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생각했다. 드디어 과학이 교양의 영역에 확실히 포함되는 시대가 왔다고. 대학 신입생 시절 『교양: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패기 넘치는 제목을 가진 책이 나왔던 사실이 기억난다. 굳이 사서 읽지는 않았는데 지금 이 책을 검색해 보니 역사, 문학, 철학 등에 대한 내용으로만 가득 차 있을 뿐, 과학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때만 해도 과학이 교양의 영역에서 당연히 제외되어 있었는데 어느덧 시대가 바뀌어 과학 지식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통해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었던 작가 유시민이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정체에 대해 과학 교양서는 분명 아니고 ‘과학을 소재로 한 인문학 잡담’ 정도가 맞겠다고 언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과학 지식은 다른 과학 교양서를 읽었을 때에 비해 결코 작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저자와 같은 문과 남자고 문과 남자의 입장에서 관심을 가졌을 법한 상황과 연관되는 과학 내용들이 책에 서술되다 보니 더욱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었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의외로 화학을 다룬 4장(단순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이었다. 뇌 과학이나 물리학, 생물학 등을 다루는 장은 다른 과학 팟캐스트나 책 등을 통해 들어본 내용(당연히 ‘아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이 많이 나와서 상대적으로 신선한 느낌이 덜했다. 하지만 4장에서는 원소 간의 결합, 주기율표 등에서부터 출발하여 환원주의에 대한 논쟁까지 많은 내용을 새롭게 접할 수 있었다.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의 자연이 이렇게까지 엄밀한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과학에서 환원주의 입장을 기본적으로 택하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수학을 주제로 한 6장(우주의 언어인가 천재들의 놀이인가)은 약간 아쉽게 느껴졌다. 서문에서 수학사를 전공한 저자의 부인이 이 책의 저술을 독려하였고 6장을 특별히 신경 써서 감수했다는 언급이 있어서 많이 기대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제목에 나타난 대로 수학을 우주의 현상을 설명하는 언어로 보는 관점과 아름다운 질서를 가진 독립적인 체계로 보는 관점 간의 대비가 주로 서술되어 있는데, 서론만 소개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않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성과라면 서문에서 저자가 의도한 대로 이 책에서 언급된 다른 과학 서적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다. 사실 『코스모스』는 겨우 다 읽었고 『이기적 유전자』는 읽다가 포기한 내 입장에서 볼 때 이렇게 쉽지 않은 책들을 읽고 어느 정도 내용을 소화하여 글까지 쓴 저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과학 서적들을 읽는 여정이 물론 험난하겠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과학 서적에 포함된 내용이 갖는 의미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만큼 조금이라도 독서가 수월해질 것으로 믿고 있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45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