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시리즈를 씽큐베이션 선정 도서로 정했다고 말했을 때 한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400만 년 전 인류의 기원부터 2000년대까지 인류의 방대한 역사를 책 두 권에 담으려고 하니 깊이 있게 생각하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알아보는 것에 집중되어 있는 중학교 교과서 같은 책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일 수 있다. 역사 교과서 읽고 서평 쓰는 느낌이 딱 맞는 표현이다.
1주 차 선정도서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는 '연결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어찌어찌 서평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2주 차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는 어떤 주제로 서평을 쓰면 좋을지 감이 오질 않아 목차를 주욱 훑어보는데 '스페인 내란'이 눈에 들어왔고 그 순간이 유레카를 외친 순간이 되었다.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시리즈(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는 서평을 쓰기 어려운 책이 아니라 오히려 수십수백 가지 글을 쓸 수 있는 글감 창고였다.
소 제목 하나하나가 다 글감이다!
책 속의 수많은 목차 중에서 스페인 내란에 꽂힌 이유는 조지 오웰 때문이다. 1984는 출간된 지 7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큰 통찰력을 주는 작품이다. 1984뿐만 아니라 동물농장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러면 조지 오웰은 어떻게 동물농장이나 1984 같은 대작을 쓸 수 있었을까?
스페인 내란 당시 의용군으로 참전하며 겪은 전쟁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사유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의용군으로 참전한 스페인 내란을 조지 오웰의 관점으로 기록한 책이 바로 카탈로니아 찬가이다.
정리하자면 1984, 동물농장을 통해 조지 오웰의 팬이 되었고 다른 작품을 찾던 중 알게 된 카탈로니아 찬가는 픽션이 아닌 조지 오웰이 시각으로 쓴 스페인 내란에 관한 책으로 조지 오웰과 스페인 내란을 연결한 것이다.
「헤밍웨이(미), 앙드레 말로(프), 조지 오웰(영)등은 국제 의용군(53개 국에서 약 3만 5,000명)에 참가하여 인민전선 정부를 돕고 소련도 지원을 했지만 결국 1939년 인민전선 정부는 프랑코 군에 패했다. 스페인 내란은 영국, 프랑스 양국이 무력으로 나치스와 대항할 의지가 없음을 밝히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결속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조건을 갖추는 결과가 되었다. -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 中 」
사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읽기 어려운 책이었는데 그 이유는 역사적 배경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하룻밤에 읽는 근 현대 세계사에서 스페인 내란을 깊게 다루진 않았지만 스스로 배경지식을 찾아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스페인 내란과 빌리 브란트
훗날 독일 총리 자리에 오르는 빌리 브란트 또한 스페인 내전 당시 기자로 활동했다. 빌리 브란트는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가 싸놓은 똥을 치운 인물이다. 특히 히틀러의 나치당은 폴란드 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현재 독일은 유럽연합의 리더 역할을 할 정도로 잘 나가는 나라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독일 경제는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9개의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는 독일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상황과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독일은 과거사를 깨끗하게 청산하지 않고서는 나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독일의 과거사 청산은 1949년 프리츠 바우러 라는 독일계 유대인 변호사로부터 시작됐다. 전쟁에 직접 관여된 인물은 물론 나치가 운영하는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의복 관리자, 약제사, 의사 등으로 근무한 하급 관리들 조차 기소를 했고 이는 1930-40년대의 독일 나치가 어떤 짓을 했는지 1960년대의 독일인에게 폭로하는 행위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도 폴란드는 독일을 여전히 용서하지 않았고 나치를 혐오했는데 1970년 12월 7일 독일 총리의 신분으로 폴란드 바르바샤 게토를 찾은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국민들 앞에서 자진해서 무릎을 꿇고 히틀러의 만행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보고 있나 아베
스페인 내란과 조지 오웰
1931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한 스페인은 정치적 견해로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1936년 1월에는 인민 전선 내각이 성립하여 토지개혁과 교회의 특권 박탈 등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에 반대한 세력이 1936년 7월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필두로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이를 스페인 내란이라고 한다. 하지만 스페인 내란을 단순히 스페인만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무정부주의와 공산당, 온건파로 분열된 인민전선 정부와 왕당파, 자본가, 파시즘이 지원하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세력 간의 이데올로기와 이권다툼으로 인민전선 전부는 소련이 지원했고 프랑코는 히틀러가 지원했다. 스페인 내란에서 프랑크가 승리할 수 있던 이유에는 독일의 기술력도 한몫했다.
