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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Nov 02. 2016

#43까미노데산티아고-괜찮아, 괜찮지 않아

산마르틴델까미노-아스토르가

이틀동안 비를 뿌린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졌다. 그리고 이틀전과 다르지 않게 다리는 점점 아파왔다. 


새벽이 밝기가 무섭게 그날의 길을 시작했고, 출발하자마자 A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따라잡으려 조금 멀어지면 잠시 쉬었다 가자고 붙잡기도 하고, 기를 쓰고 빨리 걷기도 했지만 점점 다시 왼쪽 정강이가 아파와 따라갈 수 없었다. 

다리가 아팠던 건 5일 전 부터인데 항상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맨소래담만 바르고 걷기만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따라가도 A와 간격은 점점 멀어졌다. 더 멀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불러세우고 오늘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 날은 첫 마을에서 25.6Km떨어진 도시인 아스토르가까지 가 쉬겠단다. 그 정도는 따라갈 수 있을 것 같고, 항상 마을 첫 알베르게에서 머무는 패턴도 알고있고, 혹시나 있는지 없는지 접수대에 물어보면 되니 또 만날 수 있겠지 싶었다.  

열발짝쯤 앞서나가던 A가 쑥쑥 앞질러나가 점점 작아졌다. 처음 열발짝쯤 떨어져 있을 땐 내가 맘만 먹으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따라잡으려면 쉽지않고 간격만 점차 멀어진다.  

점점 작아지던 A의 뒷모습은 어느새 소실점과 함께 사라졌다. 

요 며칠 이어졌던 비슷한 패턴이다. 서운해 하지도 말고, 조바심을 내지도 말아야지. 그리고 천천히, 아프면 자주 쉬면서 걸어야지.  


그런데 이 날은 천천히 걸으면 걸을수록, 자주 쉬면 쉴수록 점점 더 정강이가 아파왔다. 내가 느릿느릿 걷는 사이 전날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던 사람들이 주변에 나타나 하나둘씩 나를 앞질러 나갔다. 아마도 그들이 모두 내 앞을 지나쳤는지 잠시 한산해졌던 길에는 어제 보지 못했던 외국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또다시 내 앞을 앞질러나가기 시작했다.  

내 앞을 지나치는 그들은 마치 매뉴얼마냥 다들 같았다. 먼저 '부엔까미노'하고 인사하며 옆에 나타나, 절뚝거리며 걷는 나를 보며 다리가 아파보인다고 괜찮느냐고 물었다. 

평소 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 중 하나였다. 특히 힘든 상황에서는 더 그랬다. 누군가 나를 걱정하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다른 사람들에게 약해보이는 것도 싫었다. 

만약 보통의 내게 누군가 “Are you OK?”라고 물었더라면 대부분의 경우는 아파도 괜찮다고 대답했겠지만 이날은 달랐다. 너무 아프고 정말 힘들었다.  

괜찮지 않아. 너무 힘들고 아파.

그러면 그들은 잠깐 속도를 늦춰 걸으며 내 다리를 걱정해줬지만 이들도 나도 알고 있었다. 중간에 마을도 없이 이어진 16.5Km의 구간에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참고 다음 마을까지 걸어가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괜찮지 않아.'라는 말은 의외로 괜찮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주는 것은 내 곁을 스쳐가는 스무걸음가량 뿐이었다. 속도를 늦춰 같이 걷던 그들은 행운을 빌어주고는 다시 자기 속도로 갈 길을 갔다. 그들이 남기는 '힘내', '조금만 더 참아' 하는 입에 발린 말은 응원처럼 들리기도 했다. 매일 같이 징징거리는 건 나도 사절이지만, 뭐 이정도쯤 사람들에게 힘들어, 아파하는 푸념쯤은 괜찮지 않을까. 


중간에 어떤 할아버지 순례자 한 분을 만났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리가 아파보인다고 걱정해주던 그는 다음 알베르게에 가면 마사지를 하고 약을 바르라며 신신당부했다. 친절하게 한참 조언을 해주던 할아버지는 못내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함께 걸을까? 혼자 걸을래?” 하고 내게 물었다. 고맙지만 혼자 걷겠다고 했더니 역시 속도를 내 걸어가며 걱정스럽다는 듯이 몇 번을 돌아봤다.  



이제 한계까지 왔다고 느꼈을 때쯤 저 멀리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절뚝거리며 도시 입구에 들어서고도 한참을 더 걸어들어가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하자 더 헤맬 필요도 없이, 마침 접수대 근처에서 와이파이를 하고 있던 A가 나를 맞았다. 

