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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승 강경빈 Jan 02. 2020

방어가 방어했다

하루는 마트에 갔더니 방어회를 팔고 있었다. 11월에서 2월이 제철인 방어는 크기가 클수록 맛있다고 한다. 그래서 방어보다 대(大)방어 표현을 사용하나 보다. 겨울 한철에만 먹을 수 있다는 희소성에 발길을 멈춘 끝에는 방어머리가 있었다. 우럭 같은 작은 생선은 회를 뜨고 남는 머리로 매운탕 정도나 해 먹는데 웬만한 통우럭 보다 큰 방어머리는 구이, 조림, 탕까지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방어 머리 진짜 맛있어요~ 아는 사람은 머리만 먹어요"라는 직원의 멘트가 달팽이관을 통과하기도 전에 이미 '어두육미'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어두육미(魚頭肉尾) - 생선은 머리가 맛있고 고기는 꼬리가 맛있다



생선 머리는 먹을 게 없다. 마찬가지로 고기 꼬리도 먹을 게 없다. 그래서 나는 어두육미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소꼬리는 곰탕이나 끓여먹지만 살치살은 살살 녹는다. 츄릅

그런데 방어 머리는 달라 보였다. 일단 웬만한 생선보다 크기가 커서 살이 많았다. 호기심이 발동했고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집으로 가져갔다. 소금만 뿌리고 에어 프라이에 180도 20분씩 두 번 돌리면 된단다. 참고로 에어 프라이는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본 사람은 없다고 할 만큼 최고의 아이템이다.


에어프라이로 만든 방어 머리 구이는 소고기보다 맛있었다. 방어가 기름 많은 생선이라 그런 것 같다. 대게 기름 많은 재료를 에어 프라이에 돌리면 실패가 없었다. 경험에 의하면 통삼겹살은 맛있았고 돈가스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방어 머리가 얼마나 맛있었냐면 이틀 뒤 그 맛을 못 잊고 또 사러 올 정도로 맛있었다. 그게 오늘이다. 그런데 오늘은 구이가 아닌 지리탕을 끓여보았다. 물론 아내가 끓였다... 방어 머리로 끓인 지리탕 또한 예술이었다. 여태 먹었던 그 어떤 지리탕 보다 맛있었다. 지리는 지리

 

집 앞 마트에서는 이번 주 까지만 방어를 판매한다고 했다. 오늘이 목요일이니 금 토 일 3일 남은 것이다. 그래서 3일간 1일 1 방어머리를 하고 냉동실에 한 달은 보관할 수 있다고 하니 마지막 날은 냉동실에 들어갈 만큼 구입할 예정이다.


몇 년 전에 방어를 회로 먹어본 적은 있었는데 기대만큼의 맛은 아니었다. 그때 머리를 먹었어야 했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방어 머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어가 방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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