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모기의 역사이기도 했다.
모기 매개 질병인 말라리아는 기원전 32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도 기록이 되어있다. 그러나 이것은 최초의 기록물일 뿐이다. 실제 모기와 말라리아는 공룡시대에도 존재했었다. 흔히 알려진 공룡 멸종의 이유는 소행성 충돌이다. 그러나 운석 충돌은 마지막 한방이었을 뿐, 충돌 당시 이미 공룡의 최대 70퍼센트는 멸종된 상태였는데 거대한 공룡을 멸종 직전으로 몰고 간 것은 다름 아닌 모기였다.
정확히는 플라스모디움(Plasmodium)이라는 원생생물, 즉 말라리아 원충 때문이다. 말라리아 원충은 모기를 통해 우리 몸에 침투해 말리리아를 일으키는 생물이다. 공룡이 말라리아에 속수무책이었던 이유는 대항할 수 있는 면역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행성 출동과 이로 인해 발생한 빙하기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남았다. 모기 또한 살아남았고 멸종한 공룡 대신 인간의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기에 대한 면역체계가 없어 멸종당한 공룡과는 달리 인간은 진화를 통해, 말라리아에 대한 면역력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더피 항원 음성자, 탈라세미아, G6PDD, 겸상적혈구, 길들이기 등은 말라리아에 대응하기 위한 진화적 적응 사례이다.
특히 만성적으로 말라리아에 시달리며, 말라리아 원충에 대한 내성이 조금씩 생겨나며 감염될 때마다 증상이 약화되고,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 가능성까지 낮춰주는 '길들이기'로 인해 인류의 역사는 곧 모기의 역사가 되었다.
8000년 전 아프리카 반투족은 농경지 확장을 이유로 코이산족, 마데족, 산족을 아프리카 남부 해안가로 몰아냈다. 반투족이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철기 무기와 더불어 말라리아에 대한 면역력 때문이었다.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희망봉을 거점으로 비교적 쉽게 아프리카를 정복해 나간다. 당시 희망봉 일대는 코이산족의 거주지였고, 네덜란드는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반면 후발주자로 뛰어든 영국은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한 반투족과 힘든 싸움을 해야 했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 티모시 C. 와인가드는 <모기>에서 동인도 회사가 희망봉에서 코이산족이 아닌, 반투족을 만났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모기를 단순히 여름철이면 찾아오는 불청객으로 취급해서 안된다. 모기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에 개입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존재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 유전자 기술에 이르기까지 모기는 늘 인간과 함께 했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라고 하지만, 모기와의 전쟁에선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말라리아를 극복하기 위한 유전적 진화는 미숙했다. 겸상적혈구 라고 불리는 유전적 진화는 적혈구에 말라리아 기생충이 달라붙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나 겸상적혈구는 말라리아에 대한 면역력은 획득할지 몰라도, 선천성 혈액질환을 야기해 젊은 나이에 죽을 수도 있다.
모기의 적응력은 인간의 과학기술을 보기 좋게 따돌렸다. DDT의 개발로 인류는 모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듯 보였다. 평균, 7년 모기가 DDT에 내성을 얻기까지 걸린 기간이다. 오히려 DDT로 인한 생태계 교란이 더 큰 문제가 되었다. 모기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수식어에 맞는 존재인 걸까?
티모시 C. 와인가드는 <모기>를 통해 역사적 사실 이면의 모기의 역할을 재조명했다. 이는 흥미로운 이야기일 뿐 아니라, 사소한 것들이 가진 사소하지 않은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