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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씨 Dec 07. 2016

#53까미노데산티아고-얼떨결에 산티아고

-아르수아-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아마도 마지막에서 이틀째를 생각하고 떠난 아르수아의 아침이었다. 

출발하자마자 길을 약간 잘못 드는 바람에 지도를 보고 까미노가 아닌 주도로를 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앞에서 어물쩡대다 우리가 나타나자 불안한 눈빛으로 이 길이 맞느냐고 물었다. 신학생이 가이드북의 지도를 보며 여기가 까미노데프랑세즈는 아니지만 이쪽으로 가면 다시 까미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며 잠깐 함께 걸었는데 그 사이 신학생이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따라왔다. 역시 전 세계인을 끌어모으는 재주가 있는 신학생이다. 이 친구와 함께 다니면 사람들이 덩달아 내게도 친절해져서 좋다. 

친구와 떨어져 걷고 있다는 아일랜드에서 온 존 아저씨는 우리 셋 모두에게 하루종일 아침커피와 맥주와 햄버거까지 사주며 계속해서 신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먹을 걸 사줘서 그러는 건 아니지만 뭔가 수다스럽고 즐거운 아저씨였다. 아침에 길에서 어물쩡대고 있었던 건 그 앞에 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자기는 개를 굉장히 무서워한단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해한다며 나도 사실 비둘기를 무서워한다고 했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그게 왜? 그건 너 안 괴롭혀'라고 되물어 살짝 빈정 상하긴 했지만 괜찮은 동행이었다.  

쳇, 그러면 당신은 왜 개를 무서워 하는 거요?   

걷다보니 아직은 쌩쌩한 신학생과 존아저씨는 먼저 걷고 이제 여간해서는 속도를 내지 않는 나와 고관절이 아픈 막내는 뒤처져 걷게 됐다. 걷다가 꽤 잦은 간격으로 둘이 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다 우리가 지나가는 걸 보면 데려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또 같은 방식으로 맥주를 마시고, 햄버거를 먹는 식이었다. 어차피 오늘은 20Km를 좀 못 가 멈출 생각이니 속도가 나지 않아 뒤떨어지더라도 그리 부담은 없었다.  

그래서 걷는 중에는 되도록 마시지 않는 맥주도 마시고 존아저씨와 얼마전 만났다는 푸에르토리코 부자와 어울려 한참을 놀다보니 4시가 되었는데도 원래 목적지인 뻬드로우소에 4Km 못간 지점에 와있었다. 존아저씨의 목적지도 그 곳이지만 자신은 오늘 호텔에서 묵겠다며 도착해 헤어지자며 마지막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와이파이가 되는 바에서 막내가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보다 먼저 걸었던 J언니와 나머지 사람들은 산티아고에 도착했단다. 그리고 J언니는 그 다음날 아침 비행기이고, 나머지 두명은 아침일찍 출발해 피스테라까지 걸어갈 생각이라고 한다. 산티아고의 마지막 밤에 우리를 못보고 떠나 아쉬워한다고, 나중에 한국에 가서 보자고 하다가 장난처럼 오늘 열심히 걸어 산티아고에 오라고 했다.

하하, 여기서 20Km는 더 가야 하는데 지금 어떻게 거길 가?

하며 막내를 바라보니 울 것 같은 얼굴이 돼있었다. 좀 더 정확히는 함께하지 못해 서운한 마음과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하는 마음이 뒤섞인 얼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리는데 둔한 내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늘 사람들을 챙기고 다니는 신학생이 몰랐을리 없다. 셋 다 가만히 각자의 햄버거만 내려다보다 몇번 망설이다 말했다.  

오늘 산티아고에 가고 싶어요? 만약 원하면 함께 가줄게요.

신학생도 옆에서 네가 원한다면 함께 걸어주겠다고 했더니 잠시 고민하던 막내가 가겠단다. 셋이 마지막 메시지를 받은 이후 계속 한국어로만 말하고 있어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존아저씨에게 우리는 오늘 산티아고까지 걷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 이런 크레이지한 사람들’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여기서 산티아고까지는 19Km 더 걸어가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도 알고 있다며 그래도 꼭 가야겠다고 하는데도 시간이 늦었다며 계속 말린다. 마치 곤사르로 가던 그날 밤 너무 늦었으니 여기서 묵으라고 포르토마린 주민들이 말했듯이. 

