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인 케미스트리』와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고
그랬던 1961년, 매들린의 어머니이자 당시 서른 살이었던 엘리자베스 조트는 매일 아침 동트기 전에 일어났다. 잠에서 깨어나 또렷하게 드는 생각은 오로지 단 하나뿐이었다.
내 인생은 끝났어.
『레슨 인 케미스트리』의 첫 페이지에는 '내 인생은 끝났다'라고 믿고 있는 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의 모습이 등장한다. 참으로 우울한 시작인데, 이후 소설은 뜻밖에도 경쾌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엘리자베스와 그의 남자친구인 캘빈 해리스의 불행한 과거가 자주 등장하고 엘리자베스가 여성 과학자 그리고 미혼모로서 견뎌야 했던 사회적 편견이 끊임없이 묘사되기 때문에 마냥 즐거운 분위기의 책은 아니다. '1950년대 미국에서 여성들이 받았던 대접이 정말 저 정도밖에 안 됐다고?'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매사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엘리자베스와 악랄하게 엘리자베스를 괴롭히지만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은 빠진 듯한 상태로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너무 재미있게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화학 박사과정을 밟을 기회를 빼앗겼지만, 헤이스팅스 연구소의 다른 박사 연구원들보다도 훨씬 뛰어난 연구 성과를 올린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엘리자베스를 얕보고 쫓아낼 궁리만 하던 다른 무능한 연구원들이 막상 그가 연구소를 그만두자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정기적으로 상담료를 내면서까지 만나러 올 만큼 훌륭한 학자였다. 또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면서 상대가 오히려 자멸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외모 면에서도 매력적이고, 우연히 출연하게 된 TV 요리 프로그램에서 요리하는 과정을 화학으로 풀어내고 평소 여성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한다.
엘리자베스의 선한 영향력이 여성들을 감화시키는 모습은 물론 보기 좋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매력적이고 능력도 뛰어난 슈퍼우먼 같은 사람이 여성에 대한 차별은 부당하며 여성들도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만 그나마 그 주장이 통할 수 있는 건가 싶어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마치 피나는 노력과 뛰어난 능력으로 차별을 극복해 본 사람만이 차별을 없애자는 주장을 할 자격이 있는 것처럼 비쳐 소설의 결론이 통쾌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후천적 청각장애인인 소설가 김초엽과 휠체어를 타는 작가 겸 변호사 김원영이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라는 책에도 엘리자베스와 비슷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암벽등반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절단했지만 로봇 다리를 장착하여 장애인으로서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미국 MIT 미디어랩의 휴 허(Hugh Herr) 교수다. 그는 과학기술을 통해 장애를 종식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TED 강연을 통해 유명해졌는데 아마 첨단 생체공학의 혜택을 입어 장애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MIT 교수라는 그의 입지가 대중들에게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갔을 것이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휴 허가 전하는 메시지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휴 허 뿐만 아니라 KT, 현대자동차 등 우리나라 기업들도 AI 음성 합성 기술, 웨어러블 로보틱스 등을 홍보하는 영상을 통해 장애인들이 희망을 얻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이러한 광고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은 좀 더 미묘하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기술'을 홍보하는 이 영상들은 장애와 기술에 대해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지워버린다.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실제로 이 기술을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어려움을 맞닥뜨리는지, 이 기술이 정말로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인지와 같은 질문들 말이다. 사람들은 영상에서 장애인이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소리를 듣는 순간, 휠체어에서 일어서는 순간을 볼 뿐 평소에도 음성 합성 기술이 소통을 도와주는지, 처음으로 들은 소리가 정말로 기쁨인지 아니면 불쾌함인지, 웨어러블 로봇이 일상에서도 사람들을 걷게 하는지는 볼 수 없다. 연출된 영상은 감동과 희망을 보여주지만, 현실은 연출 바깥에 있다.
실제로 청각장애인인 김초엽도 당장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더 잘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최첨단 보청기나 의료기술이 아니라 당장 활용 가능한 문자통역이라고 썼다. 장애로 인해 불편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각 장애인들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현재 이용가능한 기술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처방하는 것이 미래의 위대한 기술 발전에 대한 약속보다 더욱 필요하다는 고백인 셈이다. 이는 장애를 극복해 본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들이 자신만의 장애 극복을 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민주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굳이 분야를 따지자면 학술서적과 에세이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장애인의 입장에서 사회와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접하게 되면서 긍정적 의미에서 많은 충격을 받을 수 있었다. 당장 책 제목에 언급된 '사이보그'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저자들은 기술에 의해 개조된 새로운 형태의 인간을 의미하기 때문에 보청기와 휠체어의 도움을 받는 자신들도 사이보그로 규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렇게 따지면 치아 임플란트를 하고 안경을 낀 나도 넓은 의미의 사이보그로 볼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관점 자체가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장애인들의 관점과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좀 더 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격 따위는 필요 없이 모든 사람들이 앞다투어 차별 철폐를 주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jmagazine.joins.com/economist/view/328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