각이 다시 복잡해졌다. '나이를 세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렇게 연 단위로 세는 방식은 우리나라에서만 쓰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 주로 쓰는 만 나이로 하면 같은 연도에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나이가 똑같은 건 아니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나이가 같아야만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야.'라는 긴 문장이 머릿속에서 지나갔지만 이를 여섯 살 아이가 알아듣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물론 내 생각이 모두가 동의하는 보편적인 진리는 아니고 아이가 커가면서 스스로 깨닫는 내용도 있을 테니 애초에 지금 이해시킬 필요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내년 6월부터 모든 법률상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공식 나이를 만 나이로 규정하는 법률과 연 나이로 규정하는 법률이 모두 있었는데 공식 기준을 모두 만 나이로 일치시킨다는 것이다. 다만 법률에서 규정하는 나이가 만 나이가 되는 것일 뿐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나이를 법으로 규제할 수는 없을 테니 한국식으로 세는 나이가 당장 없어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만 나이 사용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주된 이유는 외국 생활 중에 꽤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구 국가에서는 서로 나이를 묻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해진 몇몇 대학원생들이 나이를 물을 때마다 몇 살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약간의 버퍼링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잠시 주저한 이유를 설명하다 보면 훌륭한 얘깃거리가 되긴 하지만 도대체 왜 우리나라에서만 이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중국 학생 한 명으로부터 예전에는 중국에서도 비슷한 나이(세는 나이)를 썼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마 근대 이전 중화문화권에 있던 관습이 중국에서는 사라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대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내가 만 나이를 찬성하는 이유가 다분히 사대주의적이며, 세는 나이에도 장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를 지켜야 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세는 나이를 계속 사용할 때의 이점이 그렇게까지 큰지는 의문이다.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성장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세는 나이가 같아 성장 정도가 비슷한 동갑 친구들끼리 친하게 어울리는 것이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서도 동갑만을 친구로 규정하는 분류 방식이 얼마나 생산적 일지는 잘 모르겠다. 한때 우애 좋은 친구 사이의 대명사였던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은 세는 나이로는 다섯 살 차이였던 걸 보면, 진정한 친구 사이에 '동갑'이라는 조건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한국식 세는 나이 제도는 같은 연도에 태어난 사람들끼리 항상 나이가 같은 상태로 유지되면서 그들끼리의 동질감은 높아지는 반면 다른 해에 태어난 사람들과는 형, 언니, 누나, 오빠와 동생 등으로 구분이 확실해지는 특징이 있다. 일단 세는 나이로 형(또는 언니, 누나, 오빠 등 손윗사람)과 동생으로 구분되면 형은 반말을, 동생은 존댓말을 쓰고 은연중에 동생이 형에게 더욱 예의를 갖춰 대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이는 존댓말과 반말 자체가 존댓말과 반말을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를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 때문에 세는 나이가 쉽게 없어지기 어렵다고 예측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나이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반말 또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거나, 사람들이 세는 나이 대신 만 나이를 쓰면 존댓말과 반말에 내재된 사회적 권력관계가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만 나이가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사용된다면 같은 연도에 태어나 예전에는 동갑으로 여겼던 친구들도 때에 따라 나이가 달라질 수도 있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나이가 같아야만 친구가 되고 반말을 쓸 수 있으며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존대를 받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조금이라도 옅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말문이 막힐 때마다 '너 몇 살인데?'라는 마법의 문장을 소환하는 뒤틀린 문화도 점차 자취를 감출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 2010년 1월 1일에 태어난 A와 2010년 2월 1일에 태어난 B는 2023년 1월 6일 현재 한국식 세는 나이로는 똑같이 열네 살이지만 만 나이로는 A는 13세, B는 12세이다. 2023년 2월 1일이 되는 순간 A와 B는 다시 똑같이 만 13세가 된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212081097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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