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까미노데산티아고-한 봉지의 친절

레온-산마르틴델까미노

by 호빵씨

레온을 떠나는 날 아침. 저녁부터 징그럽게 내리던 비는 이날도 멈출 줄 몰랐다. 알베르게에서 제공해주는 아침을 먹으러 나온 A는 나만큼이나 비가 지긋지긋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잔뜩 지푸린 표정으로 밥을 먹고있는 A에게 말했다.

난 오늘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같이 가자.

안 그래도 말없이 밥만 먹고 있던 이 친구, 얼굴 전체에 귀찮다는 표정을 하나 더 추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가 오는 날은 아무래도 늘어지기 마련이다.

천천히 밥을 먹고, 천천히 짐을 챙겨 길을 나섰는데 그동안 잘 걷던 A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 얘가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 따라갈 수 없는지라 내게는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우비를 뒤집어 쓰고 걷다 쉬다 하면서 레온을 벗어나 다음 마을에 도착할 무렵 빗줄기가 점점 거세졌다. 아침식사 때의 그 표정 그대로 말없이 걷고있는 A를 졸라 근처 바에서 커피라도 마시고 가자고 들렀다.


바에 들어서자마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 비를 맞으며 걷지 않은게 참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들렀던 바에는 와이파이도 잡혔다. 커피를 시키고 앉아 아무 말 없이 각자 와이파이를 켰다.

영혼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있었다. 이런 날씨엔 밖에 나돌아다니지 말고 집에서 전이나 부쳐 먹어야 하는데, 여기서 전을 부쳐 먹을 수 있을까?로 시작한 생각은 점점 발전해 나는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런 비를 맞아가며 걷고 있는 걸까, 다리도 아프고, 어깨도 너무 아픈데 까지 이어졌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점점 더 우울해졌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하면 매정한 미국인은 분명 '그럼 넌 여기서 더 쉬는게 어때?'라며 버리고 갈 게 분명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입을 삐죽 내민 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이메일을 확인하던 A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J는 레온에 와서 며칠 쉰 다음에 산티아고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버린대.

진짜? 하며 내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같은 내용으로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여전히 무릎이 아파서 걸을 수 없다고, 내일쯤이면 레온에 도착하지만 이곳에서 며칠 쉬다 마드리드로 건너가 남은 기간을 보낸 후 미국으로 돌아가겠단다. J가 무릎이 아프다며 칭얼거릴 때나, 급기야 부르고스에서 우리와 따로 걷겠다고 선언할 때도 둘이서 아마도 J는 산티아고를 포기할 것 같다는 얘기는 몇 번 하긴 했었지만 실제로 그런 얘기를 들으니 섭섭했다. 처음 함께 걷기 시작할 때는 셋이서 함께 산티아고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됐구나.

-정말이네.

하며 말을 시작했지만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나도 당장이라도 그만 걷고 싶다든지, 우리 셋이 산티아고에 함께 가지 못해 유감이라든지, 무릎이 계속 아파서 어떡하지하는 걱정이라든지 하는 문장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A는 다시 자신의 아이패드로 고개를 숙였다. 이날따라 커피는 아무 맛도 나지않았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둘은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졌을 때 다시 길을 나섰다. 다리는 점점 더 아파왔다. 판초우의 속 옷은 이미 축축이 젖었고 기분은 우울했다. 기계적으로 걷고 있고, 딱히 쉬고싶단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내가 왜 걸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우울한 상태로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길가 집의 창문이 열리더니 어떤 할아버지가 비닐봉지를 쑥 내밀었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스페인어로 뭐라뭐라 말씀했다.

이건 뭐지? 이걸 나한테 준다는 걸까? 혼란스런 얼굴로 A를 바라보니 할아버지가 우리 먹으라고 주는 거라며 받으란다. 봉지를 받아들고 “무차스 그라시아스”하며 돌아왔더니 A가 피식 웃더니 발음이 그게 아니라고 교정해준다.

'오늘 처음으로 무서운 얼굴을 풀은 거니 용서는 해주겠다만, 너나 나나 여기선 외국인이고 니가 말하든 내가 말하든 원어민에게 이상한 발음인 건 마찬가지 아니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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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으며 열어본 할아버지의 봉지엔 사과와 토마토가 들어있었다.

마침 집에 과일이 넘쳐났다거나, 원래 집안의 모든 것을 다 퍼주는 취미가 있으시다거나, 누군가의 부탁을 받은 거라든가 하는 속사정이 있었는지는 알 바 없지만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봉지에 과일을 챙겨 건네준 그 친절만으로 감동하기엔 충분했다.


