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한동안 서울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회사도 가서 노트북도 반납하고, 친했던 팀원들과 인사도 나누었고, 친구들도 만나 오랜만에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비록 두어 달의 짧은 이별들이었지만, 누군가의 성장, 아픔 등의 이야기들은 내가 떠나 있는 시간들을 체감하게 해 주었다.
서울에서 제주로 떠나기 전 친구들과 한잔 할 때, 가장 친한 친구 놈에게 정곡을 찔렸다.
사람들이 나는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사진을 찍고 있고, 글도 쓰고 있고, 뭐 이것저것 하고 있다.라고 답했지만, 사실 사진과 글을 쓴다는 것은 허울 좋은 포장지일 뿐, 여행지 가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사진 한 장 찍어드리겠다고 말 한마디 걸지 못하며, 말 한마디 못하는 이유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안 되는 이유부터 찾는 그런 겁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친구는 아직 내가 절박하지 않다며, 그렇게 살다가 망해버린다는 따끔한 충고도 함께 했다.
진정으로 나는 절박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제주로 돌아오고 다음날 아침 내게 일침을 가해준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진짜 제대로 해보라며, 오늘부터 촬영하고 인증하라며, 안 하면 (순화해서) 혼난다고 했다.
전화를 받고, 주섬 주섬 카메라를 챙겨 오설록 녹차 밭으로 향했다.
푸른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초록 녹차밭의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얼마간 전과 같이 방황을 하며, 어떤 사람을 찍어야 하나,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엄청나게 고민을 하다 또 합리화를 하려는 순간 머릿속에서 나는 이러면 진짜 패배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고개를 들어 살펴보았다.
저 멀리 젊은 부부가 이제 막 18개월 정도 된 아기를 안고 사진을 찍으려는 모습이 보였다.
'고민해선 안돼, 바로 행동해야 해. 무슨 말이라도 말을 걸자'
그렇게 쭈뼛쭈뼛 가서 '저기..'하고 운을 띄웠다.
"저는 제주에서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인데, 보기 좋아 보여서 괜찮으시면 제가 사진 한 장 담아드려도 될까요? 찍고 나서 사진은 제가 인스타로 전달드리도록 할게요"
사실 이렇게 제대로 말도 못 하고 횡설수설했던 것 같다.
잠시의 침묵은 세상 어느 때보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아이의 엄마가 좋다고 해주셨고, 그렇게 내 첫 번째 미션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첫 가족을 시작으로, 커플 두 커플까지 촬영에 성공했고, 그렇게 재도전의 첫날 세 팀을 촬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촬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보정을 끝낸 후 약속대로 사진을 전달한 뒤, 어떤 말이 나올지, 좋아할지 싫어할지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걱정이 되었고, 읽음 표시가 뜬 뒤에 한참이나 말이 없는 시간 동안엔 손바닥에서 땀까지 났다.
그리고 받은 메시지들.
감사의 메시지를 받고 나니 마음이 벅찼다.
처음이 어렵지, 정말 그다음부터는 편하게 말도 걸고, 멘트도 점점 부드러워지기도 했다.
스스로가 만든 벽을 부수었고, 첫 단계를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이러한 작은 성공들을 시작으로 큰 성공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이곳은 제주도다. 남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어떤 행동들도 들뜬 마음으로 이해해줄 수 있는.
난 조금씩 분명하게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