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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승 강경빈 Feb 24. 2020

역사를 통해 내가 배운 것  

관점의 전환과 빠른 적응력의 힘 



컵에 물이 반이나 있네?!


컵에 물이 반밖에 없네?! 


같은 사실을 두고도,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다양한 관점을 취하게 되면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물론 위기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묘안도 얻게 된다. 

독서를 통해 다양한 관점 취하기 연습이 가능한데 <모기> <물의 세계사> 두 권의 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관점을 알아보자. 









고대 그리스 vs 페르시아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 1세는 40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그리스로 쳐들어 간다. 이에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12만 5,000명의 연합군을 꾸려 맞서 싸우는데, 3배 이상의 병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가 승리한다그리스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테네의 장군 테미스토클래스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크게 승리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진 날 아침, 데미스토클레스는 후퇴 기동을 통해 페르시아의 선단이 살라미스 만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도록 유도한 다음 갑자기 방향을 선회한 후 혼란에 빠진 페르시아 선박들을 충각으로 들이받았다. 많은 페르시아 선박들이 침몰하는 와중에 뒤에서 쫒아오던 배들이 멈추지 못하고 계속 충돌했다. 

페르시아 선단의 거의 절반이 침몰한 반면 그리스 해군은 겨우 40척의 3단 노 군선만 잃었다. - <물의 세계사> 中


살라미스 해전은 그리스를 페르시아로부터 구했을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황금기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해군력을 바탕으로 바다의 강자가 된 그리스는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또한 살라미스 해전 당시 갤리선에서 활약했던 수많은 가난한 노수들의 투표권 획득과 함께 그들이 목소리를 높인 결과 아테네의 민주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살라미스 해전을 통해 그리스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앞서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해군력 하나만으로 3배 이상의 병력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학자 티모시 C 와인가드는 <모기>를 통해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전환점을 살라미스 해전과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밝히는데, 플라타이아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일등공신은 모기란다. 


페르시아 지상군은 늪지대를 횡단하면서 습지로 둘러싸인 수많은 그리스 도시를 포위 공격했고, 모기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불운한 외국인 병사들인 페르시아 군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페르시아 군을 덮친 말라리아와 이질은 무려 40퍼센트에 달하는 병사들을 집어삼켰다. 

마구잡이로 흩어진 페르시아 군은 기원전 479년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산산조각 났으며, 이로써 페르시아는 사실상 다시는 그리스를 넘볼 수 없게 되었다. - <모기> 中






로마 VS 카르타고 


로마는 포에니 전쟁을 통해  강대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1차 포에니 전쟁 당시 육상 국가였던 로마는 육상 국가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해군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로마는 해군을 양성했고 전쟁에 승리하게 된다. 그 결과 로마는 서부 지중해 최강의 해상 세력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얻은 전략적 이점으로 2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게 된다. 


전설적인 명장 한니발은 1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 아버지의 설움을 갚기 위해, 2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킨다. 병사 6만 명과 군마 1만 2,000 필 그리고 37마리의 전투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진격한다. 그리고는 10년 넘게 여러 지방을 휩쓸고 다니지만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코끼리 부대를 동반한 군대를 이끌고 스페인의 기지를 떠나 에브로 강을 건너 갈리아 지방으로 간 다음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해 들어갔다. 그러고는 10년 넘게 여러 지방을 휩쓸고 다니며 승전을 거듭했다. 그렇게 해서 로마의 지배에 대한 주민들의 봉기를 유발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결국 해상 보급이 막히자 한니발은 더 버티지 못했다.  - <물의 세계사> 中 


<물의 세계사>를 보면 포에니 전쟁의 일등 공신은 로마의 해군력이다. 로마의 강력한 해상 지배력이 없었다면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었을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바다를 통해 로마로 갈 수 없었기에 알프스를 넘을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거의 절반의 병사를 잃게 되었다. 





그렇다면 <모기>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한니발은 칸나이 전투에서는 승리하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하게 된다. 칸나이 전투에서 승리한 한니발이 수도 로마를 공격하는 것은 꺼려했기 때문이다. 한니발이 공격을 꺼려한 이유 중 하나는 모기 때문이다. 