이곳에서는 그냥 그렇게 조건없는 친절을 베풀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날 레온에서만 해도 그랬다. 혼자 지도를 보지 않는 동네 산책 후에, 길을 잃어버려 돌아오는 길을 찾고 있을 때였다. 나는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안녕', '고맙습니다', '부엔까미노', '닭' 정도가 거의 전부인 상 기초 스페인어를 구사했고, 이 동네 사람들은 내 스페인어와 비슷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다. 거기에 나는 걷다보니 꽤 먼 동네까지 왔는지 사람들은 내 알베르게의 위치를 잘 짐작하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 중 한명에게 길을 물었더니 잠깐만 기다려보라며 그들끼리 어느 길이 맞는지 내가 들고있던 지도를 짚어가며 토론을 하기 시작했고, 점차 사람들이 불어나더니 나중에는 거의 스무명 가까이가 둘러싸고 이 길이 맞네 저 길이 맞네로 추정되는 토론을 시작했다. 처음엔 토론하던 두명의 옆에서 못알아듣는 스페인어를 알아듣는척하고 있었지만 점점 사람이 늘어나자 어느덧 그 무리 뒤로 빠져 관람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무리뒤에서 쭈뼛쭈뼛 머뭇거리고 있을 때 토론은 끝났고, 역시 친절하지만 영어는 할 줄 모르시는 노부부가 자신이 그 알베르게를 알고 있다며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내 손을 끌어다 알베르게 앞까지 무사히 데려다 줬다.

정말 고마웠지만 할 줄 아는 감사의 표현은 ‘고맙습니다’가 전부여서 얼굴에 고마움을 가득 담아 “무차스 그라시아스(매우 고맙습니다)”만 백번 말해줄 수 밖에 없었다.


단지 나만 그런 친절을 겪었던 것은 아니다. 레온에 들어오기 전 너덜너덜한 판초우의를 처분해버린 A 역시도 그랬다. 알베르게에 등록하고 레온에서 우비를 살 수 있는 곳이 없느냐며 물었더니 호스피탈레로가 여기에 여분의 우비가 있다며 조금 허름하지만 쓰라고 공짜로 나눠줬다.


좀 더 과거로 가보자면, 내가 갈림길에서 헤매는 것을 발견하고 길을 가르쳐 준 근처 동네 사람이 앞질러 한참을 걸어가다, 다음 갈림길을 보고는 내가 또 헤맬까봐 한참을 기다려 걸어오는 내게 길을 알려주고 다시 제 갈 길을 간 일도 있었다.


물론 A도 J도 자주 만나는 한국인 무리도, 가끔 마주쳤던 모든 사람들도 친절했고 자기가 가진 비스켓이며 캔디, 빵, 과일 같은 걸 나눠먹기도 했었다. 그래서 재미있고 행복했지만 그것 만이 아니었다. 이 길 구석구석에 살고있는 낯 모르는 사람의 친절 역시 모여 있기 때문에 이 길을 걷는 동안 마음이 힘들지 않았구나 싶었다. 한봉지의 과일은 자연스럽게 그 동안의 길을 떠올렸고, 덕분에 조금 더 밝아져 하루를 완전히 걸을 수 있었다.


이 날 도착한 알베르게엔 여느 때보다 한국인들이 많았다. (정확히는 중국인2, 서양인2, 한국계미국인1 외에 전부가 한국인) 들어가자마자 난롯가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던 한국인들이 나와 A에게 난롯가에 앉아 신발을 말리라며 자리를 비켜주고 와인을 청했다. 이들은 레온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오늘이 첫 번째 날이라고 했다. 오늘이 까미노의 첫날인 이들과 어울려 와인을 마시다 내가 제안했다. 우리에겐 쌀이 1킬로 가까이 있으니 저녁에 함께 밥을 먹지 않겠느냐고.

근처의 가게에서 장을 보고 할아버지에게 받은 토마토를 썰어넣어 볶음밥을 해먹고 후식으로 사과를 잘라 나눠먹었다. 채소를 극도로 싫어하는 A도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볶음밥에 넣은 채소를 먹으며 이것 보라며 자신도 채소를 먹을 줄 안다며 자랑해 피식 웃게 만들었다.


그렇게 비가 오던 날, 서로가 서로에게 한 가지 친절을 베풀었고, 아마 우울한 세상은 각자의 한 가지 친절만큼 따뜻해졌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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