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승 강경빈 Jan 05. 2021

강아지는 겁쟁이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은 코코다. 이름은 하나지만 별명은 여러 개다. 멈머, 여우, 쩝쩝이, 겁쟁쓰. 귀여운 어감이 코코와 찰떡이라서 멈머. 


말을 알아들음에도 불구하고 간식이 없을 땐 말을 못 알아듣는 척해서 여우. 코코 장난감을 담아두는 바구니가 있다. 잠자기 전 구석구석 흩어진 장난감을 바구니에 담는 시간을 갖는다. 코코는 흩어진 장난감을 물어서 바구니에 담는 걸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냥은 안 한다. 


내가 장난감 바구니를 가리키며 공을 가져오라고 말하면 고개만 갸웃거린다. 간식이 등장할 타이밍이다. 냉장고에서 간식 봉지를 꺼내는 순간부터 코코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인다. 어떻게든 간식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공을 가져다가 바구니에 담기 시작한다. 공을 담을 때마다 간식이 하나씩 지급되기 때문이다.   


코코는 자면서 쩝쩝거리는 경우가 많다. 꿈에서 맛있는 거라도 먹는 것일까? 입이 꿈틀대며 쩝쩝거리는 소리가 귀여워서 생긴 별명 쩝쩝이.



겁이 많아 겁쟁쓰. 코코는 하수도 뚜껑, 촛불, 미러볼 그리고 병원을 무서워한다. 여태까지 산책하면서 하수도 뚜껑을 밟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옆으로 피해 가거나 피할 수 없으면 뛰어넘는다. 맨홀 뚜껑은 옆으로 피해 가고 창살처럼 생긴 네모난 뚜껑은 뛰어넘는 식이다. 하수도 뚜껑을 밟으면 큰일 나는 것 마냥 절대 밟지 않는다. 


몇 년 전 장인어른 생신날 처갓집에 모여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불을 다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하는 내내 코코가 보이질 않았다. 알고 보니 식탁 밑에 숨어있었다. 촛불이 무서워서 숨은 것이다. 그 후로도 코코는 촛불만 켜면 촛불과 최대한 먼 곳으로 몸을 피한다. 


코코가 미러볼을 무서워하는지는 최근에 알았다. 홈파티를 즐길 요량으로 준비해둔 미러볼을 켜자 코코는 자신의 집으로 숨어버렸다. 미러볼을 끄면 집에서 나오고 다시 켜면 또 집으로 숨었다. 미러볼에서 나오는 빛이 무서운가 보다. 


마지막으로 코코는 병원을 무서워한다. 병원 근처만 가면 어떻게 알았는지 안절부절못한다. 차를 타고 병원에 갈 때면 낑낑거리고 걸어서 병원에 갈 때면 병원 반대 반향으로 몸을 돌린다. 어제는 코코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고양이 약을 처방받으려고 병원에 갔다. 집 근처 공원에 길고양이가 산다. 길 위의 삶이 얼마나 고단할까 싶어 밥과 물을 챙겨준다. 어제도 밥을 챙겨 주는데 길고양이 항문이 벌겋게 부어올라있는 게 아닌가? 수의학적 지식이 없는 내가 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렇다고 길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진을 찍어서 병원을 갔다. 약간의 염증소견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약을 타 왔다. 


약을 짓는 내내 코코는 우리 부부 옆에 몸을 딱 붙이고서는 긴장하고 있었다. ‘코코 진료 보러 온 거 아니야’라는 말도 소용없었다. 그러다 병원을 나서는 순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기세 등등하게 꼬리를 촥 세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그렇다고 코코가 올타임 겁쟁이는 아니다. 용감해질 때도 있다. 음식 배달이나 택배가 왔을 때다. 낯선 이의 침입이라고 생각되는지 아니면 집을 지켜야 된다는 본능 때문인지 우렁찬 목청을 자랑한다. 물론 큰 소리로 짖는 상황을 그냥 두진 않는다. 별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진정시키기 바쁘다. 


산책할 때에도 코코가 용감해지는 순간이 있다. 뚱땅뚱땅 하는 걸음으로 앞서 나간 후 뒤를 돌아보며 ‘여기까지는 안전해 어서 와’라는 표정을 짓는다.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듯 겁쟁쓰와 용감쓰를 왔다가는 코코 덕분에 오늘도 우리 집은 온기가 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기른다 - 병원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