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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승 강경빈 Feb 03. 2020

요리하는 자, 지구를 지배하다.

우리가 최상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적, 사회적 기량 덕분이다.
-<사피엔스> 中


   


인간은 지구를 정복했다. 인간의 무기는 '언어'와 '허구를 믿는 능력' 그리고 '화식(火食)'이었다.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주었다는 이유로 코카서스 산 바위에 쇠사슬로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받게 된다.


현대사회에 불은 너무나도 흔하기에 중요성을 잊고 산다.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거려야만 공기의 소중함을 의식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주 먼 옛날 불을 다룰 수 있었기에 인간은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뇌'에 있는데, 인간의 뇌는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인간의 뇌' 3개의 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파충류의 뇌는 먹이를 찾고, 번식하고, 포식자로부터 도망을 치는, 생존과 연관된 일을 한다. 그보다 한 단계 진화한 '포유류의 뇌'는 감정과 관련이 많다. 그리고 가장 바깥쪽이 위치한 '인간의 뇌'는 언어, 기억, 학습, 추상적 사고 및 이성적 사고를 담당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큰 사회집단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인간의 비해 작은 뇌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영장류는 다른 동물에 비해 뇌가 크다. 뇌의 크기가 생존에 유리했다면 자연선택은 뇌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터인데. 왜 영장류는 인간만큼 커다란 뇌를 갖지 못했을까?  



뇌의 터무니없는 비 효율성 때문이다. 인간을 예외적인 동물로 만들어준 커다란 뇌는 에너지 효율면에서는 형편없었다.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가 100이라고 할 때 뇌가 소비하는 에너지는 20으로, 전체의 용적에서 2%의 비중을 차지하는 뇌가 소비하기엔 너무 비효율적인 양이다.


침팬지가 음식을 먹는데 투자하는 시간은 하루 6시간이다. 그래야만 하루에 필요한 에너지 1,800칼로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은 1시간 정도만 투자해도 하루에 필요한 에너지 2,000~2,500칼로리를 획득할 수 있다. 괴연 이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 답은 화식(火食)에 있었다. 초기 인류는 몸을 따뜻하게 하거나, 포식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불을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 때문인지, 실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닥불에 떨어진 음식은 먹기 편해졌을 뿐만 아니라, 맛도 좋아졌다. 화식(火食)의 시작이다.


모든 동물은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획득한다. 그리고 화식(火食)은 음식을 빠르게 소화하도록 해준다. 그뿐만이 아니라 소화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줄여주기 때문에 다른 곳에 에너지를 투자할 여력이 생긴다.



음식물을 빠르고 쉽게 소화시킬수록 대사에 드는 에너지가 작아지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 <요리 본능> 中



화식(火食)을 통해 인간은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에너지를 획득할 수 있었고, 밑 빠진 독이나 다를 바 없는 뇌를 먹어 살릴 수 있었다.

인간의 치아구조가 육식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채식 동물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일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는 화식(火食)을 통해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치아구조가 지금과 같아졌을 거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다.


인간은 불을 길들임으로써 무한한 잠재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독수리와 달리 인간은 불을 일으키는 장소와 시기를 선택할 수 있었으며, 수많은 용도로 불을 이용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불의 힘이 신체의 형태나 구조, 힘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이었다. 부싯돌이나 불붙은 막대기를 가진 여자 한 명이 몇 시간 만에 숲 전체를 태울 수도 있었다. 불을 길들이는 것은 앞으로 올 일에 대한 신호였다. - <사피엔스> 中



사피엔스 두 번째 읽었을 때 '허구를 믿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지구의 정복자로 만든 요인이라 생각했다. 인간은 허구를 믿는 능력을 바탕으로 종교를 만들었다. 종교는 수많은 사람들을 협력하게 만들어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했다.


종교뿐만이 아니다. 자본주의 또한 허구를 믿는 능력이 있었기에 탄생했다. 과거에는 부자가 되는 방법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유일했다. 파이가 한정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허구를 믿는 능력은 자본주의를 탄생시켰고 실제로 남의 것을 빼앗지 않아도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종교, 기업, 자본주의는 물론 이데올로기마저 허구를 믿는 능력으로 설명 가능하다. 자기 계발 또한 마찬가지로 허구를 믿는 능력 때문에 생겨났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높은 지능이 허구를 믿는 능력을 가능케 했다.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과 허구를 믿는 능력은 엄연히 다르나, '허구를 믿는 능력'이 궁금하다면 <사피엔스>를 읽어보길 바란다.


<사피엔스>를 세 번 읽었는데 여전히 재밌다. 여전히 새로운 통찰과 질문을 던진다. 주기적으로 한 번씩 읽어야 되는 책이다.

세 번째 읽는 사피엔스에서는 '허구를 믿는 능력은 어디에서 왔을까?'를 생각해 보게 됐다. 허구를 믿는 능력 바탕에는 높은 지능과 언어 능력이 있다. 그럼 높은 지능과 언어 능력은 어떻게 생겼을까? 외계인에게 초능력을 받은 둘리처럼 생긴 능력은 아닐 것이다. 화식(火食)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 사는 하빌리스가 수십만 년에 걸쳐 날음식을 먹고 있는 동안, 운 좋은 한 무리가 이렇게 직립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인류는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 <요리 본능> 中


화식(火食)을 시작한 인류는 언어와 허구를 믿는 능력을 바탕으로 지구를 정복해 나간다. 허구를 믿는 능력은 과거뿐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능력이다. 허구를 믿는 능력을 바탕으로 탄생한 농업혁명과 과학혁명은 인류 발전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혁명을 앞둔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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