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서울 편 4』를 읽고
‘아는 만큼 보인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서 처음 등장하였지만 이제는 전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쓰는 표현이다. 그만큼 이 시리즈의 영향력은 대단했고 나도 열광적인 추종자 중 한 명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어 교과서에서 1권인 『남도답사 일번지』를 처음으로 접한 후 우리나라 편은 한두 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찾아 읽었고,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학교 때 역사 관련 교양 수업을 대거 수강하기도 했다.
물론 한 분야가 속속들이 잘 보이려면 책 몇 권을 읽는 정도로 대충 알아서는 안 되고 그 분야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여 전공자 수준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인 유홍준 교수는 역사, 미술, 문화 등에 대한 지식이 넓고 깊기 때문에 어느 지역을 가든 보이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그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열심히 읽었다고 자부하였는데도 딱히 역사,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쌓이거나 시야가 확 넓어지는 경험을 하지는 못했다. 한때는 기억력 감퇴 탓을 한 적도 있지만 결국 책 몇 권을 읽은 것만으로 전문가 행세를 하려고 했던 나의 과욕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학술서적이 아니고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 소개하는 지역이나 문화유산의 모든 면을 백과사전처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저자가 어떤 내용을 선택하여 쓰는지가 책의 인상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게 소개된 내용을 읽다 보면 한 지역이나 문화유산을 관통하는 흐름이 어렴풋이 느껴지는데 이로부터 저자가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권은 네 번째 서울 편으로 ‘한양도성 밖 역사의 체취’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강북과 강남을 넘나들며 성북동, 선정릉, 봉은사, 겸재 정선 미술관과 허준 박물관,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을 소개하고 있다. 분량 면에서는 문인 및 예술인들의 고택과 집터가 모여 있는 성북동과 다수 역사문화 인물들의 묘가 자리 잡고 있는 망우리의 비중이 높지만 개인적으로는 선정릉과 겸재 정선 미술관, 허준 박물관에 더욱 관심이 갔다. 선정릉은 지하철역 이름으로만 접했는데 성종 부부와 중종의 능이라는 기본적인 사실과 함께 조선시대 왕릉의 구조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겸재 정선 미술관과 허준 박물관은 집에서 멀지 않아서 언젠가 아이와 함께 답사를 갈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사실 저자가 의도한 수준의 앎이 어쩌면 이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현실적으로 독자들이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정보를 숙지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짧은 에피소드나 지식 한두 소절만이라도 기억에 남는다면 문화유산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이 갖추어졌다고 보는 관점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을 때마다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스스로에게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번에 읽은 12권도 책에서 본 곳에 찾아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성공적인 독서였던 것 같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m.blog.naver.com/dvc90/220148573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