「그러나 소총 대부분은 고철이나 다름없었다. 사용되는 소총은 세 가지 종류였다. 첫 번째는 모제르 장총이었다. 20년 넘지 않은 것은 드물었다. 그 가늠쇠들은 너무 오래 써서 망가진 속도계나 다름없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강선(鋼線)이 가망 없을 정도로 부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열 자루 가운데 하나는 쓸 만했다. 이것 말고 짧은 모제르, 흔히 무스케톤 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원래 기병대의 무기였다. 이것이 긴 모제르보다는 인기가 좋았는데 들고 다니기가 가볍고 또 참호에서도 성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총은 거의 쓸모가 없었다..... 중략.. 가장 좋은 것은 독일제 총알이었지만 이것은 포로나 탈주병들에게서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흔치가 않았다. - 카탈로니아 찬가 中」
조지 오웰이 격은 스페인 내란은 흔히 전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사뭇 달랐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속 빗발치는 총알도, 뜨거운 전우애도 없었다. 군인들은 오합지졸이었고 전쟁물자는 부족했다.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후송되는 군인은 소지품을 도난당하기 일쑤였다. 군인들은 적과의 싸움보다 추위와의 싸움을 해야 했다.
사실 조지 오웰이 처음부터 전쟁에 참가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신문 기사를 쓸 생각으로 스페인에 간 오웰은 의용군에 들어가는 게 당시로써는 가치 있는 유일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의용군에 들어갔다. 당시 바르셀로나(카탈로니아)는 노동 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였고 평등사상에 매료되어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조지 오웰은 노동자 계급의 평등을 위해 스페인 내란에 참가한 것이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란을 겪으며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깊이 사유했던 것 같다. 그리고 스페인 내란의 경험은 동물농장과 1984라는 명작을 탄생시켰다.
스페인 내란과 프란시스코 프랑코
스페인 내란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은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스페인의 히틀러와 다름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1975년까지 독재정권을 유지했고 82세 나이로 사망했다. 독일이 최신 무기와 전술에 대한 실험장으로 이용한 게르니카 폭격으로 인해 당시 게르니카 인구의 1/3 이상이 사망했다. 당연히 사망자 가운데 민간인들도 많았다. 나치에 협력하던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전쟁이 연합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독일과의 동맹을 끊고 연합국 쪽으로 전향했기에 전후에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폭격 당시의 게르니카
게르니카 - 파블로 피카소
스페인 내란과 히틀러
스페인 내란은 제2차 세계 대전의 리허설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스페인 내란이 진행되던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개입하지 않은데 반해 독일과 이탈리아는 적극적으로 개입을 했는데 이때 히틀러는 영국과 프랑스가 나치에 대항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1938년 오스트리아 합병을 시작으로 1939년 9월에는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사실 히틀러를 제외한 나치 장군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뒤쳐진 경제와 군사력으론 영국과 프랑스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쟁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었던 장군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략을 내놓는 방법으로 전쟁을 피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전쟁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고 전격전이라고 불리는 전차를 앞세운 속도전으로 승기를 잡으려 했다.
「당시 영. 프 군이 110개 사단이었는데 비해 독일군은 29개 사단이라 간단히 전쟁을 벌일 수 없었던 것이다. 독일이 승리하려면 신군사기술을 이용한 '전격전'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군가 기갑부대를 결합시켜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과는 전혀 다른 기동 전쟁을 전개하게 되었다. -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 中 」
'만약에' 개전과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가 총력전을 펼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닌 독일의 반란(?) 정도로 끝났을까? 아니면 다른 어떤 형태로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을까?
'만약에'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까? 그러면 원자폭탄이 일본이 아닌 독일에 떨어졌을까?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책으로 조지 오웰의 의 카탈로니아 찬가배경지식을 공부할 수 있었던 것처럼 또 다른 역사적 배경지식이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