접수대의 직원에게 나는 쟤와 친구라며 같은 방에 들어가겠다고 해서 얻은 10인 도미토리 입구에서 어제 알베르게에서 봤던 서양인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제 묵었던 알베르게는 둘 빼고 모두 한국인이었다며(정확히는 중국인 2명과 한국계미국인1명도 있었지만 얘가 보기엔 다 한국인같아 보였겠지) 수다를 떨다 나를 보고는 눈인사를 해줬다. 방으로 배낭을 풀러 들어가보니 이 방에 묵는 사람들은 다 조금 전 나를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이다.  모두들 나를 보자마자 이제 다리는 어떻냐고 관심을 보인다. 제대로 시선집중, 살짝 민망해 '하하하, 이젠 괜찮아. 이젠 배낭도 풀었는걸.' 하며 대꾸하고는 황급히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짐을 풀고 씻고 근처에 나가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테니스중계경기도 보고 장도 보고 근처 관광도 하러 나왔다. 오랜만에 날이 깨끗하니 둘 다 기분이 좋아 평화로운 오후를 보냈다. 아마 요 며칠 사이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던 듯 싶었다.  


즐겁게 관광을 마치고 돌아와 접수대 앞에서 와이파이를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A가 말한다.  우리가 늘 만나던 한국인 무리가 베드벅에 물렸다고 한다. 지나치다 만나면 말이라도 살갑게 몇마디 붙이려 노력하는 나와는 달리, 안 어울리는 듯 싶으면서 의외로 그런 소식은 또 나보다 먼저 알고 있는게 신기하다.  

베드벅은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이게 아마 빈대라든가, 아무튼 한국에선 듣도 보도 못한 벌레인데 이게 참 독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까미노를 걸으며 베드벅에 물리는 사람들이 허다하고 이 독한 벌레들은 생존 번식력이 뛰어난 데다 사람의 의류나 배낭등에 달라붙어 다음 알베르게의 침대로 전파되는 일이 많다고 했다. 이 때문에 알베르게에서는 침구를 제공하지 않는데가 많아 침낭을 가지고 다니며 자야하는 거라고 들었었다. 이와 더불어 베드벅에 물리면 엄청나게 가렵고 부어올라 힘들다라는 정도가 베드벅에 대한 지식의 전부인 나는, 베드벅이 있는 나라에서 살다와선지 그동안 지나칠 정도로 베드벅을 조심하던, A에게 베드벅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물었다.  

그냥 가볍게 물었을 뿐인데 A는 갑자기 검색을 시작해 사진을 보여주며 베드벅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 베드벅의 생김새, 서식지, 물린자국, 물렸을 때 대처방법에 대해 읊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이어지던 베드벅 강의의 결론은 베드벅 물린 사람들의 패브릭제품 근처에는 가지 말라는 경고로 끝났다. 얘가 깔끔떠는 거야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베드벅 강의를 들으니 내가 물리는 순간 그대로 나를 버리고 갈 애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평생을 못보게 될 지도.  

내가 베드벅에 물리지 않아 참 다행이라며 안도하고 한참 둘이 수다를 떨다 우연히 발목을 봤는데 왼쪽다리가 오른쪽에 비해 1.5배 부어있었다. 다리가 아프긴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었다. 

다리를 본 내가 순간적으로 ‘헉’하고 소리를 내는 바람에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게 된 A의 표정이 굳어졌다. 보자마자 네가 그렇게까지 아픈 줄은 몰랐다며, 대체 이런 다리로 왜 무리해서 온거냐며, 여기서 쉬라는 케케묵은 레온의 논쟁을 다시 시작했다. 

물론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도 이렇게 된 줄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보다 아프지 않다. 천천히 걸으면 계속 걸을 수 있으니 내일도 걷겠다고 또 고집을 부렸다. 거기서 서로 더 가네 못가네를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늘 보던 한국인 무리와 어제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한국인 세명이 와인과 맥주를 사와, 나와 A를 초대했다. 어찌됐든 나는 걸어갈 것이라고 못 박은 뒤 그쪽 방으로 갔다. 

자기는 들어가서 자겠다고 거절하고 내게 패브릭 제품을 조심하라고 나지막히 충고를 한 후 방으로 돌아갔던 A는 곧, 무리의 막내에 이끌려 술 마시는 곳에 합류했다. 베드벅도 싫어하고 술도 안 마시는 A로서는 참 의외의 선택이었다. 


한참을 함께 어울려 잘 놀고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하루종일 즐겁게 놀 때는 잘 몰랐지만 부은 왼쪽 발목과 정강이가 누워있어도 욱신욱신 쑤셨다. 가지말라는 사람이 있으니 반발해, 갈 수 있다며 고집은 부려놨지만 덜컥 걱정이 됐다. 맨소래담을 평소보다 더 듬뿍 바르며 과연 이 다리로 계속 걸을 수 있을까, A를 쫓아갈 수 있는 걸까 고민했다.  


내일은 어쨌든 내일의 해가 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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