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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승 강경빈 Feb 23. 2020

편견을 깨고, 넓은 시야를 갖고 싶나요?



과거에는 평균수명이 짧았다. 60년 살기도 힘들었기에 회갑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60번째 생일을 기념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 옛말이다. 사람이 60년을 살기 어려웠던 게 생물학적 이유 때문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사람은 최대 120년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타고난 유전자와 습관 그리고 운의 3박자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나 가능한 최대치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건 생물학적 문제를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환경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백신의 개발과 공중보건의 발전으로 유아 사망률이 극적으로 감소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과거였다면 죽었을 병이나 사고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백신, 공중보건, 의료 모두 기술의 혜택 덕분이다. 기술은 환경을 통제했고 인간의 평균 수명을 늘려주었다. 





기술발전에 힘입어 어느 순간 100세 인생이라는 말이 거부감 없이 다가오기 시작했고, 죽음조차 기술적인 문제로 재정의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전히 기술은 쉼 없이 달리는 중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통해 기술만능주의에 대해 경고하는 한편,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힘이 센 아이가 힘을 잘못 사용한다면 깡패가 되겠지만, 올바른 곳에 사용한다면 운동선수가 될 수도 있다.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진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다 망해가던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도록 힘을 주었다. 그러나 독일은 기술을 잘못 사용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기술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을 살리기도 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기술을 이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을 발전시키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올바른 관념이다. 





기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개개인의 올바른 관심이 필요하다. 지식과 지혜가 바탕되었을 때 올바른 관심이 된다. 무식하게 목소리만 크게 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책을 통해 지식을 배우고, 삶에 적용해가며 지혜를 익힐 수 있다. 때로는 책을 통해 지식과 지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도 있다.



최근 읽은 루이즈 애런슨의 <나이듦에 관하여>에서 지식과 지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800페이지에 달하는 '벽돌 책'임에도 불구하고, 두께가 무색할 만큼 쉽게 읽힌다. '필력'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저자의 독특한 이력 때문일 수도 있다. 루이즈 애런슨은 캘리포니아 의과대학 교수이며, 아메리카 신인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작가이기도 하다.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윌슨 칼리지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나이듦에 관하여>를 읽는 내내, 루이즈 애런슨이 문예창작을 전공했다는 것과 더불어 그녀의 사려 깊은 생각이 필력의 원천인 것 같았다. 



현대 서양의학은 세분화, 전문화되어있다. 심장내과, 소화기내과, 흉부외과 등등 문제의 원인을 특정 장기에서 찾으려 한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의학의 세분화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표준화된 의료시스템에는 허점이 존재한다.



루이즈 애런슨은 인간에 대한 사려 깊은 관심과 함께
표준화된 의료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한다


<나이듦에 관하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노령의 아버지가 불면증이 생겼고, 딸은 아버지를 위해 의사의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수면제를 사 왔다. 믈론 구입에 앞서 부작용을 꼼꼼히 읽었다. 불면증에 약간의 효과는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앞이 안 보인다고 했는데, 실명의 원인은 처방전 없이 산 수면제에 있었다.





약은 독성이 있다. 그러나 간과 신장에서 해독이 되기 때문에 용법에 맞게 먹는다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젊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나이가 들면 장기의 기능도 저하된다. 젊은 사람이었다면 문제없었겠다만 노령의 아버지에겐 약의 독성이 신장부전을 일으켰고, 실명에 이르게 것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딸이 루이즈 애런슨을 만나기 전에 들렸던 병원의 의사에게 수면제 복용 사실을 말했는데 그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나이듦에 관하여>에 따르면 젊은 사람의 신체기능과 노인의 신체기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노인이라고 다 같은 노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의사가 24개월 아기와, 10살짜리 초등학생을 '애'로 퉁쳐서 같은 약을 처방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분별력 없는 의사도 없을뿐더러, 실제 그랬다가는 사회적인 이슈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65세 노인과 90세 노인 모두 '노인'으로 퉁치는 것에 대해선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루이즈 애런슨은 이 같은 현실이 잘못되었음을 경고하고, 표준화된 의료 시스템의 허점을 지적한다. 의료계 종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사실들을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인 내용이 아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약을 잘못 먹어 실명된 노인'의 사례를 남의 일로만 여길 수는 없다. 어쩌면 나의일이, 내 부모의 일이 될 수도 있다.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선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의료'기술'이 막연히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 거라 생각된다면,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는 말을 기억했으면 한다. 



나이듦에 관하여의 부제인듯한 '나이듦을 재정의하고 의료서비를 혁신하여 우리 삶을 재구상하다' 이 문장 속에 담긴 지혜가 궁금하다면, 그동안 노인에 대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웰빙(well being)을 넘어 웰다잉(well dying)을 꿈꾼다면 꼭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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