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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Nov 04. 2016

#44까미노데산티아고-안녕, 고마웠어

-아스토르가-라바날델까미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왼쪽 다리를 살폈지만 1.5배 부어있던 다리는 그닥 나아지지 않았다. 간밤의 마사지와 걱정을 가득담은 기원은 아무 효과가 없었던가보다. 하긴 맨소래담 몇 번으로 해결될 일이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겠지.  

옆자리 침대의, 전날 걸을 때 함께 걸을까를 물어보며 잠시 스쳐갔던, 친절한 할아버지가 짐을 꾸리며 다리가 괜찮은지 물어보고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근육통연고를 발라주고 마사지해줬다. 그 사이 짐을 이미 챙긴 A는 아무 말 없이 약을 바르고 발목보호대를 차는 나를 계속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을 모르는 체 하고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다며 A에게 말했다.  

전에 우리가 헤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릴리고스에서 강제소환당해 만나며 반갑지 않았느냐고, 레온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나는 너와 산티아고까지 함께 가고 싶다고, 그래도 내키지 않는다면 마지막으로 이틀만 더 같이 걷자고, 그 다음에도 발목에 부기가 빠지지 않는다면 그땐 정말로 남아 하루 더 쉬겠다고. 굉장히 불쌍한 얼굴로 사정하고 있으니 A, 귀찮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버리고 가진 않으니 다행이라며 다시 짐을 챙기려는데 저쪽 2층 침대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레온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는, 어쩌다보니 연 이틀을 저녁시간을 함께 했던 신부지망생 신학도였다. 이 방엔 우리 외엔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며 최대한 자존심 버리고 불쌍하게 사정하던 걸 들었구나 싶어 민망했다. 민망함은 이어졌지만 어찌됐든 버림받지 않았으니 다행인 걸까.  



그렇게 출발한 길. 시작하자마자 속도를 못내고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속도를 내서 먼저 걸어갔을 A였는데 의외로 속도를 맞춰 천천히 걸어준다. 그리고 조금 걸으면 먼저 쉬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A를 만난 지 20여일이 다 돼가는 기간동안 이 친구가 이런 방식의 친절을 베풀어 본 일이 없어 얘가 왜 이러나를 살짝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역시나였다. A가 말을 시작했다.   

우리가 이렇게 헤어지는게 끝이 아니라고, 자신이 천천히 걷는다면 곧 다시 만날 수 있고, 혹시 먼저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되더라도 며칠 쉴 예정이니 그때 만나도 된다고, 그것도 안되면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들를 나라가 한국이니 거기서 만나도 된다고, 우리는 이메일도 휴대폰 메시지도 주고받을 수 있으니 이것이 완전히 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국어 실력을 활용해 이게 끝이 아니라며 길게도 달래는 A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 더 이상 A를 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었구나. 

한참을 듣고 있다 말했다. 다음 마을에서 바에 들러 커피를 마시자고.  

마지막으로 커피 한 잔쯤은 해줘야지

라고 중얼거리는 내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그때부터 다시 A는 다음 바에서 만나자며 속도를 내 걸어갔다. 다음 마을까지 걸어가며 계속 생각했다. 아침에 얘기했던 것처럼 이틀만 더 무리를 해서 따라가겠다며 또 고집을 부려볼까. 원래 고집부리는 건 내 전문인데. 내가 고집을 부린다면 A도 어쩔수 없이 들어주긴 할텐데.  

그렇지만 그동안 강하게 타오르던 고집도 더 이상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강하게 제지할수록 타오르던 의지도, 달래며 이야기하니 사그라들었다. 이렇게 따라갈 수 없는 몸으로 매달릴수록 서로에게 마지막이 나쁘게 기억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A를 따라가기엔 정강이가 너무 아팠고 발목은 심각할 정도로 부어있었다. 전에 모스크바가는 열차 안에서 다쳤던 오른 발목이 부었을 때보다 상황은 더 심각했다.   


다음 마을의 바에 들어서니 늘 보던 한국인 무리와 A가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한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A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 조금만 걸을래. 나중에 이 길에서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자.
그리고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어서 미리 말하는 건데, 그동안 같이 걸어줘서 고마웠어. 

네가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려 줄까를 묻는 A에게 그럴 필요없다고 먼저 걸어가라 했다. 그동안 나도 고마웠다고 말하던 A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더니 주먹을 내밀었다. 서로 주먹과 주먹을 가볍게 부딪치며 인사하고는, 마치 회사 차장님이 단체워크숍으로 등산 가서 산정상에서 외치는 것 마냥 “할 수 있다. 파이팅!”하고는 내가 그 농담에 피식 웃는 사이에 가버렸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아마 이제는 A를 만나지 못할 거야. 부르고스에서 J와 헤어진 다음에 만나지 못했던 것처럼. 이젠 정말 혼자가 돼버렸구나. 전에도 함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모두 보이지 않아 온 우주에 혼자만 남아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때처럼.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커피를 마셨다. 내 옆에 있던 한국인 무리들도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잘 가시라고 억지로 웃는 얼굴을 만들어 배웅하던 내가 걸렸는지 그 무리 중 한 언니가 다리가 아파 자신도 천천히 걸으려 했었다며 함께 걷자고 남아줬다. 덕분에 남은 11Km를 울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내 우울한 기분탓이었을까. 하늘은 또 꾸물꾸물 흐렸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길을 걸으며 내가 이 길을 걸으며 만났던 사람들과, 함께 걸어준 언니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정말 힘들었던 순간에 옆에 있어줬고, 필요하다고 생각한 순간에 마법처럼 나타났던 사람과 도움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괴롭고 힘들 때면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도움을 줘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는, 뻔하지만 이 길의 누구나 겪은 동화같은 이야기였다.  

걷는 사이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마침 만난 까미노 표식에도 무지개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여전히 흐리고 비가 오지만 그 사이에 이렇게 만난 무지개들처럼 예쁜 일도 있으니 됐다 싶었다. 우울하고 외로운 날엔 그런 작은 도움도 작은 표식도 큰 도움이 되는 법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작은 긍정에 큰의미를 붙여 지금까지 걸어왔었다. 어찌됐든, 어떻게든, 지금처럼 걸어 산티아고에는 도착할거다. 이 안에서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있어도 다들 어찌됐든 산티아고로 걷는 거니까, 생각이야 다 다르지만 어디선가 또 만날테니까, 생각하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20Km를 걸은 후 라바날 델 까미노에 도착했다. 함께 걸어준 언니는 일행을 만나기 위해 5.6Km를 더 걸어 폰세바돈까지 간다고 했다.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헤어져 알베르게에 들어섰다.  

시간이 일러서인지 알베르게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들어가 씻고 빨래하자마자 피로가 몰려들었다. 침낭을 깔고 누웠는데 참고 있던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다 지쳐 오랫동안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보니 알베르게엔 사람들이 꽉 차있었고 비가 제법 심하게 내리는 지 천장 위로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컸다.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만큼이나 현실감이 없었다. 침낭안에 누운 채로 사람들이 오가고 떠드는 모습을 바라봤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다시 외로워졌다. 

얼른 나아서 빨리 걸어가야지. 내일도 열심히 걸어야 하니 약을 바르고, 물통에 찬물을 받아와 열심히 냉찜질을 했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밥을 권하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끼어 밥도 짜파게티도 얻어먹었다. 낮잠을 오래 잤는데도 잠이 쏟아져 저녁 일찍 잠들었다.  


이제 다리야 어찌됐든 얼른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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