한니발의 군대가 자리를 잡은 폰타노 습지는 연중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역이었고 말라리아로 인해 쇠약해진 그의 군대로는 로마를 점령할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 사이 로마의 장군 푸블리우스 스키피오는 병력을 꾸려 카르타고로 진격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한니발은 이탈리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모기가 카르타고 병사들은 물론 천재적인 사령관의 건강과 사기까지 빨아먹은 것이다. 말라리아에 감염된 한니발은 심한 고열을 앓은 끝에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했으며, 그에 앞서 스페인인 아내와 아들까지 같은 질병으로 떠나보냈다. - <모기> 中



알프스를 넘던, 바닷길을 이용하든 간에 폰티노 습지를 극복할 수 없었기에 한니발은 패배할 수밖에 없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말라리아로 악명 높은 폰티노 습지를 매립할 계획은 2세기 초부터 있었다고 한다. 농지 확보가 목적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습지가 매립되면 모기의 개체수 또한 감소될 터였다. 그러나 결국 폰티노 습지 매립은 2,000년이 흐른 뒤에야 베니토 무솔리니에 의해 실현된다.






영국 VS 스페인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시작된 대항해시대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큰 부를 벌어들이자, 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바다로 나아갔다. 영국(잉글랜드)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눈에 띈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1577년부터 1580년까지 세계일주에 나선다. 잉글랜드에서 출항한 드레이크는 스페인 보물선과 식민지를 약탈하며 1조 2,000억 원 상당의 전리품을 쓸어 모았다. 이로 인해 잉글랜드와 스페인의 돌이킬 없는 군사충돌이 발생한다. 


잉글랜드와 스페인 무적함대 사이의 전투는 간단히 말해서, 서구 문명의 미래를 향해 경쟁하는 두 개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경향 간의 싸움이라 할 만했다.  - <물의 세계사> 中  


드레이크는 1586년 봄 플로리다 세인트 오거스틴의 취약한 스페인령 식민지를 약탈하면서 지역 토착 원주민 티무쿠아족에게 유행성 말라리아를 전파했다. - <모기> 中





<모기> <물의 세계사> 모두 드레이크가 등장한다. <모기>에서는 드레이크가 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령 식민지에 말라리아를 전파했고, 드레이크 본인 또한 말라리아 때문에 식민지 개척에 실패한 내용들로 이루어진다. 반면 <물의 세계사>에서는 영국의 해군력에 주목한다. 스페인이 영국을 침공하려는 계획을 알게 된 드레이크가 30척의 배를 이끌고 스페인 선박에 기습공격을 감행해, 스페인의 침공을 1년이나 지연시킨 내용이 등장한다. 


영국 해군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다. 스페인을 물리친 영국은 프랑스와의 7년 전쟁에서도 승리한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영국도 미국에 발목을 잡히게 된다.






영국 VS 미국 


독립전쟁 중 벌어진 세 번의 결정적 전투는 모두 전략적으로 중요한 물길을 지배한 자에게 승리가 돌아갔다. 1776년 크리스마스에 워싱턴이 델라웨어 강을 가로질러 트렌턴에 있는 영국군 요새를 급습한 것이다. 영국이 허드슨 강 사수에 실패한 이후 1777년 10월 17일 버고인이 새러토가에서 식민지 군에 항복한 것, 프랑스와 아메리카 연합군이 영국군의 보습선과 퇴로를 끊고 나서 4년이 지난 뒤 콘윌리스가 체서피크 만의 요크타운에서 최종 항복한 것이 모두 이를 보여준다. - <물의 세계사> 中  


질병에 길들이지 않았으며 퀴닌도 부족했던 영국군은 1780년 전략적 항구도시이자 모기의 성역이었던 찰스턴을 점령하면서 남부전선을 공격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아메리카 합중국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 <모기> 中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이 부족한 영국군이 모기로 단련된 미국 군대를 이길 수 없었다는 게 <모기>의 내용이다. 반면 <물의 세계사>에서는 미국이 물길을 전략적으로 잘 사용했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겼다고 이야기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다만 어떤 관점을 취했느냐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질 뿐이다. 








역사 앞에서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었다. 페르시아를 상대로 승리한 그리스는 영원하지 않았다. 그리스는 지는 해가 되었고, 마케도니아가 승자의 왕관을 차지했다. 그리스를 제치고, 강자로 떠오른 마케도니아 또한 흥망성쇠를 겪었다. 왕관을 이어받은 로마는 기마민족에 의해 멸망했다. 콜럼버스로 인해 나가던 스페인은 네덜란드와 영국에게 패했고, 영국은 미국에 패배했다. 


역사는 '강한 자가 살아남기보다는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를 여실히 증명한다.  <물의 세계사> <모기> 각각의 관점을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보다 빠른 적응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빠른 적응력으로 살아남고 싶다면, 다양한 관점을 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양한 관점 취하기를 통해 가능한 남들이 하지 못한 생각, 남들과는 다른 접근은 빠른 적응력과 일맥상통한다. 




살아남은 종은 강한종이 아니고, 똑똑한 종도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다. -  찰스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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