그러나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는 내가 나타나면 그 다음 단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 않은가. 포르토마린 주민들이 말려도 말려지지 않았듯이, 존아저씨도 우리 고집을 꺾을 수 없었고 결국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네시 십분전 19Km 떨어진 산티아고로 걷기 시작한 이상한 한국애들을 배웅해줬다.  



밤이 늦으면 산길은 불이 켜져있지 않을 위험이 있어 산티아고까지의 마지막은 신학생의 가이드북 지도를 따라 주도로로 걷기로 했다. 너무 밤이 늦어서까지 갈 수는 없으니 시속 5Km쯤으로 걸어 여덟시에는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보통 평지를 짐 없이 빠른 속도로 걸어야 가능한 목표다. 

계획을 세우고 나니 쉴 여유같은 건 없어 미친 듯한 속도로 걸었다. 고관절이 아파 잘 걷지 못하던 막내도 목표가 생기나 마지막 힘을 끌어내 절뚝대며 걸었고, 그동안 다리가 다시 아플까 천천히 걷던 나도 빈 몸으로 걷는 것마냥 속도를 냈다.  계속 빠른 속도로 두어시간을 걷다보니 원래 아프던 왼쪽 정강이에 이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다쳤던 오른발목까지 아파왔다. 그렇지만 이제 그 지점부터 산티아고 사이에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은 없었다. 

이미 해는 져서 길은 어둑했다. 이 길에서 그래왔듯이 마지막까지 사고쳤구나 싶었지만, 돌이킬 수 없으니 그냥 걷는 수밖에 없다. 신학생이 계속 절뚝대는 막내의 배낭을 바꿔 메주고 손전등으로 지나가는 차들에게 사람이 걷고 있다는 표시를 해주며 걸었다. 그렇게 걸어 8시가 다 돼갈 무렵이었다.

드디어 별들의 들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 앞에 도착한 것이 끝이 아니다. 산티아고 입구와 산티아고 대성당까지의 거리는 3.5Km.

이미 도착해있는 사람들이 묵고있는 알베르게에도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겨우 알베르게 앞까지는 왔지만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 후들거리는 다리로 수많은 계단을 걸어내려가야 알베르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겨우겨우 찾아 들어가자 이미 도착해있는 셋이 진짜 올 줄 몰랐다며 반가워했다. 걷는 내내 조용했던 막내는 얼굴이 밝아지며 수다스럽게 이틀동안의 여정을 얘기했다. 마지막에 고생했지만 그래도 오길 잘 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얼른 씻고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사람들에게 나는 성당을 봐야겠다며 다시 길을 나섰다. 신학생도 막내도 함께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까지의 거리는 역시, 멀었다. 

양 아픈 발목으로 절뚝절뚝 걸어 드디어 대성당 앞에 도착했다. 이미 밤이 늦어 광장 앞은 텅 비어 있었다.  

신학생은 광장에 그대로 드러눕고 나와 막내는 천천히 광장 앞을 걸었다.  

엄청나게 큰 산티아고 대성당을 봐도 얼떨떨할 뿐 딱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곳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구나.
내가 한 달 가까이 그렇게 오려고 했던 곳은 바로 여기였구나.

혼자서 중얼거렸다.  

굉장히 감격적인 순간이 있을 것 같았는데 그냥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책으로 보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내 발로 광장에 서있고, 눈으로 성당을 보고있는데도,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내 눈과 성당의 광장 사이에 한겹의 막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정말 이걸 보러 여기에 왔을까, 싶은 그런 것들.   

한참을 성당을 바라보다 다시 알베르게 맞은편 식당으로 돌아가 순례자 메뉴로 저녁과 와인을 먹었다. 밥을 먹고 와인을 마시며 한참을 앉아 이제는 더 걷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자 점차 처음의 얼떨떨함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자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말 수고했고 정말 무사히 걸었다. 

비도 많이 왔었고, 춥고, 다리도 아프고,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오는 내 못된 밑바닥도 그대로 보여 속상한 날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길을 포기해야할만큼 특별히 심하게 아픈 일도 없었으며, 베드벅에 물린 적도 없고, 처음 일주일 외엔 발에 물집도 안 잡혔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고, 이번 여행 최고의 맥주도 만났고,

무엇보다 이렇게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정말정말 수고했구나. 만약 손이 하나쯤 더 있더라면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정확히 출발한 지 이십팔일째 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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